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와 광화문에 위치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DMZDocs),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EIDF)와 함께 소위 한국의 3대 다큐멘터리 영화제로 일컬어지는 ‘인디다큐페스티발’의 문이 활짝 열렸다. DMZDocs에 비교하면 예산이 항상 부족해서 걱정이고, EBS에서 다큐멘터리를 동시 상영하는 EIDF에 비하면 접근성에서 밀리지만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현재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인디다큐페스티발은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시작으로 상영되었던 작품, 그리고 상영될 작품에 대한 리뷰와 함께 행사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한다. 방송사에 하는 그저 그런 다큐멘터리에 질렸다면 조금은 귀찮더라도 홍대입구에, 아니면 광화문에 나가보자. 참신하고 의미 있는 다큐들이 그대들을 기다리리라.

3~4월은 영화제를 돌아다니는 씨네필을 비롯해 영화 관계자에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달이다. 길고 긴 영화제 레이스의 시작을 장식하는 첫 번째 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발’이 개막하기 때문이다. 물론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주최하는 ‘시네마테크와 친구들 영화제’를 비롯해 인디다큐페스티발 개막 이전에도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영화제가 열린다. 하지만 영화제의 의미를 따끈따끈한 신작들을 볼 수 있는 차원으로 한정하여 본다면 인디다큐페스티발은 분명 매해 처음으로 시작되는 영화제이며 그 의미는 클 수밖엔 없다.

대부분의 행사가 으레 그렇듯이 영화제는 원래 시작시간이었던 7시보다 약 10분 정도 늦게 시작되었다. 영화제의 개막식은 특별한 기획을 준비하지 않는 이상 비슷비슷하다. 개막식을 축하하는 공연 등의 행사를 열고, 참석한 내외빈과 경쟁/초청작의 감독을 소개하고, 개막 선언을 한 뒤 개막작을 상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개막식에는 여느 때와 달리 특별했다. 개막식 사회를 영화평론가 변성찬 씨와 함께 최근 다큐멘터리 <탐욕의 제국>에 나와 더 이름이 알려지게 된, 남편과 함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지만 남편을 반도체 공정의 산재로 잃어버리고 투쟁하게 된 정애정 씨였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린이집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서일까. 일반인이 진행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정애정 씨의 영화제 사회를 보는 솜씨는 유려했다. 어쩌면 이번 영화제에 자신이 등장했던 <탐욕의 제국>처럼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각지에서 투쟁하는 다큐들이 어느 때보다 이번 영화제에 많이 출품되었다는 사실을 알기에 더 잘하고자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노예도, 그림자도 아닌 한 명의 ‘인간’이기에
[개막작] 그림자들의 섬

▲ 4월 12일 오후 5시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6관/ 4월 16일 오후 12시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6관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한진중공업 조선소가 위치한 부산광역시의 섬 ‘영도’(影島)의 한자를 뜻 그대로 풀어 쓴 이름인 동시에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민영화되기 전, 대한조선공사일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을 비유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정말 그들은 공기업이었을 시절에도, 민영화된 이후에도 회사로부터 인간으로 대접받는 대신 자취를 가늠하기 힘든 ‘그림자’처럼 취급을 받아왔다. 80년대 중반 노동조합을 세우고 계속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워왔지만 사측은 노동자들의 존재를 조망하러 빛을 가져오는 대신 빛을 없애 더 깊은 암흑으로 만들기에 바빴다. 이 다큐는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 자신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호명하며 영화를 보는 독자를 비롯해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려는 목적을 지닌다.

영도에 위치한 한 사진관에서 2011년 희망버스 운동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비롯해 희망버스 운동의 단초가 되었던 2010년 한진중공업의 일방적인 정리해고로 해직당한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기초로 구성된 다큐는 분명 노동에 대한 다큐지만 ‘존재’를 비추고자 하는 특성 때문에 기존의 다큐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영화는 투쟁의 모습을 바로 드러내기보다는 그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어떻게 한진중공업에- 아니면 그 이전의 명칭인 대한조선공사에 입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떻게 살면서 노동을 했는지를 진솔하게 들으려 노력한다. 이들은 제각기 입사한 해도 다르고, 지나왔던 삶의 궤적도 모두 다르지만 공통된 부분이 있다면 자신의 삶을 위해서 이 회사에 들어왔고 그 안에서 문제의식을 느끼면서 노동 운동에 뛰어들게 된 지점이다.

다큐는 이들이 투쟁해왔던 과정을 다루지만 그 과정을 마냥 비장하게 묘사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투쟁 과정에 있던 평범하지만 진솔한 부분을 조망한다. 그리고 조합원 자신의 말과 목소리를 통해 자신들이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졌을 때 제대로 행동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성을 담아낸다. 이렇게 진심이 담긴 목소리를 통해 영화는 단순히 한진중공업의 노동자들에 대한 다큐를 넘어 비슷한 상황에 처한 노동자를 위한 영화가 되고 한진중공업보다도 못한 상황이 수두룩하게 널려 있는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한 영화로 자리잡는다. 또한 중간 중간에 삽입된 당시 현장의 사진과 흑백으로 촬영된 재연들은 리듬감 있게 삽입되어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탐욕의 제국>과 더불어 주목해야 할 노동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되지 않을까. 그저 정식 개봉을 바랄 따름이다.

학살을 바라보고 기억하는 독특한 방법
[추천작] 액트 오브 킬링

▲ 4월 13일 오후 2시 30분 인디스페이스/ 4월 16일 오후 12시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4관
제주도 4.3 사건, 거창 양민학살 사건, 보도연맹 학살사건, 부마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 근현대사의 한편에는 정부의 힘으로 가해진 각종 크고 작은 학살사건이 존재해왔다. 이 사건들은 오랜 시간 동안 해결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가 한국 사회가 조금씩 민주화된 이후에서야 조금씩 진상을 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건을 풀려는 노력에는 많은 걸림돌이 뒤따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인도네시아 역시 마찬가지이다.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는 수하르토를 중심으로 벌어진 쿠데타가 있었고, 약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쓰고 거리에서 집단 학살당했다. 수하르토는 1998년 민중들의 저항으로 인해 30여 년간의 장기 독재를 마치고 퇴진했지만 여전히 학살에 대한 진상을 해결하는 것은 매우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오히려 대중 매체나 연설을 통해서 이러한 학살을 정당화하는 일이 매우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만다. 영화는 이러한 인도네시아의 특수한 상황에서 기획되었고, 그 결과 영화는 매우 독특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바로 학살의 장본인으로 하여금 직접 자신이 일으킨 학살을 영화의 형태로 재연토록 만든 것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당시 집단학살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암살단의 리더는 처음에는 매우 자랑스럽게 자신이 그때 저지른 살인의 행각을 여러 몸짓을 쓰며 재연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마음을 점차 이해하게 된다. 그 외에도 영화는 당시 학살을 주도했던 당사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때 어떤 일을 했었는지, 당시의 심정이 어땠는지에 대해 깊숙하게 묻는다. 매우 태연하게 자신의 범죄를 말하는 그들의 모습에 관객들은 처음에는 경악과 분노와 의아한 심정을 갖게 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달라지는 그들의 태도를 접하는 순간 말로 형용하기 힘든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특히 영화의 엔딩을 장식하는, 마치 한국의 ‘초혼’같이 원혼을 보내는 의식을 보는듯한 장면을 보는 순간 영화의 의미는 한층 짙어지게 된다.

학살자들이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들과 영화 제작자가 함께한 재현의 과정을 통해 (비록 그 모습이 다큐를 촬영한 순간에 드러나는 그 순간의 짧은 것일지라도) 자신의 행위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인식하는 과정은 많은 의미를 지닌다. 스토리텔링으로 무언가를 이해하는 것이 무언인지를 보여주고, 동시에 그 이전에 그들로 하여금 강제적으로라도 자신의 범죄를 생각하게 만들 별다른 조치가 없는 인도네시아의 상황을 보여준다. 어쩌면 연출자가 밝힌 의도처럼 이들이 자신의 당시 행동을 의식하는 것은 일종의 도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별다른 진상조사가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행위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처음으로 받는 일종의 ‘재판’은 아니었을까. 인도네시아와 달리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진상조사는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학살의 주범과 책임자들이 버젓하게 돌아다니는 한국의 상황에서 이러한 모습을 견디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크린에 비추는 이 모습조차도 실제 벌어지는 현실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움직일 때 인도네시아는 물론 한국에서 더 많은 것을 바꿀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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