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아이를 가질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엄마가 되고 싶었어.” “아가야, 내가 네 엄마야.” 20초 남짓의 예고편만 봐도 이 드라마, 보통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여주인공이 장서희라니! 시청자의 말초 신경만을 자극하는 ‘막장 드라마’를 경멸하면서도,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선 환희에 찬 얼굴로 이채영의 부른 배를 쓰다듬고 있는 ‘장서희’를 보고 있노라니 남는 감정은 곧 기대감이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 또한 있다. 극단의 카타르시스를 요구하는 사람들로 득시글대는 대한민국에서 막장 드라마를 쫓아낼 수 없는 노릇이라면 이왕 볼 거 그래도 제대로 만든 걸로 보자. 진짜 진하게 우려낸 막장의 아우라가 판치는 드라마로. 그러니 막장 드라마의 여왕님, 장서희의 귀환은 그 이름 석 자 만으로도 반가운 이벤트가 아니겠는가.

게다가 이 드라마, 장서희의 이름값이 아깝지 않은 말초 신경을 건드리는 설정이 곳곳에 넘쳐난다. 뽀얀 얼굴에 눈물을 달고선 화면을 응시하는 장서희와 그녀의 음울한 목소리. “저는 아이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까만 바탕에 튄 핏자국에 새겨진 이름, ‘대리모’ - 남편의 정자를 제3자인 여성에게 인공 수정하여 자식을 낳게 할 때의 제삼자인 여성. - 이후 마법처럼 덩그러니 나타난 유모차와 기대감에 부풀어 오른 장서희의 표정. “이렇게 해서라도 엄마가 되고 싶었어...” 모빌과 아기 운동화 그리고 초음파 사진.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라며 울먹이던 얼굴이 이제는 환희의 눈물로 바뀌었다.

이다음 씬에선 무서운 장면이 없어도 무서운 영화라고 홍보했던 컨저링만큼이나 섬뜩함이 몰아친다. “아가야…. 내가 네 엄마야….”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의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묘하게 소름 끼치는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장서희. 그녀는 남의 뱃속의 내 아이인 듯 내 아이가 아닌 내 아이를 쓰다듬느라 넋이 나가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혼이 빠져나간 사람 같아 소름 끼치기 그지없다. 그리고 장서희와 상반되는 싸늘한 얼굴로 화면을 응시하는 임산부 역의 이채영. 부른 배를 가진 것은 이채영인데 정작 그녀의 얼굴엔 일말의 모성애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또한 섬뜩하다. 그 모습은 마치 혼이 빠져나간 마리오네트를 조종하는 인형사 같다.

드라마 속 몇 장면을 커트하여 내보내는 기존 일일드라마 예고편과 달리 CF처럼 구성된 뻐꾸기 둥지의 예고 영상은 첫 등장만으로도 이미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시청률 표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하면서도 인터넷에서 회자하는 일이 거의 없었던 여느 KBS 일일극과 달리 뻐꾸기 둥지는 이미 네티즌의 입소문을 타며 화제가 되고 있다.

KBS 일일극 ‘천상여자’의 후속작으로 결정된 ‘뻐꾸기 둥지’는 모성애를 전면에 내세운 복수극이다. “친오빠를 죽음으로 내몬 여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대리모를 자처한 여자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추상적인 이미지로 나열된 CF처럼 다소 불친절한 방식의 예고편이었으나 제작진이 밝힌 드라마의 짧은 줄거리와 몽환적인 두 편의 티저 예고편을 결합해서 보면 대충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저는 가족을 잃었습니다.” 백연희(장서희 분)의 감정이 중심이었던 1차 예고편과 달리 두 번째 예고편은 복수의 당사자, 이화영(이채영 분)을 주인공으로 무대가 열린다. 상복을 입고 분노를 억누르며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이화영. 무언가를 다짐한 듯 얼굴을 닦아내자 마치 떨어져 내리는 눈물방울이 튀듯 유리알이 솟구쳐 오른다. 아이 용품이 추상적으로 비추어졌던 백연희 편의 예고편과 달리 이번에는 마스카라와 붉게 바른 입술 등 계획적인 요부의 이미지가 스쳐 지나간다.

백연희 편의 예고편에 비추어보자면 아이를 철저하게 복수의 도구로 이용하겠다는 이화영의 다짐이 비추어지는 장면이다. “이렇게라도 아이를 가지고 싶었습니다.”라는 장서희의 말을 비웃듯 “이렇게라도 복수하고 싶었어.”라고 읊조리는 그녀. 마치 성모마리아처럼 순백의 모양새로 아이를 끌어안고 행복에 잠겨있던 장서희가 예의 그 대사, “아가야. 내가 네 엄마야.”를 중얼거리는데 바로 다음 장면이 섬뜩하기 그지없다.

어느새 스르륵 옆으로 다가서선 아이를 내려다보며 여유 넘치는 포즈로 중얼대는 이화영의 입은 바로 백연희의 그 말을 따라 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네 엄마야.” 순간 세상을 다 가졌다가 놓아 버려야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겁에 질린 장서희의 얼굴이 애처롭다.

아이를 너무나도 갖고 싶었던 여자, 백연희는 대리모를 통한 인공 수정으로 내 배가 아닌 남의 배를 빌려 자식을 갖고자 했을 것이다. 우발적인 분노였는지 아니면 접근부터가 계획적인 복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렇게 백연희의 대리모가 되어준 이화영은 아이를 미끼삼아 백연희에게 상처 입힐 것이다. 그게 오빠를 죽인 여자가 받아야 할 응당한 죗값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가족을 잃은 대가를 자신의 배를 빌려주고 낳은 아이에 치환하다니 이보다 더 서글픈 복수극이 또 어디 있을까.

사실 이 드라마는 이미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은 잔혹성을 띠고 있다. ‘뻐꾸기 둥지’ 뻐꾸기는 낳은 알을 ‘탁란’하는 습성이 있다. 자기 새끼를 기를 능력이 되지 않는 뻐꾸기가 몸집이 비슷한 어미를 물색하여 알을 물어다 놓고 대신 키우게 하는 일이다. 이미 낳아둔 알을 굴러 떨어뜨리고 자신의 알을 품게 하는 영악성에 깜빡 넘어간 불의의 피해조(鳥) 개똥지빠귀 부류는 속은 것도 모르고 남의 새를 정성 들여 키운다. 그렇게 태어난 알은 둥지 안의 다른 알들을 등으로 실어 떨어뜨리며 혼자 개똥지빠귀의 먹이를 받아먹다가 성조가 되면 훌쩍 둥지를 떠나버리는 것이다.

드라마의 내용을 빌려 생각해보면 ‘뻐꾸기 둥지’가 아닌 ‘개똥지빠귀 둥지’가 되어야 어울리는 제목이 아닐까 싶다. “저는 아이를 가질 수 없습니다.” “저는 가족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두 여자의 선언 같은 목소리에 담긴 ‘상실감’을 되새겨본다면 이 뻐꾸기 둥지라는 제목은 채우지 못한 모성애의 허망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 그새 수긍이 간다. 둥지를 가질 수 없어 내 알을 탁란할 수밖에 없었던 여자. 복수를 위해 거짓된 둥지를 지은 여자. 알을 넘겨버린 뻐꾸기 둥지는 채워지려야 채울 수 없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곳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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