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이틀 연속 드라마 속 두 분의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했다. 4월22일 방영된 <신의 선물-14일> 마지막 회, 자신의 비서실장과 부인이 아들이 저지른 살인 사건을 덮기 위해 지난 10년간 기동찬의 형 기동호를 범인으로 몰고, 그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리거나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 그것도 부족해 이제 어린 샛별이까지 유괴하여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대통령 김남준(강신일 분)은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다. 그동안 용의자 중 한 사람으로 몰렸던 대통령이었고, 그간 벌어진 모든 사건이 대통령의 결심 하나로 해결되어 버리는 허무한 결론이었지만, 그래도 <신의 선물-14일> 속 나라의 최고 책임자는 그 진흙탕 같은 권력의 비리에 발을 담그지 않은 채 스스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4월 23일, <쓰리 데이즈>에서 대통령 이동휘는 경호관 한태경에게 하야 선언이 담긴 USB를 남긴다. 더 이상 자신 때문에 죽는 사람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결심에서 비롯된 하야이다. 팔콘의 앞잡이가 되어 협조한 양진리 사건을 시작으로, 16년이 지나 그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쓰다 김도진의 농간에 휘말려 죽어간 사람들이 이동휘의 뇌리에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이제 김도진은 자신의 앞길을 막는다면, 이동휘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다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이차영 경호관은 납치되었고, 윤보원 순경은 부상을 입었다. 이동휘를 지키려는 이유만으로 한태경은 물론 다른 경호관들도 위험하다. 그래서 이동휘는 결심한다. 자신이 나서기로. 물론 그의 하야 선언이 진짜 하야로 이어질지는 마지막 회까지 두고 볼일이다. 하지만, 하야 결심에 담긴 이동휘의 책임 의식은 하야를 하든, 하지 않든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똑같이 하야를 선언했다는 공통점 외에, <신의 선물-14일>의 김남준과 <쓰리 데이즈>의 이동휘가 가진 또 하나의 공통점은 바로 책임이다. 아니 '하야'라는 외형적 형식이 담보해내는 본질이 책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하야는 책임의 극단적 상징이다.

물론 그 책임의 성격은 다르다. <신의 선물-14일>의 김남준의 경우, 자신의 아들이 살인범이요, 자신의 비서실장과 부인이 그 살해 사건을 덮기 위해 국가 권력을 이용한 측근 비리에 연루된 사례다. 그와 달리 <쓰리 데이즈>의 담론은 거창하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다국적 기업의 컨설턴트로 일하는 과정에서, 다국적 기업과 국내 기업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북한의 도발을 조장하고, 그 과정에서 다수의 선량한 시민이 죽어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대통령의 결자해지이다. 그 결자해지의 과정은 결국 더 많은 돈을 위해 이 나라를 쥐고 흔드는 자본과 그에 결탁한 정관계 세력과의 전쟁이 된다.

그것이 왜곡된 국가 권력의 행사였든, 혹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국민의 목숨을 앗아가게 된 과거사였든, 드라마 속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말한다. 물론, 따지고 보면 <신의 선물-14일>의 김남준이 하야까지 할 일일까 되물을 수 있다. 왜? 그가 한 일은 아니니까. 그는 지난 10년간의 일을 몰랐으니까. 하지만, 김남준은 책임지겠다고 한다.

<쓰리 데이즈>에서 죽은 신규진 비서실장은 이동휘 대통령을 설득한다. 지금에 와서 16년 전 일을 밝힌다고 누가 알아줄 것 같냐고, 그런다고 경제가 더 좋아지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끄집어내서 밝히려고 하냐고. 하지만 이동휘는 반문한다. 그래야 하는 거잖아요. 그게 옳은 일이잖아요? 라고.

그런 모습을 보는 시청자들은 울컥한다. 왜? 잘못했으면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유치원을 다니기도 전에 배웠던 사람들이, 그저 한 나라의 대표자가 책임을 지겠다는 그 말 한 마디에 감동을 받는다. <신의 선물-14일> 속 대통령이나 <쓰리 데이즈>의 대통령은 청와대에 살지만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그들도 대통령이라는 직을 수행하는 우리와 같은 사람일 뿐, 그래서 그들도 우리처럼 자신들이 잘못을 하면 책임지는 보통 시민의 한 사람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만나는 지도자들은 다르다. 대부분의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책임지지 않았다. 잠시 책임지는 척 눈 가리고 아웅하고서는 수십 년이 지나도 국가가 부과한 벌금조차 내지 않으려 갖은 애를 쓴다. 혹은 한 나라를 책임지는 대표자라는 말이 무색하게,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잘못들은 아랫사람 탓이라고 한다. 아랫사람 몇 사람 쳐내면 다 해결된 듯, 여전히 청와대 안의 그 분은 국민 위에 군림해왔다. 사과 한 번 받아보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멀리 청와대까지 갈 것도 없다. 크고 작은 집단을 가릴 것 없이 우리가 만나는 지도자들은 늘 그래왔고, 우리는 그러려니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도자에 대한 결핍을 차곡차곡 쌓아왔고, 그런 현실 속 결핍을 해소해주는 드라마 속 지도자들의 모습에 마음이 울린다. 최근 빈번하게 지도자에 담론을 그려내는 tv는 결국 고이 접어둔 판타지이자, 억눌린 소망의 참을 수 없는 발설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현재의 이 참담한 시간 속에서 <신의 선물-14일>든 <쓰리데이즈>든, 사적이든 공적이든, 현재의 사건이든 과거사든 책임을 다하는 그 누군가를 드라마에서라도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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