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 열흘이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석연찮은 정보들이 미스터리처럼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렇듯 미스터리나 음모가 창궐하고 있는 배경의 근원에는 정부의 무능함이 있다. 그리고 각각의 쟁점들에는 나름대로 이번 사건을 이해하는 중요한 지점들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미디어스>가 그간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쟁점을 정리해봤다.

세월호의 침몰 원인은?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 원인은 급격한 변침으로 인한 배의 복원력 상실로 귀결되고 있다. 세월호가 석연찮은 이유로 항로를 급격히 변경했고 이 때문에 무게가 한쪽으로 쏠려 결국 침몰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정확한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하겠지만 대다수 언론이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고 원인을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세월호 항로의 급격한 변경이 왜 필요했느냐는 것이다. 이를 두고 한미합동군사훈련설, 조류변화설 등 여러 의혹이 제기된 바 있으나 조타수의 조작 미숙, 항행장비 등의 정비 불량, 과도한 개조와 무리한 화물 적재로 인한 균형 상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추정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 17일 오전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3km 앞 사고 해상에서 해군 해난구조대(SSU)가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다수의 언론 보도에 의하면 당시 항해를 책임졌던 3등 항해사가 항로변경을 위해 우측으로의 변침 지시를 내렸지만 조타를 맡고 있던 조타수가 좌측으로 변침하는 실수를 했다고 한다. 이후 실수를 깨닫고 다시 우측으로 키를 돌리는 과정에서 과도한 변침이 이뤄졌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제대로 결박되지 않은 채 과도하게 적재됐던 화물들이 한쪽으로 쏠리기 시작했고 이것이 결국 사이드램프 제거 및 선실 증축 등으로 이미 복원력이 취약한 상태였던 세월호가 균형을 잃게 되는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복원력을 회복하려는 과정에서 엔진이 멈추고 정전이 되는 사고가 일어난 것은 배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스케이트를 타고 앞으로 나갈 때 속력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는 몸을 옆으로 기울여도 쓰러지지 않지만 속도가 줄면 옆으로 금방 쓰러지게 되는 원리와 동일하다.

선장 등 승무원들이 부실한 대응을 한 이유는?

세월호 침몰 사고의 희생자가 속출한 주요한 이유 중 하나로 선장과 승무원들이 제대로 된 탈출 지시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된다.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착용하도록 한 후 갑판으로 모아 퇴선을 지시했다면 희생자의 숫자는 크게 줄어들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대다수 언론에서 계속 나오고 있다.

▲ 정홍원 국무총리가 17일 새벽 여객선 침몰 보호소가 설치된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을 방문,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발길을 돌리다 시급한 정부의 구조대책을 촉구하며 날아든 물병에 맞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서는 충분한 수사가 진행되어야 하겠지만 선장과 승무원 측은 이미 배가 많이 기울어져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 제대로 된 지시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23일 방송분에 따르면 선장은 구명조끼를 입고 퇴선을 준비하라는 취지로 선내 방송을 주문했으나 실제로는 구명조끼를 착용하라는 방송만 전달됐다는 것이다. 또, 퇴선 지시 전 배의 복원력을 회복하려는 조치가 진행된 것도 제때 퇴선 명령이 이뤄지지 못한 상황을 만들었다는 추측이 제기된다.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는 섣불리 퇴선 명령을 내릴 경우 이후에 사측이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도 나온다. 구조 요청 당시 주변 선박과 해양경찰 등에 교신 내용이 공유되는 공용채널을 사용하지 않았던 점에 대해서 전직 항해사 등이 사측의 사정을 배려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을 제기했다는 점은 이런 추측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사고 해역과 가까이 있는 진도VTS가 아닌 제주VTS 측에 구조요청을 한 것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세월호가 당시 사고 해역의 진입 신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선박의 이상 유무 등을 모니터링 해야 하는 진도VTS 측이 이를 무시했고 이후에도 사고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도VTS를 관할하는 해양경찰 측이 직무를 태만히 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선장 등 승무원 측은 배가 좌측으로 기운 상태에서 진도VTS와 채널이 맞춰져 있는 우측 교신기에 접근할 수 없어 제주VTS와 연결돼있는 좌측 교신기로 구조요청을 하는 바람에 이러한 의혹이 불거진 것으로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진도VTS 측과 세월호 사이에 정확히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수사가 진행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사고 초기 구조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사고 초기부터 해경과 정부의 대응에 대한 문제가 줄기차게 제기된 바 있다. 대표적으로는 승선인원을 정부 측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에 대한 문제다. 세월호의 승선인원은 하루만에 몇 차례나 바뀌었고 CCTV를 확인해 일일이 탑승인원을 확인한 이후에도 명부에 없는 실종자 시신이 발견되는 등 혼란을 빚고 있다. 이는 애초에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 측이 승객명부를 축소 신고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청해진해운 측은 탑승객과 적재화물을 축소 신고해 탈세 등을 기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고 첫 날인 16일 밤의 구조작업이 사실상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24일 UDT 동지회가 해양경찰 측이 사고 둘쨋날 자신들의 구조 참가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입장을 발표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구조 당국이 인명 구조는 처음부터 포기한 채 선체 인양 준비를 목표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현재 실종자 수색을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민간업체인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와 세월호 측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계약이 17일에 이뤄졌다는 사실 역시 주목받고 있다.

▲ 24일 오후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3km 앞 사고 해상에서 민.관.군으로 구성된 구조대원들이 감압챔버 등 최신 잠수장비가 갖춰진 언딘(UNDINE)사의 구조전문 바지선에서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2년 개정된 수난구호법에 의하면 민관이 협력해 해양사고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돼있다. 이를 근거로 해양경찰 측이 사고 직후의 구조활동을 제외하고는 청해진해운이 자체 계약을 통해 구조 및 수색을 진행하기까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인터넷 공간에서 “인명구조까지 민영화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 측과 정부 당국 간의 유착 관계에 대한 섣부른 추측까지 제기되고 있다.

사실상 구조 및 수색 작업을 독점하고 있는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와 다른 민간잠수사들과의 마찰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다이빙벨’ 논란이다. 다이빙벨은 해양사고에 투입될 수 있는 구조 장비인데 커다란 철제 종과 같은 구조의 유선 잠수정과 비슷한 장비인데 공기를 담아 해저로 내려가 잠수부가 교대하며 장시간 수색이 가능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사고 초기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이를 활용하면 20시간 정도 연속으로 작업이 가능하다고 해 화제가 됐었다. 당시 구조 당국은 다이빙벨의 사용을 거부했으나,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 측이 국내의 한 대학에서 다이빙벨을 빌려왔다는 사실이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 측은 수색 초기부터 다이빙벨을 사용할 수는 없었고 수색이 일정 단계에 다다르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회장의 정체는?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 대한 의혹도 불거졌었다. 유병언 전 회장은 속칭 구원파로 알려진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있다. 기독교복음침례회는 국내 기독교계로부터 이단으로 취급 받는다.

▲ 세월호의 선사 청해진해운과 관련된 회사를 수사중인 인천지검 특별수사팀 검찰수사관들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 자택에서 압수물품을 박스에 담아 자택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1987년 ‘오대양사건’은 소위 구원파와 관계된 대표적 사건으로 공예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오대양이라는 회사의 구원파 신도 32명이 집단 자살한 사건이다. 당시 수사 당국은 오대양 대표 박 모씨가 170억원의 사채를 갚지 못해 3명을 살해하고 전모가 드러날 것을 우려해 집단 자살을 벌인 것으로 결론내린 바 있다. 당시 수사에서 당국은 유병언 전 회장 등 구원파 수뇌부와의 연관 관계를 밝히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유병언 전 회장은 한강유람선 사업을 독점하던 세모그룹을 운영하다 부도를 낸 이후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청해진해운 등 계열사 등을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다수의 언론은 유병언 전 회장이 종교적 신념을 공유하는 인간관계를 이용해 헌금의 형태로 사업의 종잣돈을 마련하고 저임금 착취 구조를 형성해 많은 이윤을 남기는 방식으로 사업을 늘려갔다는 관계자의 증언을 보도한 바 있다.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서도 선장 등 임직원이 이른 바 구원파 신도였으며 특히 선장에게 다른 해운사의 절반 밖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이 지급된 것에 이러한 종교적 이유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즉, 종교를 매개로 해 저임금을 지급하고, 남는 돈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정관계 로비를 벌여 사업을 확장하며, 번 돈의 일부를 부동산 투자 등 오너 일가를 위해 유용했을 가능성 등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셈이다.

유병언 전 회장은 ‘아해’라는 가명으로 사진작가로도 활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병언 전 회장은 자신이 찍은 사진을 고가에 계열사에 강매하기도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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