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책공감(http://blog.daum.net/hellopolicy)

몇달 전 소고기 수입개방 문제가 터졌을 때, 「푸른팔작지붕 아래서 - 청와대 블로그」라는 곳이 망신을 당한 적 있습니다. '만문만답'이란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모든 질문에 다 대답하겠다고 했다가, 결국 쏟아지는 질문에 두 손을 들어버린 거죠. 나중에 FAQ 형식으로 정리되어 올라오긴 했지만, 그건 사람들이 별로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으니….

그때 그 소동을 바라보면서, '이것 참, 인터넷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런 걸 뭐하러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최근 오픈한 「소통하는 정부대표 블로그 - 정책공감」을 보면서도 똑같은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할거면 그냥 '국정 홍보처' 부활시키지, 뭐 하러 블로그 하는지 모르겠다는.

정책공감 블로그의 오판

지난 8월 25일 오픈 이후, 정책공감 블로그에는 총 13건의 글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이벤트나 행사안내, 단순 현장 스케치, 카툰 등을 빼면, 실제 정책에 관련된 글은 총 3건입니다. 그리고 이 3건은 모두 '공기업 선진화'에 대한 해명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공기업 선진화를 왜 해야 하는지, 괴담이 왜 잘못됐는지, 등등.

그런데 결국 '팔작지붕'과 하나 다를 바 없다-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메를루사님의 지적대로 소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정책공감 필자 중 한 명인 '이기자'는 "한 번 올리고 신경도 안쓰는 글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대답하지만, 글쎄요. 소통의 의미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소통은 단순히 '추가 답변'을 요구하거나 댓글을 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 주변에 없으세요? 무조건 자기 주장만 하고, 다른 사람들이 다른 주장을 하면 다 틀렸다고 하면서, 끝까지 자기만 맞다고 주장하는 사람. 일명 벽창호라고도 하죠. 그런 사람과는 대화를 하고 있어도 대화가 아닙니다.

애당초 '나는 옳고, 너희는 틀렸으니, 너희를 설득시켜 주겠다'라는 사람과 대체 무슨 소통을 합니까. 그 사람의 목적은 대화가 아니라 포섭인 걸요. 길거리에서 선교하시는 분들을 만날 때 느끼는, 딱 그만큼의 당혹감. "니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니가 몰라서 그렇다", "그건 오해다"라는 식의 발언.… 예, 정책 공감 블로그에서, 소통이랍시고 하는 말들이 딱 그 모양 그 꼴입니다.

소통은 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 정책공감 블로그에 올라온, 인천공항 민영화에 관련된 글들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 사실 이 글 외에는 거의 없지요. (다른 하나는 「선진화와 민영화의 차이점」이라는 글인데, 꼭 읽어보세요. 저는 정부가 '민영화'를 포기하고, '선진화'를 내세우면서, 공기업에 대한 경영효율화를 하겠다-라는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선진화는 민영화를 포함한 상위개념이랍니다. 절대 민영화 포기 안했답니다.)

관련글의 논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1. 1. 인천공항 민영화 괴담이 떠돌고 있다. 괴담에 따르면 인천공항이 맥쿼리 그룹에 넘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무근이다.
  2. 2.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해 정부가 건설/운영하다가 잘되면 민간에 매각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합의된 바다. 다만 모든 운영을 넘겨줄 경우 외국처럼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인천공항 선진화 방안이 나왔다.
  3. 3.선진화 방안의 핵심은 소유권은 정부가 계속 가지되, 민간 기업의 노하우는 얻어오고, 감시감독은 강화하겠다-라는 이야기다. 어차피 인천공항은 인천공항공사가 직접 서비스하는 것도 없다. 그리고 주차비나 공항이용료도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안심해라.

이 논리가 가진 허구성은 다른 분들이 잘 지적해주셨으니, 저는 한 가지만 말하겠습니다. 사회간접자본은 일반적으로 "다른 다양한 산업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이나 서비스"를 말합니다.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는 규모가 크고, 투입된 자본의 회수에 오랜 기일이 소요되며, 그 효과가 사회전반에 미치게 되는 특징이 있"으며, "따라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는 일반적으로 개인이나 사기업이 아닌 공공기관이나 정부의 주도에 의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로 인해 사회간접자본은 기본적으로 공공적이며, 그로 인해 '독점 시장'의 형태를 띱니다. 외국 자본이 사회간접자본을 노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윤이 절대 보장된 사업'이라는 거죠. 사회간접자본이 무슨 부실 기업인 줄 아십니까. 운영하다 잘되면 팔아먹게. 그리고 그게 언제부터 일반적으로 합의가 되었습니까? 세계 어디에서?

문제는 태도입니다. 처음부터 '괴담'이라고 단정 짓고, 니네가 잘못 알고 있다, 라면서 엉뚱한 근거를 들어 해명하겠다고 나섭니다. 여기서 하나는 분명하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올리는 블로그 담당자는 '정책 전문가'는 아닐 거라는 것. 그리고 이런 식으로 반박이 들어오자, 정책 공감 블로그는 다시 글을 올려, 아래와 같이 답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답을 하는 것 자체가 소통이라고 말합니다.

  1. 1.엘리트 관료 시대는 끝났으며, 민간 경영의 효율성이 부각되는 시대다. 공기업은 방만하다. 방만하다. 방만하다.
  2. 2.인천 공항이 더 좋아지기 위해서라도 민영화는 필요하다. 인천공항의 설계와 시스템도 외국에서 들여온 거다. 이대로 가면 중국 서두우 국제공항에 못미치게 된다.
  3. 3.외국 자본도 수익을 내지 못하면 망할 테니, 외국 자본 배불리기 아니다. 우리는 세계적 경쟁 시대에 살고 있다. 공항 이용료 등이 올라가면 외국인들 안온다. 한국 사람만 가지고는 장사할 수 없다. 그러니 안올릴 것이다.
  4. 4.공기업 선진화하면 낙하산 인사 자리 없어진다. 가지고 있는 게 낫다. 근데 왜 하겠냐.


…할 말이 없습니다. 다시 대답이라고 내놓은 것이 결국 '니네가 잘못 알고 있다'라는 말이라니. 게다가 증명할 수 없는 '가정'을 미리 전제하고, 그러니까 다른 문제-이용료 상승 등-은 발생하지 않을 거다, 그러다 경쟁력 뒤떨어지면 어떻게 하냐-라니. 마치, 예전에 노동부 공무원 한 분이 토론회에 나와서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면 일자리가 더 늘어날 거다'라고 주장했던 것을 보는 기분.

경영합리화를 위해 가장 많이 쓰이는 방식이 뭔지만 알아도 나올 수 없는 주장이 툭툭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 어이없음을 지나, 한숨이 나올 지경입니다. 이 정부는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정말 인물이 하나도 없구나-라는 탄식. 그리고 모든 잘못을 '공기업의 방만함'으로 떼우고 넘어가려는 생각.

공기업 사장을 '낙하산 인사'로 보고 있는 한심함부터, '정부가 그럴 리가 없다'느니, 다른 주장을 한 사람을 '반대론자들은'이라고 표현하는 경박함까지(앞에선 반대하시는 분들, 뒤에선 반대론자라…). 거참, 블로그 운영자 처음부터 참 대단한 사람 뽑아 두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글 잘도 승인해서 올리게 했습니다.

…물어보고 싶네요. 민영화 이후 공항이용료 등이 올라가게 된다면, 그 글, 정부 공식 블로그에서 올린 글을 믿었던 사람들에게, 책임지실 수 있습니까? :)


오픈 마인드 없이는 블로그도 없다

결국 정책공감 블로그의 한계는, 블로그 책임자가 정책결정권자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위치에 있지도 못하다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결정된 내용을 일방적으로, 어떻게든 설득시킬 수밖에 없는 '신을 믿는 신자'의 입장에서 정책 공감 블로그는 글을 작성합니다. 저쪽은 부정될 수 없는 존재이며, 그래서 이쪽을 설득하는 길 밖에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소통'은 사라지고, 결국 '선교'만이 남아버리게 됩니다. -_-;

물론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관료 사회에서는, 결국 고위층-_-이 관심을 가지냐 그렇지 않냐에 따라, 결정권자가 오픈 마인드를 갖고 있는가 아닌가에 따라 문제가 달라지게 됩니다. 결정권자가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인터넷으로 올라오는 문제제기를 경청하고, 그에 대해 반응을 한다면 그것은 분명 소통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일방적인 '해명'만 계속된다면, 그냥 블로그 안하시는 게 낫습니다. 게다가 이 정도로 깜냥도 없는 -_-; '인터넷에 올라온 자료'나 '개인적 추측'을 가지고 글을 쓰는, 정말 '일반 블로거'틱한 사람들을 데리고 운영하려면, 관두십시오. 최소한 정책에 대해 보다 제대로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전문가들을 데리고 '영업'하란 말입니다.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제대로 된 데이터를 가지고 쉽게, 합리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는 전문가입니다. 그리고 어떤 의혹에 대해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보장해 줄 수 있는 확인입니다. 자신의 정책에 자신이 있다면, 어디에 운영해달라고 외주 준 것 같은 블로그 말고, 제발 제대로된 블로그를 운영하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정부 블로그 관두세요. 괴담 비판소-블로그나 하나 만드시구요. 이게 훨씬 더 구미에 당기는 아이디어 아닌가요?

자그니 http://news.egloos.com

춤과 노래, 글쓰기와 여행이 좋아서 취직을 미루고 있는 백수 블로거.
알고 보면 대학원 졸업하고도 미적미적 논문 쓰기를 미루고 있는 귀차니스트. 민예총 '컬처뉴스' 팀장과 네오룩닷컴 연구원, 월간 넥스아트 편집장을 거쳐 중앙대 문화연구학과에서 공부 중이다. 좋아하는 문장은 '굳세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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