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가장 좋아했던 노래 중 하나가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이었다. 그 노래를 불렀던 이승환이 11집 <폴 투 플라이 前>를 들고 찾아왔다. 나의 노안이 계속 노안이듯이 이승환의 동안은 계속 동안이고, 그의 음악이 주는 감동은 몇십 년 째 계속되고 있다.

11집 <폴 투 플라이 前>에 담겨있는 곡은 어느 곡 하나 버릴 것 없이 훌륭하지만, 마지막 곡인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는 그 의미가 조금 더 특별하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헌정곡이기 때문이다. 대중 가수로서 정치적인 인물에 대한 헌정곡을 앨범에 싣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범의 마지막을 이 곡으로 장식한 것은 이승환이라는 가수가 가진 '성향'의 발현일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헌정곡을 실은 것, 그 곡에 대한 해석을 밝힌 것이 소신이 아닌 성향이라며,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연예인 또한 한 사람의 국민이며, 국민으로서 개인의 성향을 드러내는 일은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 지닌 당연한 권리이다. 따라서 그의 의견은 합당하다. 단지, 그것이 일부 사람들의 과격한 반발이나 공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가급적 피하려는 보편적 공감대가 연예인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을 뿐이다. 물론 피하는 것 또한 개인의 권리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쉽지 않고, 부담되는 일이며,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여전히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음에 분명하다. 이승환의 헌정곡은 그런 면에서 전혀 용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권리의 자연스러운 향유지만 동시에 아주 큰 용기의 발휘라고 볼 수 있다. 노래에 대해서 속이지 않고, 부르고 싶은 것을 부르고, 들려주고 싶은 노래를 들려주는 가수로서의 용기이다. 그의 노래에서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그의 이런 성향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노래 외적인 이야기를 전부 차치하더라도, 이승환의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는 매우 잘 만들어진 곡임에 분명하다. 곡이 지닌 웅장함, 이승환의 보컬이 보여주는 애절함, 가사가 만들어내는 뭉클함은 이 곡이 매우 공들여 만든 작품임을 드러낸다. 앨범 전체가 그러 하듯이. 어쩌면 수억 원을 투자해서 제대로 된 앨범을 만들어 가지고 나온 그 모습이야말로 이승환이 지닌 진정한 용기일지 모른다. 그의 음악이, 소신이, 성향이 모두 반가운 것은 그 모든 것이 가수 이승환을 그리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문화칼럼니스트, 블로그 http://trjsee.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예찬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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