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의 눈물 몇 방울을 섞은 웃음 폭탄은 한 여름 밤의 찜통더위를 시원하게 날려버릴 수 있을까? 2008베이징올림픽의 감동으로도 채우지 못할 '웃음'에 대한 갈증을 풀어줄 것처럼 경쾌하게 시작한 SBS 드라마스페셜 <워킹맘>(김현희 극본, 오종록 연출)은 '일과 육아, 직장과 가정, 자아성취와 자아상실'의 이항대립적인 상황에 처한 30대 여성의 이야기이다. 잘 나가던 전문직 여성이 결혼과 육아 문제에 발목을 잡히면서 '동네에 남아 있는 아줌마'라는 뜻의 '동남아'로 전락한 상황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여성 시청자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불량남편 길들이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워킹맘>은 직장생활과 집안 살림을 모두 완벽하게 수행해야 하는 여성의 삶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2005년 봄에 방영되었던 <불량주부>와 같은 계보에 놓이는 드라마이다. 다만 <불량주부>가 직장을 잃고 아내 대신 전업주부 생활에 적응해야 했던 남성의 이야기인 반면, <워킹맘>은 결혼과 육아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직장 생활을 어렵게 다시 시작한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아내가 일과 가정 모두 소홀히 할 수 없어 힘들어 하거나 세상 물정 모르는 남편이 서서히 집안 살림의 소중함을 깨달아간다는 설정은 크게 다를 바 없다.

▲ SBS 드라마스페셜 '워킹맘'ⓒSBS

그러나 <워킹맘>은 개연성 없는 상황 전개로 인해 극적 공감대 형성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불량주부>의 아류작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워킹맘>의 '최가영(염정아 분)'은 2002한일월드컵 16강전에서 대한민국이 이탈리아를 상대로 승리한 기쁨에 도취되어 연하의 신입사원 '박재성(봉태규 분)'과 하룻밤 잠자리를 했다가 발목이 잡혀 전도유망한 직장을 그만 두고 전업주부가 된 인물이다. 전업주부 생활 6년차에 접어들 때까지 큰 불만이 없던 최가영에게 유일한 걱정거리라면 철부지 남편 박재성 뿐이었다.

이처럼 아내와 어머니, 며느리 역할까지 흠 잡을 데 없이 소화해내며 열심히 생활하던 최가영은 철부지 남편 박재성이 직장 동료이자 입사 동기인 '고은지(차예련 분)'에게 한 눈을 팔면서 가정을 소홀히 하자 다시 직장 생활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어렵게 비정규직으로 다시 출근하여 부하 직원이었던 고은지 밑에서 무엇 하나 만만하거나 편한 것 없이 힘든 직장 생활을 한다. 특히 어린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아침마다 전쟁을 치러야 하는 최가영은 친정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것이 못내 서러울 뿐이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는 것일까? 최가영에게도 아이들을 돌봐줄 친정어머니가 생겼다. 연상의 아내에게 주눅이 든 박재성이 하인처럼 부려먹기 좋아 같이 어울리는 고은지에게 마음을 빼앗기자 이들의 관계를 오해한 고은지의 어머니 '복실(김자옥 분)'과 최가영의 아버지 '종만(윤주상 분)'이 이들을 갈라놓기 위해 서로 사귀는 것처럼 연극을 하다가 재혼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복실은 아이들을 돌봐줄 수 없다고 선언하고, 난감해하던 최가영은 장모의 재산만 믿고 회사를 그만 둔 남편 박재성에게 아이들을 돌보라고 요구한다.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떠맡게 된 박재성은 고은지의 사주를 받아 사사건건 최가영을 괴롭히고 더 이상 참지 못한 최가영은 박재성과의 이혼을 선언하고 법정 공방을 벌이다 마침내 승소한다. 가방 두 개만 들고 집에서 쫓겨난 박재성은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최가영에게 매달린다. 그리고 패션쇼 기획안 채택으로 마침내 정규직이 된 최가영은 마침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려 하는데 셋째 아이의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절망에 빠진다. 이제 앞으로 남은 이야기는 불량남편이 어떻게 개과천선을 해서 화목한 가정을 꾸리느냐이다.

▲ SBS '워킹맘' 제작발표회ⓒSBS
이처럼 <워킹맘>은 '일과 육아'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30대 직장 여성의 현실적인 애환을 다소 과장되게 풀어나가고 있는 드라마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이미 일반화된 상황에서 '육아'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이다. 대규모 사업장의 경우 '육아' 시설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직장이 육아에 대해 제대로 책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워킹맘>이 매우 현실적인 문제를 풍자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워킹맘>의 이 같은 문제 제기가 시청자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개연성에 근거한 상황 묘사가 필수적이다.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던 최가영이 계약직으로 재출근을 하고, 과거에 부하 직원이었던 고은지 밑으로 들어가 이유 없이 괴롭힘을 당한다거나, 막대한 유산 문제 때문에 고은지가 어머니의 재혼을 막무가내로 방해하는 상황들은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의 어려움을 극대화시키거나 웃음을 유발하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시청자의 공감을 얻어내기는 어려운 설정들이다.

또한 최가영을 괴롭히는 인물들이 남편 박재성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성들이라는 것도 <워킹맘>이 얼마나 관습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특히 '고은지'가 유독 짜증스러운 인물로 느껴지는 것은 그녀가 '악녀'이기 때문이 아니라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어머니와 시누이, 그리고 직장 동료를 모두 여성으로 설정한 것은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줄 뿐이다.

그리고 아직 일반적으로 활용되지 않아도 남성들도 아버지로서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는 것은 엄연히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데 이 같은 사실이 드라마에 반영되지 못한 것도 문제이다. 이는 곧 암묵적으로 '육아'를 여성의 몫으로만 규정짓고 있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드라마의 현실성을 떨어지는 것이다. 또한 "결혼은 여자의 무덤"이라거나 "육아가 여자의 앞길을 막는다!"라는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육아'가 여성의 몫이라는 고정관념을 더욱 강화시켜줄 뿐이다. 이 같은 상황 묘사로는 결코 직장 여성의 애환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 SBS 드라마스페셜 '워킹맘'ⓒSBS

<워킹맘>이 애초의 의도와 달리 시청자에게 통쾌한 웃음을 주지 못하는 것은 '시트콤'과 '드라마'의 장르적 관습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극작과 연출의 한계 때문이다. 시트콤과 드라마는 엄연히 장르적 관습이 다르다. 시트콤은 극적 개연성이 떨어지더라도 캐릭터와 상황만으로 웃음 유발이 가능하다. 하지만 드라마는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치밀한 계산에 근거한 극적 개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시트콤은 '웃음' 그 자체에 집중하지만, 드라마는 '웃음'의 본질인 '풍자'와 '해학'의 비판 정신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하는 여성의 육아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워킹맘>을 시트콤이 아닌 드라마로 분류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워킹맘>은 시트콤의 장르적 관습으로 드라마를 만들면서 '웃음'과 '풍자'와 '해학' 모두를 놓치면서 '일과 육아'의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시청자에게 각인시키는데 실패했다. 오히려 육아를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발상의 위험성이라든지, 최가영과 박재성의 이혼법정을 희화화시킨 것은 '일과 육아, 직장과 가정, 자아성취와 자아상실'이라는 문제의식을 훼손시킨 부작용을 일으켰다. 웃음에 대한 강박관념이 만들어낸 폐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웃음이 지나치면 독약이 된다. 그런 만큼 상황에 적합한 웃음을 유발하면서 우리 모두 함께 풀어가야 할 '육아' 문제를 사회 복지 차원에서 풀어나가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울까? 연민의 눈물 몇 방울을 섞은 웃음 폭탄으로 한 여름 밤의 찜통더위를 시원하게 날려버리기는커녕, 불쾌지수를 상승시킨 것은 아닌지 궁금할 뿐이다.

윤석진 교수는 2000년 여름 한양대에서 <1960년대 멜로드라마 연구-연극·방송극·영화를 중심으로>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04년 가을 <시사저널>에 '캔디렐라 따라 웃고 웃는다'를 발표하면서 드라마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김삼순과 장준혁의 드라마공방전> <한국 멜로드라마의 근대적 상상력> <한국 대중서사, 그 끊임없는 유혹> 등의 저서와 <디지털 시대, 스토리텔러로서의 TV드라마 시론> <극작가 한운사의 방송극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충남대 국문과에서 드라마 관련 전공 과목을 강의하면서 한국 드라마의 영상미학적 특징에 대해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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