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의 총성이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는 경우가 있다. 저격수 오스왈드의 총알은 미국 대통령 케네디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 청년의 흉탄에 비명횡사하는 통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지 않았던가.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역시 한 발의 총알로 돌연변이의 역사가 뒤바뀌게 되었다고 영화 서두에서 이야기한다. 미래에서 돌연변이의 적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돌변변이를 사냥하기 위해 개발된 센티넬은 돌연변이뿐만 아니라 인간에게조차 잿빛 미래를 안겨주는 암울한 공공의 적으로 자리한다.

돌연변이를 꼼짝 못하게 하는 센티넬의 가공한 파괴력은 어디에서부터 비롯한 것일까. 과거 천재 과학자 트라스크가 센티넬 개발을 주도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미스틱(제니퍼 로렌스 분)이 트라스크를 저격하면서부터 비롯된다. 세계 각국은 돌연변이를 인간의 적으로 규정하고 돌연변이 퇴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트라스크를 저격한 미스틱은 생포되어 그의 변화무쌍한 생체 구조를 연구, 센티넬에 응용하기에 이르니 미래의 돌연변이는 미스틱의 카멜레온 같은 생체 적응 능력을 이식받은 센티넬을 당해낼 수 없는 게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미스틱은 돌연변이에게 있어 공공의 적이 되는 셈이다. 돌연변이 퇴치를 지상 최대의 업으로 삼은 트라스크를 총알로 제거하려다가, 돌연변이들의 숙적 센티넬을 강하게 만드는 일등 공신이 미스틱이 되다 보니, 오히려 트라스크가 못다 이룬 과제를 미스틱이 도와주는 꼴이 되고 만다.

미래를 바꾸려면 과거의 미스틱이 트라스크를 저격하는 걸 막아야 한다. 이는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인공지능이 인간 지도자 존 코너를 제거하기 위해 미래의 살인병기가 과거로 찾아가는 궤적과 동일하다. 터미네이터가 과거를 향하는 것처럼, 엑스맨의 울버린(휴 잭맨 분)은 미스틱의 저격을 막기 위해 발걸음을 과거로 향한다.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을 때 비로소 미래의 인간과 돌연변이가 고통 받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울버린의 시간여행은 ‘교정자’ 혹은 ‘구원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매일 결정하는 선택의 결과가 앞으로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미스틱이 트라스크를 저격하는 것이 미래를 바꾸는 것처럼, 어떤 남자친구를 사귀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결혼 생활이 달라지고, 어떤 직종을 택하느냐에 따라 중장년의 진로가 달라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순간의 선택이 십 년을 좌우한다’는 옛 CF 문구처럼 미래를 바꾸는 건 울버린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명한 선택에도 좌우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 더, 울버린이 과거로 향하는 미국과 울버린이 현재 몸담는 세상은 ‘패배의 세상’이다. 트라스크의 목숨을 노리는 70년대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패배한 미국의 모습을 그린다. 미래의 세상은 센티넬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어떻게든 몸을 숨겨야 하는 인간 및 돌연변이의 암울한 모습을 묘사한다. 패배의 공기가 엄습하는 암울한 세상 가운데서 미래를 바꾸기 위해 울버린이 과거의 매그니토와 프로페서 X를 어떻게 설득하며 미래를 바꿀 것인가 하는 것이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관람 포인트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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