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4일 방영된 <개과천선>, 경찰서에서 우연히 혜령(김윤서 분)과 마주친 김석주(김명민 분). 혜령은 김석주에게 분노를 쏟아내며 침을 뱉는다. 모욕당했다 생각한 김석주는 항의하려 하고 그런 김석주를 이지윤(박민영 분)은 말린다. 도대체 자신이 과거에 어떤 인물이었기에 이런 일까지 겪느냐는 김석주의 말에 이지윤은 정말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으냐고 반문하며, 차영우(김상중 분)가 내가 알고 있는 당신보다 실제 당신이 20배나 더 대단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당신은 지금 어렴풋이 알게 되는 당신보다 20배, 아니 그 이상 더 나쁜 놈이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런 이지윤의 말에 긴가민가했지만, 시스타호 서해기름유출 사건 와중에 얼핏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 김석주의 눈엔 결국 눈물이 고이고 만다. 서해안 어민들의 생계를 빼앗은, 그리고 노인 한 분이 건물에서 떨어지도록 절망케 만든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김석주가 포기한 시스타호 사건을 맡고 '로또'를 맞은 듯 기뻐하는 강팀장(이한위 분)처럼 그저 높은 수임료로만 측정되었던 사건의 이면에 누군가의 불행과 고통이 숨어 있음을, 병원에서 도운 환자의 보호자가 건네준 음료수 한 병의 의미를 각별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김석주는 비로소 알아채기 시작한 것이다.
최유라 작가의 <개과천선> 역시 마찬가지다. 개과천선이라는 선명한 결과를 제시하는 제목과 달리, 드라마는 김석주라는 이 시대의 잘 나가는 변호사가 자신을 잃고 되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문제들을 꼼꼼히 짚어간다.
태진전자 인수건을 둘러싼 과정에서 변호사로서의 김석주가 가진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통해, 충분히 비도덕적일 수 있는 자신의 일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더니, 이제 시스타호 보상 사건을 통해 그 비도덕적인 일의 범위가 돈 몇 푼의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의 실제 삶을 빼앗고 목숨까지도 빼앗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로또'라는 표현처럼 높은 수임료, 그에 따른 명망이라는 변호사라는 직업적 능력이라는 배후에, 5년 동안 보상 한 푼 받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를 정도로 생존의 기반을 빼앗긴 어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김석주는 이제야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쓰리 데이즈>의 김은희 작가와 <개과천선>의 최유라 작가가 공통으로 전하고자 하는 것은, 이 사회의 거대한 비리나 부도덕의 폭로가 아니다. 귀결되는 것은 그것을 그렇게 되도록 만든, 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하는 일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에 대해 무책임하거나 무감각한 사람들, 바로 우리 자신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굳이 멀리 찾을 것도 없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거대한 슬픔의 현장에서 우리가 낱낱이 목격하고 있는 무책임과 방기가 바로 그것이다. 정작 우리가 기억하겠다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급격하게 잊고 무디어져 가는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두 작가는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기억하겠다고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겠다는 것인가라며, 우리 사회에서 기억하는 방식은 무엇이어야 하냐고,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일에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있냐고 김석주와 이동휘를 통해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모든 일들이 고도로 체계화되면서 개인들은 원자화된 부속품으로 각자 일의 미시적인 분야에만 골몰하도록 편제되어 간다. 그러기에 더더욱 자신의 일이 가진 사회적 의미를 길어내지 못한 채 그저 몇 푼의 돈이나 직위로만 그 일의 의미를 치환하기 십상이다. 그러기에 알랭 드 보통은 굳이 식탁 위의 참치 통조림을 거슬러 남태평양의 참치잡이 어선까지 갔을 것이다. <개과천선>의 김석주나 <쓰리 데이즈>의 이동휘가 우리에게는 알랭 드 보통의 참치 통조림과 같다. 그들을 통해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 잊었거나 무시했던 삶의 수단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통찰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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