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종교 영화의 시즌이다. 4월 20일 부활절을 앞두고 일종의 특수를 노리려는 영화사의 계획도 분명 있을 것이나, 이렇게 종교를 소재로 다룬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몰려서 개봉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지난달 개봉한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노아>를 비롯해 한국에서는 CBS에서 방영된 성경을 소재로 다룬 드라마 <더 바이블>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 극장용으로 만든 <선 오브 갓>이 최근 개봉했다. 그리고 나머지 한 개의 영화는 종교 영화의 관점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의미로 화제가 될 수밖에 없는 영화이다. 바로 지난 16일 개봉한 이장호 감독의 작품 <시선>(제작 크로스픽쳐스 ‧ 드림타워, 배급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이다.

<시선>은 감독의 이름이 공개될 때부터 주목을 받았다. 이장호 감독이 만든 영화들은 한국 영화사에 오랫동안 기억될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별들의 고향>, <바람 불어 좋은 날>, <어둠의 자식들>, <꼬방동네 사람들>, <바보선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같이 비평적으로 인정받는 작품은 물론, <무릎과 무릎 사이>, <어우동>, <이장호의 외인구단>처럼 당대 대중 영화의 흐름에도 적절히 맞추며 대중성까지 겸비한 감독이 바로 이장호였다. 하지만 그렇게 70 ~ 80년대를 주름잡던 이장호 감독은 대다수의 노장 감독이 그러하듯 90년대에 접어들며 서서히 주춤하기 시작했다. 그는 <바보선언>의 후속편 격으로 만든 1995년작 <천재선언>을 끝으로 작품 연출에서 사실상 손을 떼었다. 다른 영화의 기획에 몇 번 참여하는 등 영화판에서 완전히 발을 뗀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다시 감독으로 복귀하는 것은 요원해보였다. 그랬던 감독이 오랜만에 신작을 들고 나타났다.

하지만 <시선>은 곧 작품의 소재로 논란이 되었다. 2007년을 뜨겁게 달군 샘물교회 신도들로 구성된 선교단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에게 피랍된 사건을 중심부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대처나 아프가니스탄 파병 문제와 얽혀 있는 정세도 문제가 되었지만 피랍된 사람들의 문제도 심각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은 외교통상부가 여행 자제 국가로 지정했을 정도로 치안이 불안한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그 경고를 무시하고서 무리하게, 그것도 선교를 목적으로 이슬람 문화의 영향이 강한 아프가니스탄에 향했다. 사건이 터진 이후나 결국 안타깝게 두 명의 교인이 희생당한 이후에도 일부 교인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보다는 그들이 ‘순교’했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출 뿐이었다. 그로 인해 영화가 제작되기 이전에도 간간히 비판을 받아왔던 사건을 영화로 만든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곧바로 논란이 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상황이었다. 여기에 영화 촬영을 위해 캄보디아로 출국한 배우 박용식 씨가 현지에서 풍토병에 감염되어 귀국 후 사망하는 사건까지 일어나며 한동안 논란이 거세게 일고 말았다.

그러나 논란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미 이장호라는 이름이 대중에게 지워진 지 20여년의 세월이 흘러 크게 불거지지 않았지만, 영화가 처음으로 공개된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당시부터 이장호 감독은 자신의 전작들을 부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물론 이장호 감독이 기독교와 연관이 많다는 것은 예전부터 짐작할 수 있던 일이긴 했다. 데뷔 초창기인 1982년 이청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맹인 목사 조요한 씨의 일대기를 그린 <낮은 데로 임하소서>를 연출했었고 장기간 영화 연출을 쉬고 있던 무렵에도 아프리카 선교에 대한 다큐멘터리 <하쿠나 마타타 : 지라니 이야기>에 모습을 비추기도 했었다. 또한 워낙 적은 개봉관에서 상영돼 잘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같은 노장 감독들인 이두용, 故 박철수, 정지영 감독과 함께 작업한 옴니버스 영화 <마스터 클래스의 산책>에서도 기독교적 색채가 짙은 작품을 내놓기도 했었다. 하지만 최소한 그때에는 자신의 행로를 전격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었기에 큰 문제는 되지 않았었는데, <시선>의 공개와 발맞춰 감독의 전작을 좋아하던 이들에게 비수를 꽂은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시선>은 어떠한 작품인가. 영화는 엔도 슈사쿠의 유명한 종교 소설 <침묵>을 바탕에 깔고 앞서 언급했던 아프가니스탄 선교단 피랍 사건을 가져와 서사를 전개한다. 다만 영화에서는 아프가니스탄으로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가상의 국가 ‘이스마르’로 살짝 돌려서 표현을 한다. 이스마르 현지에서 약 10여 년 간 선교 활동을 해온 선교사 조요한(오광록 役)은 선교사라고 하기엔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다. 한국에서 온 선교단원들이 현지 언어를 잘 모른다는 것을 이용해 몰래 마을 사람들과 뒷거래를 맺기도 하고 선교단원들이 가져온 돈도 횡령하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선교단원 8명과 함께 피랍을 당하고 이들이 그곳에서 겪는 고난과 갈등의 과정을 영화는 다루고 있다.

이렇게 설정만 훑고 지나가면 딱히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선교단원들을 단순히 선한 사람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선교사 조요한처럼 신도들의 어두운 부분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겉으로는 행복한 장로와 권사 부부 관계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오랫동안 장로가 권사에 폭력 행사를 해왔다거나, 같은 교회의 신도와 불륜 관계에 놓였다는 등 흥미로운 몇몇 설정이 존재한다. 거기다 영화의 원작격인 소설 <침묵>은 가톨릭 신자가 박해받던 일본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고통 받는 신자들에게 아무런 말이 없는 하느님의 ‘침묵’, 그리고 배교와 순교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뤄 오랫동안 명작으로 사랑받던 작품이었다. 분명 잘 버무려내면 성공적인 복귀작으로 남을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초반 20분 이후 원작도, 감독의 명성도 무색하게 끝없이 추락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침묵>을 바탕으로 한 종교적 신념의 문제를 무리하게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과 엮고, 다시 무대를 동남아시아로 옮기면서 생기는 지점이다. <침묵>은 가톨릭 신자가 곧 죄인이었던 시대의 이야기이고 그렇게 절박한 순간에서 발생하는 신념과 생존의 갈림길에 대한 이야기는 실제 역사와 잘 어우러지면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영화는 자발적으로 해외로 선교 활동을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작중 대사관 직원들의 대사로 언급되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들의 행동은 너무나도 무리한 일들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영화는 조요한을 비롯한 선교단원들의 종교적 신념에 대한 선택을 단순히 신실함의 차원에서 묘사를 할 따름이고, 이 과정에서 그들의 근본적으로 지닌 문제는 희석된다. 심지어는 참신할 수 있던 몇몇 인물들의 설정마저 갑자기 지워진다. 불륜을 저지른 신도도, 아내에게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해온 장로도 자신들의 지난 행위에 대한 아무런 고민 없이 그저 종교적 신념을 굳게 믿는 참된 신도로 갑자기 변하는 것은 무척이나 당황스럽다.

이러한 부분이 매우 강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영화 초반부 이스마일에 선교단원들이 피랍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한국의 교인들이 그들의 무사한 귀환을 기원하는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몽타주 형식으로 등장하는 부분이다. 마치 교회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영화를 연상케 할 정도로 해당 장면의 연출은 너무나도 조악하다. 여기에 장면 하단 그들이 피랍된 소식에 달린 악플이 쭉쭉 스크롤 되는 모습이 겹쳐지며 영화는 시작한 지 30분도 안 되어 이것이 무슨 영화인지를 너무나도 확실히 증명하고 만다. 그들의 한계는 물론 그들이 지녀왔던 문제에 대한 복합적인 조망 대신 그들을 모두 신념으로 고민하는 예비 순교자로 만드는 것이다.

작중에서 이스마일 현지 사람들에게 신념을 알리는 방법도 상당히 좋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닌 자본으로 자기가 지닌 신념을 전파한다. 영화 초반 선교를 위해 들린 마을에 장로가 돈을 전달하는 모습은 조요한의 미심쩍은 모습과 얽혀 조금은 블랙 코미디로서의 재미가 들게 만들었지만 이러한 작중 인물들의 행위는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영화는 마치 제3세계 지역을 후원하는 단체들이 종종 제작하는 영상처럼 이스마일 사람들의 비교적 낮은 생활수준을 비추더니, 급기야는 아예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 종교적 신념과 자본을 매우 직접적으로 연결을 시키게 된다. 왜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서 그러한 식의 접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영화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 영화는 오리엔탈리즘적인 문제까지 지니게 된다.

대체 이장호 감독은 어떤 ‘시선’으로 <시선>을 만들고 만 것인가. 영화의 영어 제목은 ‘God’s Eye View’이지만 더 정확히는 신의 이름을 빌려 자신들의 문제를 모조리 눈앞에서 치운 뒤 자신들의 신념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몇몇 신도들의 ‘시선’이 너무나도 강하게 드러나고 만다. 이러한 영화의 내용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감독의 복귀작이라고 칭하기엔 상당히 민망할 뿐이다. 전작들을 부정하면서까지 작품을 이렇게 만들어야 했을까. 그렇게 영화는 관객들에게 감독과 영화에서 드러나는 ‘시선’에 대한 미묘하고 씁쓸한 ‘시선’만을 남기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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