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8일) 대다수 일간지들은 모두 1면 머릿기사로 ‘탈북자 위장 간첩 사건’을 다뤘다. ‘10년만의 남파 간첩 체포’라 그런지 각 신문들은 지면을 대폭 할애하며 경쟁적으로 떠들썩한 보도를 내놓았다.

‘한국판 마타하리’, ‘미녀간첩’, ‘성 로비’ 등의 시선을 끄는 제목 아래에는, 그 옛날의 <선데이 서울>에서나 볼 수 있던 눈 모자이크(혹은 검은 띠) 사진으로 피의자의 얼굴이 붙어있다. 피의자 원씨의 30여년 인생 스토리도 함께 소개됐다. 언론사들이 영화 ‘쉬리’에 비교해가면서 구구절절 다룬 피의자의 한·중·일을 오간 연애사 등은 기사 내용처럼 마치 한편의 영화와 같아 보인다.

특히 조선·중앙·동아일보 등은 이번 간첩사건과 관련, 자기 매체의 본색(?)을 드러내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마치 간첩보도의 정통 혹은 절대 강자를 다투는 것 같기도 하다.

조선, 햇볕정책 10년 탓하며 ‘안보 불감증’ 강조…한나라 논평과 ‘쌍생아’

▲ 조선일보 8월 28일치 4면.
우선 조선일보는 28일자 A1면 기사 <위장탈북 女간첩 검거-북 공작원 원정화, 군장교 등 사귀며 기밀 빼내>에 이어 A3면 전면을 털어 <‘탈북 위장한 간첩’ 첫 적발 충격-‘한국판 마타하라’…장교들 포섭, 정보요원 암살 노렸다>, <女간첩 원정화는 누구>, <원정화 붙잡기까지> 등의 기사를 게재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A4면에서 <女간첩 충격 - ‘햇볕 10년’에 軍도 안보불감증> 기사를 통해 “이번 사건은 지난 10년간의 남북 화해무드 속에서 우리 사회가 ‘안보 불감증’에 깊숙이 중독돼 있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또 익명의 검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햇볕정책 등으로 지난 10년간 우리의 대공(對共) 시스템은 사실상 작동정지 상태였다”며 지난 정권에 책임을 돌리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이날 조선일보 기사의 요약판은 같은 날 한나라당이 발표한 논평에서도 찾을 수 있다. 차명진 한나라당 대변인은 간첩사건과 관련 논평에서 “이것도 10년 좌파정권의 적폐다…간첩도 잡아야 하지만 친북용공풍토도 잡아야 한다”라며 ‘잃어버린 10년론’을 꺼내들어 맹비난했다.

중앙 “미모 여간첩” 운운…상업적 선정주의 ‘우세’

‘삼성계’ 중앙일보는 역시 상업주의적인 보도에서 한수 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오늘자 1면 머릿기사 <30대 미모 여간첩 장교 4명 ‘성포섭’-탈북 위장…군사기밀 북으로 빼내>에 이어 2면과 3면을 할애해 <군부대 맘껏 활보…장병에 북 찬양 강연 52회>, <원정화 “난 북한 보위부 소속이다” 중위 알고도 신고 안해…“사랑했다”> 등의 기사를 통해 피의자의 외모와 연애사에 집착(?)하면서 매우 선정적인 보도 행태를 선보였다.

중앙일보는 3면 기사 <아연 5t 훔치다 총살형 위기 / 북 "대담하다"…공작원 훈련 - 원정화 인생 34년>에서 피의자 원씨에 대해 "제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 장교들을 미인계로 농락했던 독일 스파이 마타하리의 활동과 흡사하다"면서 "그는 한국으로의 입국, 정착, 군사 기밀 수집 등 중요한 순간마다 애정 관계를 매개로 남성들을 이용했다"며 "합동수사본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다소 살이 오른 모습이기는 하지만 전형적인 북한 미인형의 얼굴"이라며 외모까지 상세히 보도했다.

이어 해당기사에 '소령의 연인, 중위와 동거, 경찰관과 사귀기도'라는 중간제목을 달면서 피의자 원씨의 여러 남자와 관련된 연애사에 대해 "친밀한 관계를 가졌던 군인들은 모두 7명에 이른다"고 자세히 다루기도 했다.

동아, ‘반공’과 ‘선정성’ 동시에…조·중 따라잡기?

▲ 동아일보 8월 28일치 4면.
동아일보는 일단 조선의 '반공 정신'과 중앙의 '상업 정신' 모두를 따라가려 한 듯하다. 동아일보는 4면기사 <동거 20대 장교 "간첩인줄 알았지만…">에서 익명의 군 고위관계자의 말을 빌어 "군을 책임질 장교들이 여간첩의 성 농락에 놀아나는 사태가 빚어진 것은 지난 좌파정권에서 주적 개념 삭제 등으로 대북 안보관이 해이해진 것도 원인"이라는 발언을 통해 '좌파정권 책임론'을 내세우며 동아일보의 정치색을 드러냈다.

또 5면기사 <탈북자 신분 역이용 대북무역 벌여/ 공작금 스스로 벌고 휴대전화 지령>에서는 북한 대남간첩 조직변화'를 그래픽 기사로 다루면서 추억의 '조직도'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이어 자극적 기사 제목을 뽑아내며 여과없이 선정성을 나타냈다. 다음은 동아일보의 관련 기사 제목이다.

1면 <위장탈북 30대 女간첩 검거>
4면 <장교들에 性(성)미끼로 軍(군)기밀 수집 ‘한국판 마타하리’>
4면 <동거 20대 장교 “간첩인줄 알았지만…”-사랑에 속은 ‘원씨의 남자들’>
5면 <“장교가 여간첩에 놀아나…” 당혹한 軍>

결국 일관된 공통점은 조선일보가 원조인 “공산당이 싫어요”식 보도, 즉 ‘공안 선정주의’ 혹은 ‘안보 상업주의 보도’다. 물론 이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그저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는 저널리즘’이 밑바탕되어야 빛을 발하게 된다.

더욱이 이번 사건은 지난해 신정아 게이트를 통해 보여준 ‘연애담’ 집착적인 보도 행태에, 시뻘건 ‘반공’까지 합체된 셈이다. 그야말로 언론에는 확성기 볼륨을 한층 높여야 하는, 더할나위 없는 ‘장날’이 온 것이다.

▲ 한겨레 8월 28일치 9면.
이 가운데 한겨레는 유일하게 피의자의 사진을 넣지 않고, 수원지검 검사의 수사결과 발표 장면을 실었다. 28일자 사회면(9면) 기사 <‘탈북자 위장 여간첩 검거>와 <여간첩 어떻게 살았나> 등을 통해 한겨레는 “중요기밀 유출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경찰 조사를 보도했다.

한겨레의 이날 보도는 합수부 조사 일부 내용과 관련, 의문을 제기해 여느 매체 보도들과 차별성을 나타냈다. 해당 기사<‘탈북자 위장 여간첩 검거>에서 “3여년 전 간첩혐의의 꼬리를 잡고도 이제야 구속기소해 의문점도 생겨나고 있다”면서 “원씨가 (북핵은 자위용 등) 공작원으로서 대담한 발언을 하고 다녔다는 점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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