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기자 121명이 민간잠수부 사망을 유가족 탓으로 돌린 자사 보도에 대해 사죄했다.

▲ MBC 기자 121명이 민간잠수부 사망을 유가족 탓으로 돌린 자사 보도에 대해 사죄했다. (사진=미디어스)

MBC기자회(회장 조승원) 소속 30기 이하 기자들 121명은 12일 집단 성명을 내어 “참담하고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이들은 이광욱 잠수부 사망에 대해 “잠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맹골수도에서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다. 조급증에 걸린 우리 사회가 왜 잠수부를 빨리 투입하지 않느냐며 그를 떠민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라고 보도한 7일 MBC <뉴스데스크> 방송을 비롯해 MBC의 세월호 참사 보도 전반에 대해 사과했다. (해당 보도 바로가기)

이들은 “지난주 MBC <뉴스데스크>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을 모욕하고 비난했다. 세월호 취재를 전두지휘해 온 전국부장이 직접 기사를 썼고 보도국장이 최종 판단해 방송이 나갔다”며 “국가의 무책임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를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그들을 훈계하면서 조급한 비애국적 세력인 것처럼 몰아갔다. 한마디로 ‘보도참사였다. 이런 ’참사‘를 막지 못한 책임은 저희 MBC 기자들에게 있다. 가슴을 치며 머리 숙인다”고 말했다.

이들은 “MBC는 이번 참사에서 보도의 기본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며 “실종자 가족들에게 더 큰 고통을 준 것은 물론 국민들에겐 큰 혼란과 불신을 안겨줬으며, 긴급한 구조상황에서 혼선을 일으키는데도 일조하고 말았다. 희생자 가족과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이어, “MBC가 언론 본연의 모습 되찾을 수 있도록 끈질기게 맞설 것이며, 무엇보다 기자정신과 양심만큼은 결코 저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보도에 대해서는 내부에서조차 ‘사상 최악의 보도’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조승원 MBC기자회장은 “우리 보도의 근간을 뒤흔들고 MBC 뉴스에 먹칠을 한 보도인 만큼 기자들 스스로 일일이 동의를 받아 성명을 냈다”며 “이번 성명에는 기자회 소속 막내기수부터 차장급까지 121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MBC기자회 성명 전문.

<참담하고 부끄럽습니다>

지난주 MBC 뉴스데스크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을 모욕하고 비난했습니다. 세월호 취재를 진두지휘해온 전국부장이 직접 기사를 썼고, 보도국장이 최종 판단해 방송이 나갔습니다. 이 보도는 실종자 가족들이 ‘해양수산부장관과 해경청장을 압박’하고 ‘총리에게 물을 끼얹고’ ‘청와대로 행진’을 했다면서, ‘잠수부를 죽음으로 떠민 조급증’이 아니냐고 따졌습니다. 이어, 왜 중국인들처럼 ‘애국적 구호’를 외치지 않는지, 또 일본인처럼 슬픔을 ‘속마음 깊이 감추’지 않는지를 탓하기까지 했습니다.

국가의 무책임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를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그들을 훈계하면서 조급한 비애국적 세력인 것처럼 몰아갔습니다. 비이성적, 비상식적인 것은 물론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는 보도였습니다. 한마디로 ‘보도 참사‘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참사’를 막지 못한 책임, 저희 MBC 기자들에게 있습니다. 가슴을 치며 머리 숙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해경의 초동 대처와 수색, 그리고 재난 대응체계와 위기관리 시스템 등 정부 책임과 관련한 보도에 있어, MBC는 그 어느 방송보다 소홀했습니다. 정몽준 의원 아들의 ‘막말’과 공직자들의 부적절한 처신 등 실종자 가족들을 향한 가학 행위도 유독 MBC 뉴스에선 볼 수 없었습니다. 또 유족과 실종자 가족을 찾아간 박근혜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는 빠짐없이 충실하게 보도한 반면, 현장 상황은 누락하거나 왜곡했습니다. 결국 정부에 대한 비판은 축소됐고, 권력은 감시의 대상이 아닌 보호의 대상이 됐습니다.

더구나 MBC는 이번 참사에서 보도의 기본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신뢰할 수 없는 정부 발표를 그대로 ‘받아쓰기’ 한 결과, ‘학생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냈는가 하면, ‘구조인력 7백 명’ ‘함정 239척’ ‘최대 투입’ 등 실제 수색 상황과는 동떨어진 보도를 습관처럼 이어갔습니다. 실종자 가족에게 더 큰 고통을 준 것은 물론, 국민들에겐 큰 혼란과 불신을 안겨줬으며, 긴급한 구조상황에서 혼선을 일으키는데도 일조하고 말았습니다. 이점 희생자 가족과 국민 여러분께 사죄드립니다.

해직과 정직, 업무 배제와 같은 폭압적 상황 속에서 MBC 뉴스는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사실을 신성시하는 저널리즘의 기본부터 다시 바로잡겠습니다. 재난 보도의 준칙도 마련해 다시 이런 ‘보도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MBC가 언론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끈질기게 맞설 것이며, 무엇보다 기자정신과 양심만큼은 결코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MBC 기자회 소속 30기 이하 기자 121명 일동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