대단히 미묘한 지방선거 결과가 되었다. 새누리당이 경기, 인천에서 승기를 잡고 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강원, 대전을 함락시켰다. 어느 당파도 이겼다고 말하기 힘든 선거 결과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더욱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특별히 짚어볼만한 부분을 다섯가지 정도 추릴 수 있다.

첫째, 교육감 선거 진보 득세
교육감 선거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 전체 17곳 교육감 선거 중 무려 13곳에서 진보교육감이 승리할 전망이다. 진보진영에선 서울의 조희연, 부산의 김석준, 인천의 이청연, 광주의 장휘국, 세종의 최교진, 경기의 이재정, 강원의 민병희, 충북의 김병우, 충남의 김지철, 전북의 김승환, 전남의 장만채, 경남의 박종훈, 제주의 이석문이 승리할 전망이다. 보수교육감은 대구의 우동기, 대전의 설동호, 울산의 김복만, 경북의 이영우에 불과하다.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자신의 선거 캠프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꽃다발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감 선거는 특성상 보수후보는 분열하고 진보후보는 단일화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조건은 2010년 제5회 지방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던 바, 당시에도 진보교육감은 6곳에서 당선되고도 큰 성과를 거둔 것처럼 여겨졌단 것을 생각하면 이번의 결과는 굉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민심의 향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많은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의 시민들이 특히 교육 영역에서 진보적 대안을 원하게 되었으되, 그것이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나 군소 진보정당들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지는 못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한다.
이는 민주개혁세력의 정치의 실패, 진보정당 운동의 실패, 더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의 정당의 실패라는 문제와 엮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5일자 <조선일보>는 1면에서 '전교조의 승리'를 선언했지만 막상 선거에 참여했던 이들은 "전교조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라고 말하는 상황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사람들이 ‘앵그리맘’의 선택을 예의주시한 가운데 나타난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선 향후 진지한 분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5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둘째, 광역자치단체장 야권 우세, 기초자치단체장 여권 우세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선 새정치민주연합이 9곳을 이겨 8곳에 그친 새누리당을 눌렀다. 하지만 기초자치단체장 선거를 보면 새누리당이 전체 222곳 선거구 중에서 현재 120곳에서 당선되었거나 1위를 기록 중으로 77곳에 그친 새정치민주연합을 압도하고 있다. 이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82곳 당선자를 내어 92곳의 민주당에 뒤졌던 상황에 대한 반전이다.
전반적으로 야권이 2010년의 지방선거에 비해 오히려 퇴보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엔 16곳 광역자치단체장(당시엔 세종시가 없었음) 중 민주당이 7곳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경남과 제주에서 무소속 김두관과 우근민이 승리하였기에 범야권이 승리한 지역은 9곳이라 볼 수 있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6곳에서, 자유선진당은 1곳에서 승리하여 범보수진영이 승리를 거둔 지역은 7곳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인구수가 많지 않은 세종시에서 승리를 거둔 상황은 현재의 우세를 단순한 우세로는 보지 못하게 만든다. 다만 2010년 지방선거에서 수도권 3곳 중 인천광역시에서만 승리를 거두었다면, 이번에는 같은 한 곳이라도 서울특별시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중량감의 차이는 있다.
‘세월호 심판론’과 ‘정권 힘 실어주기’가 부딪힌 선거에서 야권에겐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의 승리를, 여권에겐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의 승리를 안겨준 것은 둘 중 어느 쪽도 신뢰하지 못하는 시민들이 절묘한 균형을 추구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셋째, 충청권, 야권으로 넘어오나
지난 이십년 간 자민련과 자유선진당 등의 충청권 보수정당의 아성이었다가 새누리당에게 잠식되었던 충청권이 새정치민주연합에 마음을 열고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탄생으로 4곳이 된 충청권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전승할 예정이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충청권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선 아직 새누리당이 18곳, 새정치민주연합이 11곳에서 우위인 것으로 드러나 권력교체는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 중인 듯하다.
특히 당선이 확정된 권선택 새정치민주연합 대전시장 후보의 경우 "지방자치 시작 20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개혁 세력이 대전시장에 당선됐다, 이는 위대한 대전시민의 승리"라고 까지 말한 상황이다. 선거 초 그는 대전시장을 역임한 현역 국회의원 박성효 후보에게 각종 여론조사에서 15%~20%p까지 뒤졌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로 인한 '정권심판'을 외치는 민심 흐름 속에서 서서히 격차를 줄이더니 선거 막판 당내 여론조사에서 1.6%p 차이로 앞서는 결과를 얻었다. 결국 본 선거에서 박 후보를 물리친 권 당선인은 처음으로 민주개혁 세력이 대전시장에 당선되는 역사를 썼다.
▲ 6·4 지방선거 대전시장 선거에 출마한 권선택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4일 선거사무소에서 꽃다발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충청권이 세월호 참사에 반응하여 정권 심판 여론에 동참한 상황을 새정치민주연합이 향후에도 조직화할 수 있겠느냐 여부는 향후의 관전 포인트로 보인다. 한 정치부 기자는 “충청권에서의 야권의 승리는 지방선거에서의 판세보다 향후 총선과 대선에서의 야권의 기반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라고 말했다.
선거 전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 역시 “우리는 박원순보다 안희정이 더 무섭다. 우리가 충청권에서 진 일이 없는데 안희정을 필두로 충청이 야권으로 넘어간다면 문제가 크다”라고 말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넷째, 제3정치세력의 몰락
2010년 제5회 지방자치선거를 보면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제3정치세력이 당선자를 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기초자치단체장 선거 정도에서는 제3정치세력의 존재감이 있었다. 2010년에는 자유선진당이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 13곳의 당선자를 냈다. 이는 물론 자유선진당의 충청권에서의 지분이라 볼 수 있겠으나, 당시엔 민주노동당 역시 민주당과의 야권연대를 토대로 기초자치단체장에서 3곳의 당선자를 냈었다.
하지만 2014년 제6회 지방자치선거에선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조차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등 제3정치세력의 당선자가 전무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게다가 이는 과거와는 달리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시민에게 폭넓은 신뢰를 얻는 가운데 발생하는 표쏠림 현상에 의한 것도 아니다. 여당을 불신하는 시대에, 제1야당도 불신임을 받고 있는데다가 기타 정치세력, 특히 진보정당의 존재감도 사라지는 서글픈 상황이다. 제3정치세력을 표방하던 ‘안철수 세력’이 새정치민주연합으로 합류한 상황이 이러한 경향성을 가속화시켰다고도 말할 수 있다.
7시 현재 광역비례대표정당명부 투표 결과를 보면 새누리당이 49.7%, 새정치민주연합이 39.7%, 통합진보당이 4.5%, 정의당이 3.5%를 얻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표쏠림 현상에서 자유로운 정당 명부에서도 양당의 득표력이 90%에 육박한다. 또 통합진보당이 야권연대에서 ‘왕따’를 당하는 상황에서도 군소 진보정당 중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보인 현실은 진보정당 운동이 통진당과 거리를 두어야 대중적으로 어필하지만 통진당이 축적해 온 대중적 자산에 필적하는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통진당 딜레마’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 이정희 대표(가운데)를 비롯한 통합진보당 지도부가 4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당사에서 6ㆍ4지방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섯째, 세월호 참사 영향 권역의 투표 포기
한편 ‘세월호 권역’이라 볼 수 있는 경기도 일부 지역의 경우 사실상 ‘투표 포기’라고 할 만한 정치 영역에서의 이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경기도지역에서의 투표율은 53.3%로, 전체 56.8%의 투표율에 비해 부진했다. 경기도의 투표율은 같은 수도권인 서울의 58.6%와 인천의 53.7%에 비해서도 더욱 부진했다. 수도권에서 서울의 선거에 대한 정치적 관심이 가장 뜨거웠고 인천과 경기도는 비슷한 수준으로 부진했다고 평할 수 있다.
경기도 투표율은 세부를 살펴보면 ‘세월호 권역’의 정치 영역에서의 이탈 현상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피해자 가족들이 거주하는 안산시 단원구의 투표율은 47.8%로 경기도지역에서도 46.1%에 그친 부천시 오정구 다음으로 투표율이 낮았다. 인근 지역인 안산시 상록구도 48.3%, 시흥시는 48.0%, 화성시도 51.0%로 경기도 평균보다도 현저히 낮은 투표율을 보였다.
충청도 등 여타 지역에서 세월호 참사에 영향을 받아 야권 지지율이 높아지는 투표성향을 보인 것에 비해 막상 사건의 당사자에 해당하는 지역들의 정치 이탈 현상은 우리 정치권이 세월호 참사의 충격을 제대로 해결하고 공동체의 문제를 수습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의 존립의 문제를 생각한다면, 남경필 새누리당 후보가 신승을 거두었다고 해서 여권이 한숨을 돌릴 일이 아니다.
▲ 6·4 지방선거 D-1일인 3일 새누리당 남경필 경기지사 후보(왼쪽 사진)와 새정치민주연합 김진표 경기지사 후보가 각각 자신의 기호를 손가락으로 만들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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