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드라마 ‘뻐꾸기 둥지’ 제작발표회에서 장서희는 최근 안방극장의 흐름이 막장도 드라마의 장르로 받아들이는 추세인 것 같다고 밝혔다. 과거 이수만 사장의 ‘립싱크도 문화다’라는 소신 발언의 기시감이 느껴져 고개를 갸웃하게 되지만, 장서희가 말하는 소위 막장 드라마라는 것보다 더 이상한 드라마가 판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잘 알겠다.

아무리 복권 자동 당첨 시간대라지만 연일 빼먹지 않고 시청률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일일 드라마 ‘사랑은 노래를 타고’. 적어도 이 드라마의 ‘이상함’ ‘기묘함’에 비한다면 차라리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민소희의 재림이 골백번은 더 나을지어다.

“공정남 씨세요.” “예? 누구라고요?” 남주인공 현우 아빠를 연기하는 선우재덕(박범진 역)이 황망한 얼굴로 이 대사를 읊는데 문득 그 충격에 빠진 얼굴의 절반은 현우 아버지가 아닌 배우 선우재덕 자신의 기막힘 또한 담겨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세상에, 뭐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설정이 다 있나 싶었겠어서.

사실 ‘사랑은 노래를 타고’는 이미 네티즌의 입에서 “막장 드라마라고 하기는 뭐한데 뭔가 이상한 드라마.”라는 불평을 쌓아왔던 드라마다. 정말 말 그대로 자극적인 설정은 없다. ‘천상여자’처럼 살인마가 날뛰지도 않고, ‘빛나는 로맨스’처럼 등장인물의 90퍼센트가 무뢰한인 것도 아니니까.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 공들임은, 조강지처를 내팽개친 전남편을 향해 복수에 이를 가는 돌싱녀가 아니라 단 한 곡의 뮤지컬 넘버로 브로드웨이를 꿈꾸는 어린 소녀일 뿐이다.

이 드라마가 이상한 이유는 소통의 부재와 상호작용의 불균형이다. 한마디로 남의 의사는 생각하지도 않고 혼자 김칫국 마시며 덤벼드는 주변 인물이 너무 많다. 지금은 의협심 넘치는 법조인처럼 그려지지만, 한때 공들임(다솜 분)의 언니 공수임(황선희 분) 또한 만만치 않게 이상한 사람이었다. 남주인공 박현우(백성현 분)을 혼자 짝사랑해온 수임은 그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연애와 상견례에 결혼까지 상상으로 해치우는 극단의 망상녀였던 것이다.

상대자에게 마음을 고백하고 동의를 얻은 뒤에 연애부터 시작하는 것이 남녀 사이가 되는 첫걸음일진데, 이 모든 과정을 생략한 채 오로지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전제 조건 하나에 당연히 우리 둘은 사귀는 사이라고 못을 박았던 수임의 행동은 지성을 가진 사람의 행동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비합리적인 이기심의 극치였다.

더 황당한 것은 도저히 온전한 정신 상태라고는 볼 수 없는 수임의 망상증을 나무라기는커녕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들임과 현우를 불건전한 관계처럼 힐난하는 주변 인물의 반응이다. 심지어 현우 모친인 윤지영(김혜선 분)과 수임의 현재 시어머니인 구미옥(김예령 분)은 이런 두 사람의 관계를 놓고 마치 근친이라도 되는 것 마냥 호들갑을 떨어대는데, 도대체 왜 이토록 비합리적인 분노를 퍼뜨려대나 싶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 드라마의 기가 막힌 전개를 보고 있노라니 그동안의 괴이함은 그저 서막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교통사고를 당한 현우는 간이식을 받지 않으면 살 수 없을 만큼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공황상태에 빠진 현우 어머니보다 더 속이 쓰린 건 그 옆에서 가슴으로 울고 있는 현우의 아버지, 박범진이었다. 청문회에서 밝혀진 것처럼 타인의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아이 현우는 생물학적 부친을 따로 두고 있었으니까. 혈액형이 맞지 않아 이식이 불가능한 아내가 발을 동동거리며 방법을 좀 찾아보라고 하는데 보이지 않게 가슴을 치던 범진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들을 살릴 것이라며 자리를 떠난다. 현우가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아이라는 사실을 기억한 의사가 차마 범진의 앞에서 권할 수 없었던 그것을 자신의 입으로 부탁하려는 이유였다.

아무리 현우를 살리는 일이라지만 자식의 친아버지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하는 게 좀 서글펐을까. 하지만 온통 아이를 살리는 것에 정신이 팔려있는 범진에게 체면이나 상처쯤은 떠오르지도 않을 고통이었다. 아버지의 간절한 부탁에 생물학적 친부를 찾아 나섰던 담당의에게 자료를 넘겨받은 한주호(정승호 분)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그리고 한탄한다. 현우네와 들임이네. 이 가족의 얼기설기 엮여있는 인연이 기가 막혀서. “홍수임 변호사의 부친 되시는 공정남 씨요. 그 분이 현우 생물학적 아버지 되십니다.” 박범진가에 정자 기증을 했던 사람. 곧 현우의 생물학적 친아버지가 다름 아닌 들임이의 양아버지, 공정남(이정길 분)이라니!

아무리 드라마의 세계관이 몇 안 되는 인구로 서로 지지고 볶는 것이 기본이라지만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현우의 친아버지가 공정남이라는 전제 조건을 붙이면 극도로 난잡해지는 설정이 어디 한둘인가 말이다. 일단 집안끼리 거의 결혼할 사이처럼 결론 내렸었던 공수임과 박현우는 이제 남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관계다. 이 드라마는 친아버지가 같은 남녀 둘을 결혼할 관계로 묶어뒀다는 것인가.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피가 같은 남녀를 두고 부부가 될 것을 독촉했으니 이 얼마나 망측한 일인가.

수임이와의 관계가 청산됐다고 해도 이 찝찝한 인연의 근본적인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공정남이 그의 생물학적 아버지임이 밝혀진 순간, 남녀 주인공인 공들임과 박현우는 유사 가족이나 다름없는 관계가 되어 버렸으니까. 가족을 잃은 들임이를 공정남은 큰마음으로 가슴에 품었다. 비록 피가 통하는 관계는 아니지만, 그보다 더 절절하게 애틋한 부녀 관계가 아니던가. 여전히 공정남을 “아빠!”라고 부르는 들임이를 어떻게 그의 친아들인 박현우와 엮어준단 말인가.

도대체 왜 이토록 부자연스러운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들고자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여주인공의 친아버지가 남주인공의 양아버지와 삼촌 때문에 자살을 한 것도 모자라 그녀의 양아버지를 남주인공의 친아버지로 둔갑시킬 줄이야. 더군다나 여주인공의 친언니는 박현우네의 비리를 폭로하겠노라 이를 가는 중인데!

공정남은 말한다. “정말 운명이라는 게 있는 건지 인연이라는 게 참 얄궂네요.”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이만큼의 악연이라면, 애초에 이 둘은 만나서는 안 될 사이가 아니었나 싶다. 그저 둘이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펄펄 뛰었던 주변 인물의 행동은 아마도 무의식중에 이 커플의 근원적인 악연을 짐작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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