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에서 스파이더맨 피터(앤드류 가필드 분)가 겪는 가장 큰 딜레마는 스파이더맨으로 변하는 슈퍼히어로와 피터로 지내는 일상의 괴리일 듯하다. 스파이더맨으로 변신하고 거리의 불의를 해결할 때에는 무소불위의 슈퍼히어로 피터의 모습이지만, 일상의 피터로 돌아올 때에는 여자친구 그웬(엠마 스톤 분)과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평범한 이십대 청년의 전형성을 갖춘다. 가면을 쓸 때는 못할 것 하나 없는 슈퍼히어로지만, 가면을 벗으면 여자친구의 마음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하는 슈퍼히어로의 고단함을 스파이더맨은 보여주고 있다.

피터가 고단하게 사는 것도 어찌 보면 스파이더맨이라는 초능력이 생긴 결과에서 나온 듯하다. 피터가 보통의 이십 대 남자친구처럼 그웬에게 시간 투자를 한다면 그웬과 갈등을 빚을 소지가 줄어들겠지만, 피터는 거리의 자경단 노릇을 하느라 그웬과의 졸업식 약속에도 늦을 위기에 빠지는 등, 그웬에게 충분한 시간 투자를 하지 못함으로 여자친구와 갈등에 종종 빠져든다. 피터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건 거리의 무뢰배가 아니라 여자친구와의 친밀감을 유지하는 일이니 슈퍼맨의 클라크나 배트맨의 브루스 웨인보다 고달픈 슈퍼히어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피터가 쫄쫄이 복장으로 도시의 자경단 역할을 해도 몇몇 시민들은 반가워하지 않는다. 경찰이 아니면서도 도시의 자경단 노릇을 하는 스파이더맨의 활약이 몇몇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모양새로 비춰지기에 그렇다. 이는 <헬보이 2: 골든 아미>에서 헬보이의 활약을 고마워하기는커녕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존재로 간주당하는 헬보이의 비애와 궤를 같이 하기에 충분하며, ‘공리주의’와 ‘기본권’의 충돌이기도 하다.

헬보이와 스파이더맨은 도시의 악을 쓸어내기 위해 활약하고 애쓰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실현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몇몇 시민은 경찰도 아닌 슈퍼히어로가 다른 이들의 삶에 개입하는 활약을 기본권 침해로 간주함으로, 슈퍼히어로의 공리주의는 모든 이들에게 고마움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악당 일렉트로로 변하는 맥스(제이미 폭스 분) 같은 경우에는 ‘인정 욕구’와 맞닿는 캐릭터다. 오스본에서 근무할 때 맥스는 항상 ‘투명인간’ 취급을 당한다. 생일에 야간 근무를 감당해야 하고, 동료는 퇴근해야 한다며 맥스의 부탁을 거절하는 등 맥스는 직장에서 무시당하고 없는 존재로 치부당하기 일쑤다. 이런 맥스에게 스파이더맨은 단비 같은 존재, 다른 이들은 맥스를 무시하지만 스파이더맨은 맥스에게 스파이더맨의 눈과 귀가 되어달라는 부탁을 듣게 되니 맥스는 스파이더맨을 통해 인정 욕구를 해소할 수 있다.

하지만 맥스가 일렉트로로 변해 도시의 전력을 끊어버리자 스파이더맨의 공격을 받는다는 건, 투명인간이 아닌 자신을 인정해준 마지막 이인 스파이더맨에게 인정 욕구를 배신당한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일렉트로가 스파이더맨에게 적의를 갖게 되는 건 개인의 욕구 가운데 하나인 인정 욕구가 배신당한 데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맥스가 일렉트로로 스파이더맨에게 적의를 갖는다는 설정은 인간의 인정 욕구가 얼마만큼 중요한 것인가를 슈퍼히어로 영화를 통해 엿보기에 충분하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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