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의 후반부 주요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별한 날도 아닌데 일상처럼 외화를 즐겨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만화 영화나 이해하기 쉬운 블록버스터급 대작이 아닌 어린아이에겐 심오한 내용의 소규모 걸작들이 주를 이었지만, 단상처럼 스쳐 가는 몇 개의 장면이나 성우의 목소리는 여전히 뇌리에 남아있어요. 문제는 대체로 오다가다 혹은 채널을 돌리다 본 것들이라 대부분의 제목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죠. 인터넷이 대중화되고 포털사이트가 활성화되었을 때 가장 먼저 구했던 정보의 이름이 바로 그 시절 봤던 어느 인상적인 영화의 제목이었습니다.

인공지능 컴퓨터와 하루를 여는 부부, 인공지능 전문가인 과학자 남편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의 아내를 지배하기 위한 슈퍼컴퓨터의 반란이 시작되죠. 그가 하인이었을 때까지만 해도 마냥 편리하기만 했던 컴퓨터의 컨트롤 능력이 한순간 재앙으로 뒤바뀌어 버립니다. 안주인을 굴복시키기 위해 친한 소녀를 감전사시키는 환영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던 장면. 도대체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 거냐고 외치는 그녀에게 우아하고 정중해서 더 섬뜩했던 성우의 연기가 전한 한마디는 지금도 어제 들은 듯 선명합니다. "우리……. 아이요." 몇 개의 키워드로 알아낸 이 영화의 제목은 바로 프로테우스4였습니다.

인공 지능을 가진 슈퍼컴퓨터가 인간을 노예로 부리게 될 것이라는 공포는 첨단 사회라 불리는 21세기에도 여전합니다. 무려 1977년의 영화인 프로테우스4의 세계관이 구축한 인간의, 인공지능을 향한 경외심이 2014년의 영화 트랜센던스에도 남아있으니까요. 인간은 새로운 것을 이해할 수 없어 두려워하며 그래서 결국,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인공지능을 찬미하는 천재 과학자 윌 캐스터(조니뎁 분)이 그가 개발 중인 인공지능 기술을 발표할 때 가슴이 받아들일 수 있는 용량만큼만 이해하며 신기해하고 농담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던 관중이 그것에겐 이 자리에 앉은 모두의 지능을 합친 것마저도 '기초 지능'밖에 되지 않는다는 정보엔 웃음기가 가셔버리죠. 받아들일 수 있는 강도의 이해심을 넘어섰던 것입니다. 인간이 지배할 수 없는 컴퓨터는 이미 기계가 아닌 것. 공포에 질린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윌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신을 창조하려 하십니까?" "인간은 늘 그래 왔지 않나요?"라는 윌의 우문현답.

인공지능 이상의 인공지능. 즉 트랜센던스를 개발 중이었던 윌은 이를 저지하려는 반 과학단체 RIFT에게 테러를 당하고 그의 몸은 심각한 방사능 오염에 침투되어 시들어 갑니다. 그리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 이상의 천재 과학자이자 윌의 아내, 에블린. 비록 기술력은 그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꿈의 크기와 그것을 실현하리라는 믿음만큼은 윌 이상이었던 그녀는 슈퍼컴퓨터 핀의 부속을 그의 뇌파와 연결해 윌의 정신을 인터넷이라는 우주 위로 업로드합니다. 육체는 소멸되었지만 살아있을 때보다 더 방대한 범위의 세계를 갖게 된 윌. 슈퍼컴퓨터의 트랜센던스가 인간의 정신과 영혼마저 복제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거야말로 궁극적인 플라토닉 러브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이 영화는 묘하게 '사랑과 영혼'을 닮아있기도 합니다.

인공지능을 가진 컴퓨터에게 지배당하는 세계를 그린 기존의 영화들은 줄곧 인간성만이 선이며 기계를 차단하는 것이 곧 정의라고 그리곤 했었습니다. 트랜센던스에서 그린 기계와 인간의 관계 또한 하등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트랜센던스가 된 윌의 힘은 분명 편리하고 효율적이며 또한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증권가를 조작해 순식간에 몇백 억을 벌어들이고 선천적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이에게 빛을 선사하며 심지어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는 데까지 이르렀으니까요. 하지만 편리하게만 느껴졌던 그의 힘이 정신을 지배하고 육체를 조종하여 그의 뜻대로 움직이게 되자 인간은 공포를 느낍니다. 심지어 그의 아내 에블린마저도, 그녀의 호르몬 수치까지 외고 있는 남편에게 환멸을 느낍니다. "내 정신은 내 거야!"라고 외치는 에블린.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조종하는 것이 네게 이로울 것 같았다는 윌. 이건 마치 자유의지와 순종 사이에서 갈등하는 신과 인간의 오랜 싸움과도 닮아있지 않습니까?

네, 공상과학 영화 같은 트랜센던스는 뜻밖에 감히 기계가 침투할 수 없는 영역인 신의 권능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윌의 궁극적인 목표 - 상처 난 세포를 재생하는 것 - 또한 예수의 업적과 일맥상통하지요. 앞 못 보는 자를 눈 뜨게 하리라. 죽은 자를 부활시키리라. 윌은 아담에게 신이 그랬던 것처럼 아무것도 너희들에게 바라지 않고 오로지 나를 믿어줄 것, 의심 없이 순종할 것을 권고합니다. "왜 나를 믿지 않았어." 그를 떠났던 에블린을 바라보는 윌의 얼굴은 마치 선악과를 따먹은 하와를 향한 신의 배신감과도 닮아 보이더군요. 그리고 윌은 미래의 전개를 알 수 있는 초인 그리스도가 다 알면서도 유다를 버리지 않았던 것처럼 바이러스를 품어온 에블린을 받아들입니다.

트랜센던스의 세계관은 모든 신화의 근간이 되는 신과 인간의 전쟁입니다. 자유의지를 중간에 놓은. 신은 인간에게 순종할 것을 권고합니다. 물론 그건 우리를 위한 거죠. 윌의 사고를 이어받은 하이브리들처럼 신의 말을 따르기만 한다면 전쟁이나 오염된 환경 또한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자유의지를 갈구하지 않는 인간이라니. 좀비와 하등 다를 것이 없습니다. 만약 인간에게 다시금 선택권을 준다고 해도 그들은 몇 번이고 선악과를 따먹을 것이고 몇 번씩이나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것입니다. 하지만 신은 그가 여태껏 만든 것 중 가장 시건방진 이 골칫덩이에게 수시로 배신을 당하면서도 아니 당할 것을 알면서도 그들을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게 바로 신과 인간이 가진 숙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라마와 예능 연예계 핫이슈 모든 문화에 대한 어설픈 리뷰 http://doctorcall.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