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두 편의 드라마가 새로 시작했다.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과 KBS 월화드라마 <빅맨>이다. 하나는 거대 로펌의 잘 나가는 변호사가 우연한 사고로 기억을 잃은 후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는 법정드라마이며, 다른 하나는 고아로 태어나 밑바닥을 살았던 남자가 재벌가의 아들이라는 새 삶을 얻으면서 세상의 불의에 맞서 싸우게 된다는 휴먼드라마다.

역시 김명민이었다. <개과천선>에서 주인공 김석주 역을 맡은 그는 변호사로서의 실력은 그 누구보다 출중하지만 인정에 메마른 냉혈인간의 모습을 기막히게 그려냈다. 비록 저음톤이 주는 무게감, 무표정한 얼굴에서 느껴지는 위트, 묵직하고 진지한 눈빛 등이 <베토벤 바이러스> 나 <드라마의 제왕>에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명민의 카리스마는 그 어떤 배우의 그것보다 깊고 선명하다.

<빅맨>의 강지환 역시 오랜만에 작품을 만난 탓인지 연기에 임하는 자세가 사뭇 남다르게 느껴진다. 볼품없는 사회 하류층의 남자가 상상할 수도 없는 부잣집 아들로 둔갑해 살아가는 연기는 흡사 1인 2역과도 같다. 팔색조의 연기 변신이 필요한 작품이다. 충분히 해낼 것으로 보인다. ‘돈의 화신’에서 그는 연기파 배우라는 수식어를 다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도 그때처럼 예리하고도 명석한 연기를 선보이지 않을까 싶다.

5회를 마친 KBS 수목드라마 <골든크로스>의 김강우도 주목할 만하다. 김명민과 강지환에 비해서 극을 끌어가는 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배우인 것은 사실이지만 <해운대 연인들> 때보다 훨씬 진중한 감정을 작품에 쏟아 붓고 있고 있는 중이다. <해운대 연인들>과 <골든크로스> 모두 남자주인공 직업이 검사다. 그러나 그는 지금, 같은 직업이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내고 있다.

이들 세 작품은 여러 가지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남자 배우가 주연이라는 점이다. 물론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기도 하고 남녀주인공의 케미도 당연히 형성되긴 할 테지만, 세 작품 모두 그것을 핵심 포인트로 삼지 않는다. 멜로 요소가 가미되긴 하겠으나 극의 전체를 아우르는 분위기는 남자 주인공의 고군분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빅맨>의 김지혁이 싸워야 할 상대는 엄청난 재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일단 그들이 사는 세상에 들어가 공존을 하지만 추후에 벌어지는 일들은 그들과의 한판승부가 될 테다. 재력이 적이 될 수는 없다. 다만 그 재력으로 온갖 부정을 저지르는 이들과의 치열한 전쟁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 테다.

<골든크로스>의 강도윤이 매달리고 있는 것은 오직 딸을 죽였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하게 된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고자 함이다. 아버지의 억울함을 두 손 놓고 바라만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더군다나 그는 검사다.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을 위해서라도 그는 아버지를 가정의 품으로 데려와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거대한 로펌 회사와 그 배후에 있는 골든크로스라는 부와 권력을 쥔 세력과 대결을 펼치게 된다.

<개과천선>의 김석주는 <빅맨>의 김지혁, <골든크로스>의 강도윤과는 조금 다른 상황에서 출발한다. 김지혁과 강도윤이 사회의 약자 부류에 속해 있다면, 김석주는 약자 부류를 어느 정도는 주무를 수도 이용할 수도 있는 강자의 편에 서 있다. 그의 인생에 사회가 준 불이익이나 권력에 휘둘린 인권유린 따위는 있을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을 결정하는 선택권을 지니고 있는 자다.

하지만 기억 상실이라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하게 되면서 그는 180도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강자의 자리에서 또 다른 강자의 사회 폭력을 처단하는 캐릭터로 뒤바뀌게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개과천선이 벌어지는 상황인데 김석주야말로 가장 외롭고 힘든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자기 자신을 바꾸는 것처럼 세상에서 지독하고 어려운 일은 없으니까.

자신을 돌아보며 자아성찰을 하게 됨으로써 내 안의 부조리를 타파하겠다는 의지로 살아가게 되는 김석주, 인생의 걸림돌에 넘어지게 되면서 사회의 부조리와 맞닥뜨리고 결국 그 부조리에 저항하는 전사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김지혁과 강도윤. 나와 너, 우리, 그리고 우리가 만든 사회에 남아있는 악습을 있는 힘을 다해 척결하는 역할이 이들 세 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다.

이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설사 그들이 허구의 세계에서 허구의 의지로 부조리를 응징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드라마 속 허구의 세계가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과 너무나도 닮아 있어서, 마치 허구의 세계가 현실 같고, 현실이 허구의 세계와도 같아서. 어쨌든 세 드라마의 세 남자 주인공의 활약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약자들의 승전보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하고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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