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은 잘못을 해도 그리 혼나지 않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합니다. 언론이나 방송사, 즉 방송 외부에서 윗선이 쥐고 흔들려는 '외압'은 종종 겪어도 대중의 사랑만큼은 그럴 수 없게 큰 응원을 받아왔던 예능 프로그램이지요. 그 사랑의 크기는 역대 예능 프로그램 중 첫 번째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대한민국, 심지어 전 세계로 범위를 넓혀보아도 무한도전만큼의 사랑을 받은 예능 프로그램은 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건 단순히 시청률의 수치만으로 환산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닙니다. 이미 무한도전은 시청률,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전무후무한 공익 예능이니까요. 15퍼센트 남짓한 시청률을 가지고선, 방영하는 에피소드의 대부분을 전 국민의 이벤트로 이끌어내는 '공익성'이야말로 도리어 무한도전의 위엄을 증명하는 가치가 될 테죠. 드라마는 물론이요, 그 어떤 교양 프로그램이나 심지어 뉴스데스크와 겨루어 봐도 무한도전을 이길만한 신뢰도와 호소력을 가진 프로그램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무한도전을 마블사의 캐릭터화한다면 엑스맨의 '프로페서 X'가 될 것입니다. 이 괴물 예능은, 가요제를 열었다 하면 그게 바로 전 국민의 여름 축제가 되어버리고, 뭔 특집을 했다 하면 적어도 몇 달은 대중의 중심 화제로 떠들게 할 수 있습니다. 군중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설득력과 호소력. 그 모든 것은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의 상징성, 즉 두꺼운 신뢰도 덕분이겠죠. 대중을 움직이는 예능.

그런 무한도전에 드물게도 비난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바로 5월 24일. 380회로 준비된 기획, '홍철아~ 장가가자!'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폭발했기 때문이죠. 시청자 게시판의 절반 이상은 이전처럼 응원 글이 아닌 분노와 상처를 호소하는 글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에 대항하는 반박글이 뒤섞여 의견 대립에서 근원적인 성싸움의 문제로까지 변질된 무한도전의 시청자 게시판은 아수라장입니다.

길이 자진 하차하고 변화된 흐름 중 하나는 노홍철만이 유일한 싱글이라는 것이죠. 앞서 무한도전의 리더로 뽑아달라며 호소할 때도 그는 홀로 책임질 식구 없는 홀가분함을 줄곧 자랑하곤 했었습니다. 처자식 있는 멤버들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파파라치가 되겠노라며 형들을 겁주곤 했던 그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가상 투표에서 시청자는 그의 공약을 일등으로 꼽았고 무한도전 팀은 이 다음 기획을 노홍철 장가가기 특집으로 구성했습니다.

노홍철의 이상형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점은 그의 지인이 아닌 시청자 또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비록 두꺼운 화면을 벽으로 두고 있지만 그래도 9년을 함께했는걸요. 소소한 취향쯤이야 웬만큼은 파악하고 있는 시청자들이죠. 더군다나 그가 드문드문 공개한 취향 또한 참 일관성이 있었잖아요. 20대 초중반의 전문직 여성, 게다가 아리따운 용모. 길의 첫사랑에게 정신이 팔려 방송마저 내팽개치고 구애에 정신이 나가 있었던 그의 과거를 떠올려보세요. 미모의 의사 선생님인 그녀는 노홍철의 이상형을 응축해놓은 것 같은 사람이었으니까요.

이상형이란 희망 사항의 맥시멈입니다. 그러니 노홍철의 콧대가 좀 높다고 나무라서야 그건 월권이겠지요. 문제는 지극히 사적인 행위이자 그들만의 사정인 결혼을 시청자가 함께 나누어야 할 공적인 일처럼 판을 벌여놓고선 노홍철 자신의 의지나 노력은 별반 보이지 않고 그의 이상형이 될 만한 여자들을 선별하여 대령하는, 같잖기 짝이 없는 성차별적 기획 의도였습니다.

이토록 까다로운 취향을 가졌다면 노홍철 자신이 발로 뛰어 마음에 드는 여성을 찾아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그 자신의 매력을 호소하는 것이 마땅한 모양새입니다. 그럼에도 무한도전은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의 공익성을 내세워 이곳저곳에서 예쁘고 어린 여자를 물색하여 노홍철에게 고르게 하는 기형적인 방식으로 시청자의 공분을 샀습니다.

1. 26세 이상 2. 예쁘고 3. 172~175cm의 큰 키 4. 착하고. 26살 이상을 마지노선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스물 두세 살의 어린 친구라도 철이 들었으면 괜찮은. 하지만 노홍철 나이 부근의 연상은 '출산' 문제 때문에 아웃. 그리고 절대 조건은 예쁜 여자일 것. 노홍철 본인이 아닌 무한도전 멤버들을 1차 통과해 선별된 이상형 찾기는 참 예쁘지만 어처구니없게 참혹했습니다. 어린 여대생의 외모를 품평하고 다짜고짜 남자친구 있어요? 몇 살 이예요? 라고 들이댄 뒤 노홍철에게 진상하는 그 모양새는 조선 시대로의 회귀나 다름없었습니다. 세자빈 간택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처녀들을 찾아 대령하는. 그러나 도대체 노홍철이 장가가는 문제가 국익과 무슨 상관이 있죠.

"이 여자 아니야! 이 여자!"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든 여자들이 노홍철과의 단독 대면도 아닌 1대 다수의 소개팅 대상 중 한 명이며, 심지어 노홍철에게 '진상'되기 위해 시청자의 선택을 받는 서바이벌까지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너그럽게 받아들일지 또한 의문이었습니다. 물론 그녀들이 그걸 용인한다고 해도 방송을 보는 시청자가 불쾌함을 느꼈다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문제가 되는 셈이죠.

(23살) 딱 좋네. 딱 좋아. 아 진짜 너무 귀여워. (13살 차이면) 딱 적당한 것 같은데? 궁합도 안 볼 것 같은데? 어리고 예쁜 여자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차별적인 언행은 예삿일이었습니다. 드러내놓진 않았지만 은근함이 못지않게 불편했던 외모 비하와 평가들. "아빠! 어디가? 가 잘 되는 이유가 있네요. 일하는 분들만 모셨네." 먼발치에 서서 ‘아빠! 어디가?’ 제작진의 얼굴을 흘깃 훑어보곤 여기에 노홍철의 그 까다로운 이상형을 부합할 여성은 없다는 듯 일만 하실 것 같은 분들이라는 미묘한 뉘앙스의 말로 퇴짜를 놓는 장면은 불쾌함의 극치였습니다.

26살 이상이 이상형이지만 연상은 ‘출산’도 생각해야 해서 꺼려진다는 노홍철의 지극히 사적인 생각이 공익 예능이라는 무한도전에서 표출된다는 것이 문제죠. 언젠가 노홍철의 고정 예능인 '나 혼자 산다'에서 그야말로 여성 상품화의 극치라고 생각되었던 "야! 여자 불러! 여자 세팅해!" 발언이 그대로 나왔던 곳이 바로 비뚤어진 여성관으로 물든 대한민국 브라운관의 현실입니다. 그 못지않게 여성의 생식 문제마저 품평회하는 무례한 발언을 다름 아닌 무한도전에서 들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서글프기 짝이 없었습니다.

혹자는 이상형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예능은 예능일 뿐이라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그 예능은 예능일 뿐이라는 말은 적어도 무한도전에는 통용될 수 없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무한도전이 여태껏 지향해왔던 모든 가치를 무너뜨리는 말이기도 합니다. 무한도전의 리더를 뽑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대중의 숫자가 무려 45만입니다. 이건 단순히 시청자라는 단어로 표현되지 않는 크기입니다. 이토록 큰 영향력을 가진 프로그램에서 예능은 예능일 뿐이라니요.

이상형은 이상형일 뿐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무한도전 정도 되는 프로그램에서 지극히 외형적 가치에만 치중한 출연진의 사적인 감정을 일체의 비판적인 시선 없이 결혼의 절대 조건이자 나아가서는 여성의 유일한 가치처럼 묘사했다는 것은 경솔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방송이 문제가 될지 몰랐다면 또한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썩어있는 무한도전의 여성관에 통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한도전은 이제껏 약자를 대신한 소통의 창구가 되어주었지만 남과 여의 문제에서는 결코 남자의 기득권을 놓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변진섭의 ‘희망사항’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아직 여자를 사귀어보지 못한 남자가 그가 원하는 이상형을 이래저래 제시하는. 청바지가 어울리는 여자가 좋고 밥을 많이 먹어도 배가 안 나오는 여자가 좋고 내 얘기가 재미없어도 웃어주는 여자가 좋고. “난 그런 여자가 좋더라.“ 라고. 노홍철의 이상형에 비하면 차라리 순수하다고 생각되는 이 노래를 만든 이는 여성인 ‘노영심’이었습니다.

기발하다가도 남자가 참 터무니없다고 생각되는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뜻밖에도 마지막에 존재합니다. 노래가 끝나갈 때 다가와 부르는 여자의 일침. “여보세요. 날 좀 잠깐 보세요. 희망사항이 정말 거창하군요. 그런 여자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난 그런 남자가 좋더라.” '26세 이상. 철만 들었으면 22~23세도 괜찮은. 게다가 무조건 예쁜 여자. 게다가 키는 172~175cm의 착하기까지 해야 해!' 남자뿐만이 아닌 여성 시청자도 포용하는 무한도전이라면 까다로운 노홍철의 희망사항에 맞추기 위해 여자를 진상할 것이 아니라 노홍철 자신이 그 콧대 높은 이상형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남자임을 스스로 어필하고 발로 뛰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런 모습을 내보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게 바로 45만이 선택한 무한도전에 거는 시청자의 기대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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