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은 잘못을 해도 그리 혼나지 않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합니다. 언론이나 방송사, 즉 방송 외부에서 윗선이 쥐고 흔들려는 '외압'은 종종 겪어도 대중의 사랑만큼은 그럴 수 없게 큰 응원을 받아왔던 예능 프로그램이지요. 그 사랑의 크기는 역대 예능 프로그램 중 첫 번째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대한민국, 심지어 전 세계로 범위를 넓혀보아도 무한도전만큼의 사랑을 받은 예능 프로그램은 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건 단순히 시청률의 수치만으로 환산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닙니다. 이미 무한도전은 시청률,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전무후무한 공익 예능이니까요. 15퍼센트 남짓한 시청률을 가지고선, 방영하는 에피소드의 대부분을 전 국민의 이벤트로 이끌어내는 '공익성'이야말로 도리어 무한도전의 위엄을 증명하는 가치가 될 테죠. 드라마는 물론이요, 그 어떤 교양 프로그램이나 심지어 뉴스데스크와 겨루어 봐도 무한도전을 이길만한 신뢰도와 호소력을 가진 프로그램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런 무한도전에 드물게도 비난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바로 5월 24일. 380회로 준비된 기획, '홍철아~ 장가가자!'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폭발했기 때문이죠. 시청자 게시판의 절반 이상은 이전처럼 응원 글이 아닌 분노와 상처를 호소하는 글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에 대항하는 반박글이 뒤섞여 의견 대립에서 근원적인 성싸움의 문제로까지 변질된 무한도전의 시청자 게시판은 아수라장입니다.
길이 자진 하차하고 변화된 흐름 중 하나는 노홍철만이 유일한 싱글이라는 것이죠. 앞서 무한도전의 리더로 뽑아달라며 호소할 때도 그는 홀로 책임질 식구 없는 홀가분함을 줄곧 자랑하곤 했었습니다. 처자식 있는 멤버들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파파라치가 되겠노라며 형들을 겁주곤 했던 그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가상 투표에서 시청자는 그의 공약을 일등으로 꼽았고 무한도전 팀은 이 다음 기획을 노홍철 장가가기 특집으로 구성했습니다.
이상형이란 희망 사항의 맥시멈입니다. 그러니 노홍철의 콧대가 좀 높다고 나무라서야 그건 월권이겠지요. 문제는 지극히 사적인 행위이자 그들만의 사정인 결혼을 시청자가 함께 나누어야 할 공적인 일처럼 판을 벌여놓고선 노홍철 자신의 의지나 노력은 별반 보이지 않고 그의 이상형이 될 만한 여자들을 선별하여 대령하는, 같잖기 짝이 없는 성차별적 기획 의도였습니다.
1. 26세 이상 2. 예쁘고 3. 172~175cm의 큰 키 4. 착하고. 26살 이상을 마지노선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스물 두세 살의 어린 친구라도 철이 들었으면 괜찮은. 하지만 노홍철 나이 부근의 연상은 '출산' 문제 때문에 아웃. 그리고 절대 조건은 예쁜 여자일 것. 노홍철 본인이 아닌 무한도전 멤버들을 1차 통과해 선별된 이상형 찾기는 참 예쁘지만 어처구니없게 참혹했습니다. 어린 여대생의 외모를 품평하고 다짜고짜 남자친구 있어요? 몇 살 이예요? 라고 들이댄 뒤 노홍철에게 진상하는 그 모양새는 조선 시대로의 회귀나 다름없었습니다. 세자빈 간택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처녀들을 찾아 대령하는. 그러나 도대체 노홍철이 장가가는 문제가 국익과 무슨 상관이 있죠.
(23살) 딱 좋네. 딱 좋아. 아 진짜 너무 귀여워. (13살 차이면) 딱 적당한 것 같은데? 궁합도 안 볼 것 같은데? 어리고 예쁜 여자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차별적인 언행은 예삿일이었습니다. 드러내놓진 않았지만 은근함이 못지않게 불편했던 외모 비하와 평가들. "아빠! 어디가? 가 잘 되는 이유가 있네요. 일하는 분들만 모셨네." 먼발치에 서서 ‘아빠! 어디가?’ 제작진의 얼굴을 흘깃 훑어보곤 여기에 노홍철의 그 까다로운 이상형을 부합할 여성은 없다는 듯 일만 하실 것 같은 분들이라는 미묘한 뉘앙스의 말로 퇴짜를 놓는 장면은 불쾌함의 극치였습니다.
혹자는 이상형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예능은 예능일 뿐이라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그 예능은 예능일 뿐이라는 말은 적어도 무한도전에는 통용될 수 없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무한도전이 여태껏 지향해왔던 모든 가치를 무너뜨리는 말이기도 합니다. 무한도전의 리더를 뽑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대중의 숫자가 무려 45만입니다. 이건 단순히 시청자라는 단어로 표현되지 않는 크기입니다. 이토록 큰 영향력을 가진 프로그램에서 예능은 예능일 뿐이라니요.
변진섭의 ‘희망사항’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아직 여자를 사귀어보지 못한 남자가 그가 원하는 이상형을 이래저래 제시하는. 청바지가 어울리는 여자가 좋고 밥을 많이 먹어도 배가 안 나오는 여자가 좋고 내 얘기가 재미없어도 웃어주는 여자가 좋고. “난 그런 여자가 좋더라.“ 라고. 노홍철의 이상형에 비하면 차라리 순수하다고 생각되는 이 노래를 만든 이는 여성인 ‘노영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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