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오후 2시,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민주노총은 서울 정동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서 세계노동절 124주년을 맞아 <한국 언론의 ‘노동’ 보도 문제점과 개선 방안>이라는 토론회를 열었다. 조돈문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회의 발제는 ‘한국 언론이 노동을 대하는 태도’, ‘노동 관련 보도, 어떻게 개선해 나갈 것인가’ 등 두 가지였다. 또한, △철도민영화 및 파업 보도 △삼성 및 비정규직 보도에 대한 사례발표도 있었다.

<미디어스>는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이날 토론회 내용을 2부로 나누어 자세히 싣는다. 1부에서는 정호희 민주노총 선전홍보실장의 <한국 언론이 ‘노동’을 대하는 태도>와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의 <‘노동’ 관련 보도, 어떻게 개선해 나갈 것인가> 발제를, 2부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노동 보도 내용을 알 수 있는 사례발표 두 개를 엮어 담는다.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지 않는 언론

“근로자라는 표현을 싫어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노동자를 ‘수동적인 대상’로 보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사회의 주인이자 역사 발전의 주역이다. 하지만 학교, 사회, 언론에서 노동자라는 단어는 이데올로기적인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노동’ 하면 <노동신문> 등 북쪽 이야기를 많이 한다. (노동자라는 말을) 불온시하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현실에서는 정부기구로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이 있다. 법을 보면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혼재하고 있다. 판단컨대, 기득권 세력이 노동자가 아닌 ‘근로자’라는 표현을 강요하거나 선호하는 이유는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로서의 노동자를 의미하는 ‘근로자’를 각인시키려고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정호희 민주노총 홍보실장은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지 않는 점을 비판하며, 근로자, 노무, 인부 등 노동자를 낮춰 부르지 말고 ‘노동자’라는 제 이름을 찾아줘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또한 정호희 홍보실장은 지난 2012년 7월 3일 심상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 법률안> 취지문에 ‘노동자’라는 말이 지니는 역사성과 의미가 잘 드러난다고 말했다.

“근로”라는 용어는 일제시대부터 사용되다가 그 이후 냉전과 분단을 지나 “노동”이라는 용어가 불온시되면서 대체되어 온 것임. 법률에 근로, 근로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국가는 모순되게 북한 이외는 없다는 점, 국가의 통제적 의미가 담긴 근로라는 용어에서 벗어나 노동, 노동자라는 가치중립적 의미를 점진적으로 대체해야 할 필요가 있음. 이에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변경하고 법률의 제명을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에서 ‘노동절 제정에 관한 법률’로 변경함.

정호희 홍보실장은 지난해 12월 철도노조 파업 당시 언론의 보도 태도에서 ‘노동 현안’을 어떻게 다루는지가 잘 드러났다고 말했다.

“불과 몇 달 전, 바로 이 자리. 경찰의 민주노총 침탈과정을 보도하는 다수 언론의 태도에서 (노동자들을 어떻게 보는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몇몇 경악했던 사례를 적시하자면 우선 YTN, TV조선 등이 생중계를 했다는 것이다. 오전 11시 현관 유리창이 깨지는 장면을 보고 앵커가 ‘공권력은 저래야죠’라고 했다. 이것이 이른바 철도파업을 바라보는 종편의 보도 태도였다는 것”

▲ 정호희 민주노총 선전홍보실장이 '한국 언론이 노동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헌법적 기본권’으로서의 ‘노동’ 말하기

공인노무사이기도 한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는 이날 토론회에서 현업 언론인으로서 언론의 노동 관련 보도를 어떤 식으로 개선해야 할 지 견해를 내놨다. 이에 앞서, 민주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것을 ‘언론의 자유’라고 규정했다.

▲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는 한국언론의 노동 관련 보도가 어떤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할 지 제언했다. (사진=미디어스)
강진구 기자가 제시한 개선 방안은 △노동문제를 보는 시각의 전환 △노동기본권과 경영권 충돌 시 조율 필요 △기업 경영위기 부풀리지 말 것 △중소기업 앞세운 재벌의 엄살을 받아쓰지 말 것 △위험하게 흐를 수 있는 ‘노사자율’ 논리에 매몰되지 말 것 △산재 사망사고의 ‘중범죄’ 취급 △기업의 실적보다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보도 △노동 현안을 외면하는 언론에 대한 감시 강화 등 8가지였다.

강진구 기자는 노동 문제를 다루는 언론의 관성이 그대로 드러난 보도 사례를 곁들여 설명해 이해를 높였다. 가장 우선적으로는 “노동문제를 단순히 노사 간 이익이나 권리에 대한 쟁으로 보는 시각을 헌법에 보장돼 있는 기본권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간 언론이 노동자의 파업을 기득권 유지나 개혁에 대한 저항이라며 부정적으로 묘사하거나, 파업으로 인한 피해만을 부각했다면, 앞으로는 노동권이 ‘생존권적 기본권’으로 자유권적 기본권인 기업 활동의 자유보다 상위에 있다는 시각으로 노동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노동인권 관련 헌법 조문>

- 10조 :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예 : 최저임금 논의, 철도노조 간부에 대한 강제순환 전보)
- 11조 : 누구든지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비정규직 차별 문제)
- 23조 :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통상임금 반환 논쟁)
- 32조 :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정리해고 분쟁)
- 33조 :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노동3권을 가진다 (파업보도 관련)

강진구 기자는 노동자들의 권리 요구나 투쟁을 무력화하기 위해 기업 경영위기를 부풀리거나 중소기업을 앞세운 재벌의 엄살을 부각하는 언론의 ‘고민 없는 보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등 대규모 정리해고 앞에서 노사 간 힘의 균형이 파괴된 상태에서 ‘노사자율 논리’는 노동자 보호를 위한 입법규제나 사회적 압력으로부터 재계의 논리를 대변하는데 활용될 수 있으므로 위험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강진구 기자는 지난 4월 1일부터 20일까지 KBS <뉴스9>와 MBC <뉴스데스크>의 노동 관련 보도가 각각 4건에 불과했다는 점을 들어, “노동자가 죽어야 관심 갖고 보도하던 시절에서 이제는 노동자가 죽어도 보도를 외면하는 시절로 변화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노동현안 보도는 국민 알권리 충족 및 민주적 여론 형성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누락하는 것은 왜곡보도보다 더 큰 폐해”라고 말했다.

강진구 기자는 “노사 간 힘의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 언론이 오히려 힘의 쏠림을 부추기는 보도관행을 지속할 경우, 대한민국호 전체가 전복될 수도 있다”며 “언론노동자가 자본의 일방적 논리에서 벗어나 책임 있고 균형 있는 보도로 노동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헌법적 의무이자 시급한 시대적 소명”이라고 밝혔다.

▲ '노동 관련 보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자료집 중 일부

“조직화된 노동자에 대해서는 굉장히 악의적으로 보도하고, 개별 노동자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러다 보니 개별 근로자의 개별 노동권이 유리되고 있다. 언론의 노동 감수성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나, 워낙 대한민국의 노동기본권이 너무 낮은 문제도 있다. 저도 수시로 (노동 관련) 제보를 받고 있지만 항상 기사화할 때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워낙 이런 사례가 많아서 ‘이게 기사가 되느냐’고 묻는 데스크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자주 한계에 부딪친다. ‘기사가 안 될’ 정도로 (노동인권이 보호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경제>, <중앙일보> 등에 노동전문기자들이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안타깝게도 자본 쪽 논리에 기운 노동전문기자들이다. 노동 쪽에 관심을 갖고 균형 있게 보도할 수 있는 기자를 양성하는 것은 진보언론뿐 아니라 노동계 전체의 숙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경향신문>에서는 노동문제에 관심 가지고 전문적으로 취재 분야를 구축하려고 하는 기자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최근 5~6년 전만 해도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노동문제를 노동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식견을 가진 기자들이 없고, 기자들의 역량도 아직 취약한 단계라서 진보언론이 충분히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다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경향신문>은) 비정규직 문제는 작년부터 관심을 갖고 집중보도했다. 올해 1월 보도한 <간접고용의 눈물>을 보고 노사정위원회에서 거꾸로 기사를 쓴 저희를 초청해 발표한 적도 있다.

<경향신문>에서는 아직 노동 보도에 대한 완벽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보도가 현재의 언론 상황에서는 전체 균형을 맞춰주는 보도라고 본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