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비판적 언론학자이고,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이기도 한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진도 현장에 있는 오랜 지기 이상호 기자에게 띄우는 편지를 보내왔다. 현업과 학계 구분할 것 없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언론인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이 때, 진실을 추적하는 동지적 저널리스트에게 보내는 당부 글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 암흑의 심해를 향해 분투를 거듭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수신되길 바란다.

▲ 이상호 GO발뉴스 기자. (고발뉴스 화면 캡쳐)
“네, 형.”
감도 떨어지는 전화 너머 너 목소리가 들린다.
“어디냐?”
너는 병원에 누워 엄살 피우고 있지 않았다.
바지선 위라고 했지?

“오늘 괜찮니?”사실 나는 너의 몸 상태에 관해 물어보는 거였다.
그런데 너는 역시 직업정신에 철저하더군.
“네, 어제보다는 파도가 낮아 괜찮아요.”
몸도 괜찮다고, 문제없다고 너는 답했다.

“상호야, 새끼, 이제 울지 말거레이.”
“네.”
인양해야 할 진상이 아직 많잖아.
수습해야 할 진실이 한참 깊이 잠겨 있잖니.
돌아오면 보자, 건강하고.

“네, 형도요.”
왜 나는 그때 콱 목이 잠겼는지 모르겠다.
왜 핑 눈물이 돌았는지 말이다.
너의 심정을 절절히 이해할 수 있겠더라
너나 나나 다 그런 놈 아니니, 새끼야.

사실 간만에 네게 거는 전화였다.
너 몇 해 전 미국으로 떠나기 전
내가 술자리에서 아주 싫은 소리 내뱉었지.
주변이 다 작살나는데, 선수라는 자가 한심하게
엉뚱한 거 하며 돌아다녀 맘에 안 든다고.

너 그런 꼬락서니 더 이상 안 보겠다고 했다.
이 옹졸한 형은 말이다.
귀국한 후 널 가끔씩 현장에서 보긴 했지만
인사나 받고는 널 외면했다.
벌써 몇 해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흘렀구나.

네가 MBC에서 잘려 나올 때도
고발뉴스 한다고 왔다 갔다 해도
난 모른 척 그냥 지켜보고만 했다.

엑스파일 사건 때 그때 이상호 나오라고
한겨레에다 호기 있게 칼럼 쓰던 이 형은 말이다.

그런 매정한 형이 너한테 이제야 전화 한 통 한다.
욕했다고 욕보는 네가 하도 안타까워서
고발이니 사과니 하는 이야기 오가는 와중의
너에게 괜찮으니 상호야 신경 끄고 꼿꼿이 가라고
응원의 한 말 전하기 위해서다.

한국 민주/정치 다 작살날 때 찍소리 하지 않은 것들이다.
이 재난의 와중에도 국가/권력이 내보내는 목소리를
옮기고 읊는데 그치는 것들이야.
선전에 가담하고 오보를 양산하는 기관에 불과한 것들에게
나라도 너보다 더 심한 욕을 내뱉겠다.

침몰 직전의 청해진 배에 올라타
제주행 무박일일의 홍보기사를 썼던 게 누구냐?
폭죽과 축포를 중계하며 까불던 것들이 누구냐?
그런 것들이 이 대량 멸절의 상황에서는
또 어떤 개 같은 주구(走狗)의 짓을 벌이더냐?

아, 모든 게 엉터리인 저주의 한국호가 아니더냐.
아흐, 통탄하지 않고서는 목도할 수 없는 무능의 체제인 게 맞지 않느냐.
그런 환멸의 국가/권력에 빌붙어서,
죽은 자들을 사장하고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에도 못을 박는 이들에게는
개새끼보다 더 심한 욕질을 퍼부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하니 너는 이제 실종된 주검들 위 바지선에 몸을 꽉 묶고
터져 나오는 욕설 꾹꾹 문지르고 흘러넘치는 분노 꽉꽉 짓누르면서
죽음의 현장을 현장 중계하고
죽임의 현황을 탐사 고발해야 할 것이다.
프로파간다의 교사와 은닉의 음모에 맞서야 할 것이다.

철철 흐를 눈물 쓱쓱 닦아내면서
부정과 선전, 기만과 은닉의 심해에 첨벙 뛰어들어라.
분기로 부정에 맞서고 분노로 진실을 인양해라.
집요하게 끝까지 주검들을 수색하면서
죽음을 초래한 부패의 자본, 무능의 국가를 고발하시라.

그 최후의 작업이 끝날 때까지
울 자격도, 욕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자.
우리 또한 체제에 가담한 죄인이라고 자문하면서
이빨을 으드득 갈고 혀를 꽉 깨물면서
무능의 심해에서 허우적대는 무책임의 권력을 고발해라.

자신만의 이기적인 생존만을 꿈꾸는 부정한 권력을
쩌널리스트/활동가의 진실 탐사 실천으로 고발하면서
원한을 풀고 넋을 위로해 줘야 하지 않겠니..
우리 대신 죽은 저 많은 생명들을 위해서 말일세.
이 봄날 채 생명 피우지 못한 이 땅의 어린 생명들에게 말이다.

▲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 ⓒ미디어스
이기자, 건투를 빈다.
함께 분투하는 동료들에게도 안부 전해주시고,
자네와 함께 현장에 달려간 이 땅의 마지막 선한
저널리스트들에게도 소식 전해주라.
당신들에게 진실 구조의 노역이 남는다.

돌아오면
참았던 눈물과 욕설 맘껏 콸콸 풀어놓을
조촐한 소주 판을 준비할 테니
그때까지는 절대로 눈물 흘리지 말고
진실 인양을 위해 저 암흑의 심해로 뛰어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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