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의 남다른 행보에 대해서는 칭찬을 해줄 만하다. 톱스타들을 주연으로 세운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물은 이변이 없는 한 기본 시청률을 보장한다. 트렌디한 드라마를 제법 선보인 SBS 입장에서는 그런 드라마의 연장이 더 손쉬운 일이었을 텐데, 현재 SBS에서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를 보면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다.

안정적인 시청률을 포기했다. <별에서 온 그대>나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같은 달콤한 드라마에 대한 유혹을 과감히 뿌리쳤다. 대신 어둡고 무거우며 심각한 작품을 올리는 데 도전장을 내밀었다. 월화드라마는 <신의 선물>, 수목드라마는 <쓰리 데이즈>로 주중의 일부가 아니라 주중 전체를 묵직한 분위기로 덮어버렸다.

식상한 스타일을 내던지고 새로운 형식을 취하고자 하는 시도는 국내 드라마 발전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일 테다. 시청률에 급급한 나머지 시청자들의 비위 맞추기에 열을 올리는 작품만 쏟아져 나온다면, 드라마판은 트렌드만 쫓아가다 획일화라는 덫에 빠져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시청자들에게 외면을 당하는 수모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SBS는 그러한 위기에 앞서 대비하고자 했던 듯하다. 비슷한 스타일의 드라마를 무한반복하는 것에 스스로 염증을 느꼈을 수도 있다. 어쨌든 SBS는 다른 지상파 방송국들과는 달리 트렌드를 지양하고 변화에 중점을 두는 편성표를 짰다. 그것이 설사 무리수로 보일지언정, 마지막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달콤한 결과가 아닐지라도 말이다.

<신의 선물>의 시작은 파란이었고 충격이었다. 웰메이드 추리극으로 유명한 미드의 몇몇 작품들과 비교되면서 한국 스릴러물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작품이라는 평가를 일찌감치 받았다. 이보영과 조승우의 연기를 비롯, 단발 출연에 그쳤던 조연 배우들의 연기까지 주목받으며 시청자들의 상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청자들의 관심은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한 채 정체되고 만다. 매회 살인 용의자가 바뀌는 것으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인물들간의 관계가 필요 이상으로 꼬여 난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제작진과 시청자들이 벌이는 추리게임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지쳐가는 쪽은 시청자들이다.

벌써 몇 명의 용의자를 거쳐 갔는지 모른다. 그리고 또 다시 새로운 용의자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그때마다 시청자들은 예상할 수 없었던 사건과 사실들에 넉다운을 당해야 한다. 지금까지 추리해왔던 모든 것들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만다. 지칠 뿐 아니라 허탈감마저 느끼게 되는 순간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스갯소리인지 아니면 실제 그런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 <신의 선물> 출연 배우들은 어느 연예 프로그램에서 샛별이를 죽인 가장 유력한 살인 용의자로 기동찬(조승우 분)을 지목했다. 흥미를 유발시키려는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를 진범으로 몰아가는 것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반전이라기보다는 치기 어린 꾐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쓰리 데이즈>의 초반부 역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야기는 스피디하게 돌아갔으며,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던 세 발의 총성이 던진 질문에 촉각이 곤두세워졌다. 손현주의 카리스마는 변함없이 비장했으며, 박유천의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연기 또한 칭찬을 받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비서실장 함봉수(장현성 분)가 드라마 초반부에 죽는 것을 보면서 이야기에 꽤 자신감이 있구나, 짜임새가 제법 탄탄하겠구나 생각했다. 그의 죽음을 중심으로 여러 사건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시청자들은 추리를 위해 상상력을 총동원하면서 극이 주는 재미에 푹 빠져들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뒷심이 부족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재 <쓰리 데이즈>가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 전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신규진(윤제문 분)이 배신을 하고, 이차영(소이현 분)이 이중 스파이였다는 사실이 극의 반전이긴 했지만, 그 맛은 탄산 빠진 콜라처럼 밍밍하고 심심했다. 별다른 추리가 필요하지 않았고, 예상치 못한 이야기로 인한 짜릿한 쾌감이 전해지질 않았다. 회를 거듭할수록 <쓰리 데이즈>는 추리의 미학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신의 선물>과 <쓰리 데이즈>는 스릴러 장르를 표방한 드라마들이다. 이 작품들이 주는 암울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견뎌내면서 지금까지 지켜봤던 이유는 단 하나, 스릴러의 진수를 통해 추리극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이들 모두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가운데 있다. 지나친 장난질로 어지럽게 하거나, 맥 빠지는 구성으로 지루하게 만들거나, 적절한 조화를 잃어버린 채 갈피를 못 잡고 표류하고 있는 듯하다.

스릴러의 반전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사건 전개와 체계적이고 계산적인 암시, 사건과 사건을 잇는 개연성 등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채워지지 않으면 시청자들은 뜬금없는 이야기에 당혹스러워하거나,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당위성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미완의 스릴러가 주는 폐해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결말을 말하는 것이다.

SBS는 큰 용기를 냈다. 시청률을 보장할 수 없는 드라마 두 편을 연속으로 내보내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현재 <신의 선물>은 9.4%, <쓰리 데이즈>는 10.4%의 시청률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 흡족한 성적은 아닐 테다. 이제 이 두 작품은 후반부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용단을 내려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시청자들의 피로를 덜어내기 위해서라도 미완을 완성으로 바꾸는 데 고심하고 또 고심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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