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드라마·가요 등에 이어지고 있는 대중문화계의 리메이크 바람을 이르는 말인데, 정확하게 표현하면 리사이클링에 가깝다. 리사이클링(재활용)이란 단어에 천착하는 이유는 원본 콘텐츠의 제작시기가 10여 년 이상 지난 골동품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를 역으로 추론하면 우리 대중문화계가 여전히 콘텐츠 기근에서 헤어나고 있지 못함을 반증하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드라마 리메이크의 핵은 통속성

▲ MBC 주말 특별기획 '내여자'ⓒMBC

현재 방송 중인 MBC ‘내여자’는 1980년 인기작인 ‘종점’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을 쓴 이희우 작가가 최성실 작가와 함께 대본을 쓰고 있고 고주원·박정철·박솔미·최여진이 주연을 맡았다. 하지만 아직 전작에 비해 큰 반향은 얻지 못하고 있다. 조만간 1990년대 히트작 ‘종합병원’이 리메이크된다고 한다. 또한 영화로 인기를 모은 ‘비트’ ‘타짜’도 드라마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김수현 작가는 얼마전 자신의 작품 ‘청춘의 덫’과 ‘사랑과 야망’을 리메이크했고, 정하연 작가는 ‘아내’를 리메이크해 재미를 봤다. KBS2 ‘돌아온 뚝배기’ 역시 18년 전 방송된 ‘서울 뚝배기’의 리메이크 판이다. 원작자인 김운경 작가와 당시 조연출을 맡았던 이덕건 PD가 연출을 맡았지만, 시청률에서 고전하고 있다.

영화계 역시 인기 드라마의 리메이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2006년 말 드라마 ‘올드미스 다이어리’가 영화로 태어났고,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 인기연속극 ‘수사반장’,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드라마 ‘사랑과 전쟁’ 등이 개봉을 앞두거나 기획 중이다. 드라마가 리메이크되는 이유는 통속성에 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인간의 희로애락엔 세대차가 없기 때문이다. 감정의 얼개는 비슷하니, 극 구조만 시대에 맞게 손을 보면 된다는 얘기다.

장르화된 가요계의 리메이크

▲ 쥬얼리 앨범 자켓

리메이크는 침체된 가요계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장르가 됐다. 요즘 정규 앨범 발매하는 사이에 리메이크 앨범을 내는 것이 통과의례처럼 자리잡았다.

쥬얼리의 ‘원 모어 타임’은 2005년 이탈리아 가수인 그리드의 곡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영화 주제가로 쓰인 김아중의 ‘마리아’와 만능 엔터테이너 현영의 ‘누나의 꿈’ 역시 리메이크곡이다. 강진의 ‘땡벌’ 역시 나훈아의 곡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박혜경은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사이’의 리메이크 곡들이 수록된 앨범을 내 인기를 모았고, ‘소녀시대’의 ‘소녀시대’ 역시 이승철의 ‘소녀시대’를 다시 부른 것이다. 이승기의 ‘추억 속의 그대’도 이승철의 동명 노래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알렉스가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서 불러 화제를 모은 ‘화분’은 러브홀릭의 3집에 수록됐던 곡이다. 김동률의 ‘아이처럼’과 하찌와 TJ의 ‘뽀뽀하고 싶소’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주목받았다.

‘신상’의 시대, 리메이크가 유행하는 까닭

리메이크 열풍은 이 시대가 낳은 사회 지형도와 연결되어 있다. 민생고가 고단한데, 문화지출은 언감생심이다. 시청자도, 관객도, 독자도 마음을 닫았다. 문화향유자의 부침이 이리도 심하니, 문화생산자라고 신이 날 리 없다. 아이디어는 고갈되어, 제작여건은 쩍쩍 갈라진 천수답을 보는 듯하다. 그렇다고 마냥 코를 박고 한탄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 문화의 자생력은 예년에 없던 보릿고개를 리메이크에서 찾았다. 세상이 리사이클링이라는 재활용에 관심 가질 즈음, 문화계 역시 불멸의 콘텐츠를 재활용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리메이크가 큰 흐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이유는 위험성은 낮고, 인지도가 높은 탓이다. 앞서 기술한 작품에서 알 수 있듯, 리메이크 대상은 과거의 인기작이다. 문화 향유자의 연령층 상승도 한몫을 했다. 그나마 수입이 있는 층에서 소비가 일어나는, 요즘 세태를 반영된 결과다. 고루한 문화 구매층은 새로운 트렌드보다는 과거의 익숙한 콘텐츠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

그러나 리메이크 유해론을 얘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과거의 인기에만 영합한 안일함이, 그 지지자들에게 더 큰 실망감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은 재해석이다. 이름만 가져온다고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다. 과거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현 시대의 흐름을 읽는 눈이다. 리메이크에 대해 인식을 ‘재탕’ ‘삼탕’에 머물게 하고 싶지 않다면, 새롭게 원작을 쓸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대중문화계처럼, 리메이크 바람이 불고있는 우리 정치계도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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