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드라마 액션씬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싸움박질하기에 충분히 넓은 공간에 주인공을 둘러싼 적, 주인공과 대치하고 싸움이 시작되면 카메라는 주인공의 거친 몸짓을 미학적으로 아름답게 뽑아내기 위하여 때론 스피디하게, 때론 느리게 호흡을 조절해가며 애쓴다. 하지만 이번 주 종영한 <쓰리 데이즈>는 이런 전형적인 액션씬을 뛰어넘은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액션씬하면 기억에 떠오르는 건 드라마보다는 영화다. 많고 많은 빼어난 액션씬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영화의 액션씬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영화 <도둑들>에서 김윤석이 부산의 허름한 아파트 벽을 타잔처럼 타고 다니며 벌였던 총격씬이다. 그 장면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바로 아파트라는 현실적 공간을 가장 절묘하게 활용했던 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액션씬이라면 흔히 떠오르는 부둣가, 낡은 공장터 등 전형적인 장소가 아니라 아파트와 그 아파트에 붙어있는 에어컨 실외기들, 그리고 낡은 아파트에 늘어져 있는 전선줄들이 액션의 도구로서 제 몫을 해내고, 그것을 지형지물로 때로는 수단으로 활용하며 이리저리 아파트 벽을 옮겨 다니며 총격을 벌이는 액션 장면에서 한국이라는 특정한 공간에서만 가능한 현실적 액션을 보여주었단 생각이 든다.

이렇게 영화 <도둑들>처럼 <쓰리 데이즈>의 액션씬 역시 영화 못지않게 공간의 활용에서 진일보한 성취를 보인다. 4회 대통령 암살범으로 오해를 받고 쫓기던 한태경은 대통령을 찾아 탄 기차에서 동료 경호관들과 마주치게 된다. 동료들을 노려보는 것도 잠시 '미안하다'라는 말을 남긴 것과 동시에, 한태경은 기차 통로라는 협소한 공간을 배경으로 양쪽에서 자신을 옭죄어 오는 동료 경호관들과 대결을 벌인다. 이 장면의 묘미는, 여러 명의 경호관들이 한태경을 잡기 위해 몰려들었음에도 기차 객실 통로라는 공간이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정도로 좁기 때문에, 마치 줄 서서 기다리는 듯 한태경과 양쪽에서 차례로 대결을 벌이는 데 있다.

마치 게임처럼, 한 사람이 쓰러지면 다른 쪽 사람이, 그 사람이 쓰러지면 양쪽에서 함께. 한태경은 그런 유리한, 하지만 협소한 공간이라는 기차 통로를 양쪽의 좌석까지 이용하며 다수의 경호관과 액션의 합을 보인다. 이 장면의 묘미는 상위 1%의 경호관 한태경이지만, 결국은 떼로 몰려드는 경호관 동료들에게 제압당하는 현실성에 있다. 주인공이기에 무조건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경호관과 경호관들의 싸움에서 결국은 지고 마는 주인공의 모습이 이 장면의 액션에 현실감을 더해준다.

<쓰리 데이즈>는 요즘 드라마로는 비교적 짧은 16회임에도 액션씬으로는 드라마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조그만 승용차가 그보다 배나 더 큰 트럭을 단번에 전복시키는 2억이 들었다는 카 체이싱은 <쓰리 데이즈>가 자신만만하게 내보인 볼거리였다. 진짜 대통령 암살범 함봉수와 한태경의 최후의 담판이 벌어진 장소는 뜻밖에도 함봉수의 총격으로 앰블런스가 쑤셔 박힌 책방이었다. 거기서 함봉수와 한태경은 책장을 사이에 두고 총과 몸을 이용한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어디 그뿐인가. 윤보원에게 총구를 겨눈 킬러를 향해 몸을 던진 한태경은 킬러와 함께 2층 높이에서 유리창을 부수면서 아래로 나동그라졌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총을 사이에 둔 혈투를 벌인다. 장소도 다양하다. 엘리베이터 안이라는 협소한 공간, 병원 복도, 폭발한 자동차 앞, 자동차 안, 모텔 복도, 모니터실 그리고 16부 갤러리까지 다양한 공간이 액션의 배경으로 활용되었다.

다양한 공간이 활용되는 만큼 그 공간의 지형지물들이 액션의 도구로 활용되는 것 역시 <쓰리 데이즈>의 묘미였다. 때로는 부서진 자동차 유리가, 복도의 문이, 그리고 손에 유일하게 남겨진 핸드폰이, 벽에 걸린 액자가 한태경의 무기가 되었고 <쓰리 데이즈> 액션의 진가를 살려냈다.

<쓰리 데이즈> 액션씬의 특징은 다양한 장소, 다양한 소도구의 활용에만 있지 않다. 전형적인 액션씬의 클리셰인 슬로우 모션 없이, 자칫 눈 한번이라도 깜짝 해버리면 지나칠 정도의 빠른 호흡으로 액션씬의 강도를 전달한 것 또한 <쓰리 데이즈> 액션의 묘미이다. 또한 그런 급박한 호흡으로 싸움을 벌이는 한태경의 감정 또한 고스란히 전달시켜준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를린>이 보인 액션적 성취라고 하면, 짜인 합으로서의 액션이 아니라 날 것 그대로의 정서가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고독한 스파이라는 면에서 <본 시리즈>에 비교되었지만, 고도의 짜여진 액션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는 그 파열음에 집중한 데서 <베를린>의 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쓰리 데이즈>의 액션씬은 바로 <베를린>의 그것에 필적할 만하다 하겠다.

자신이 처한 절박한 위치와 분노를 액션에서 고스란히 표출한 하정우처럼, 한태경의 액션에선 그의 감정이 느껴진다. 그가 존경했던 함봉수와의 대결에서, 서로가 가장 아끼는 사람들이었기에 단 한 방의 가격으로 상대방을 절멸시킬 수도 있지만, 치명적인 급소를 피하면서 상대방을 이 싸움에서 밀어내고 싶어 하는 안타까움이 그들 액션의 합에 담겨있다. 그렇게 경호실장과의 싸움에서 머뭇거리던 한태경은 상대가 킬러가 되면 달라진다. 봐주지 않는다. 막상막하였던 경호실장과 달리, 킬러는 한태경의 발차기 혹은 단호한 가격 한 방에 나가떨어진다.

상황에 따라 액션에 분노가 실린다. 그래도 경호관이기에 적들을 제압하거나 기절시킨다는 목적 하에 언제나 절제하던 한태경이지만, 윤보원을 차량 폭파로 죽이려고 했던 킬러를 향한 그의 주먹엔 절제란 없다. 황윤재가 자신과 한태경을 빼돌린 윤보원의 경찰차 안에서 한태경에게 총까지 들이대며 분노했던 모습은, 이후 그가 함봉수의 조력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그의 절박함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16회 갤러리에서 두 명의 킬러들에게 밀리던 한태경은 문 뒤에 누워있는 동료 경호관들을 발견하고, 마치 게임에서 파워업을 하듯 분노의 액션을 보인다. 배우 박유천의 거친 호흡, 단말마적인 비명, 그리고 단호한 표정은 고스란히 액션의 감정이 되어 전달된다.

<쓰리 데이즈>의 액션은 이야기와 이야기 중간에 끼어든 장르물의 묘미, 혹은 장식과도 같은 것이지만, 그런 형식적 틀을 넘어 액션을 통해 감정을 분출하고 호소하는 묘한 효과를 낳는다. 드라마의 액션씬이라면 언제나 그러려니 하고 봤던 사람들이 숨을 멈추고 집중하며 액션의 호흡과, 거기에 담긴 분노에 빠져들게 만든다. 액션이 대등하게 드라마의 흐름에 간여하며 제 몫을 다함으로써 <쓰리 데이즈>의 긴박한 호흡에 추진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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