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참석이 어려우니, 그냥 착잡한 개인적 감상을 글로 전한다. 속된 말로 말렸고 솔직히 말해 지지부진한 상황을 까발리고 싶은 것이다. ‘언론 사유화 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에 관해서다. 언제 누가 왜 ‘미디어행동’이라는 걸 만들었고, 어떤 원칙에 기초해 행동코자 했으며, 그 실제 활동의 성과는 어떠했는지를 여기서 시시콜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래도 간단히 설명하자면, 신자유주의 자본국가의 본격적 등장에 따른 언론자유와 공영방송, 미디어 공공성의 위기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기존 비판적 언론개혁진영과 진보좌파세력을 아우르는 보다 큰 단위의 운동단위를 구성코자 한 것이다. 한미FTA 저지투쟁의 와중에서 태동한 구상으로서, 포괄적이고 장기 지속적이며 활동력 높은 미디어운동의 새로운 판을 짜고자 하는 시도였다.

▲ 물사유화저지공동행동, 미디어행동, 보건의료단체연합, 범국민교육연대,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입시폐지대학평준화범국본, 한미FTA저지교수학술공대위는 24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공부문 사유화저지 공동행동'을 결성했다. ⓒ송선영

위기 상황에 대비해 철저하게 현실적인 대응 전략으로 기획되었으며, 이에 대한 반대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다고 한미FTA 협정 때부터 확연하게 드러난 운동권 내부 이견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차이와 이견이 여전히 존재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민주적 커뮤니케이션의 원칙, 공개적 토론의 정신이 강조되고 또 강조되었던 것이다. 당연하고 또 중요한 합의의 규칙을 기반으로 해서 마침내 40여개 이상의 언론?미디어·사회운동 단체들이 참여한 미디어행동이 떴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선임 문제에 집중하는 것으로 시작해, 촛불정국 동안에는 조중동 절독과 공영방송의 의제화에 분투했다. 인터넷 검열과 통제 같은 사안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언론학자들이 미디어 공공성 운운하고 있으나, 이러한 현실의 움직임에 비해서는 한참 뒷북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미디어행동의 성과에 대해, 내부자적 시선에서 냉정한 평가가 쉽지 않음을 인정한다. 그래도 해보자면, 이렇다. 과도한 평가는 금물이나, 그렇다고 지나치게 인색해서는 안 된다. 나름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여러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고 먼 판을 설계하는 단위로서 의미가 크다는 생각이다. 활력을 되찾자는 제언이다. 어찌 부족한 점, 아쉬운 부분이 없겠는가? 해야 하는데 제대로 못한 대목, 그래서 욕을 먹어야 할 지점들을 어찌 빠뜨리고 가겠는가? 정연주 사장 퇴진을 계기로, 그리고 KBS와 MBC 문제에 모인 대중적 관심을 기회로,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투쟁을 본격 추동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아프지만 맞다. 만약 그것이 인·민 대중들로부터 제기되고, 신자유주의 저지 반자본 공공성 투쟁을 위해 함께 해야 할 다른 부문의 단체·조직들로부터 지적된다면 달게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행동에 참여하고 있으면서 미디어행동이 문제가 많아 대책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는 논리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미디어행동이 배태한 문제라는 것도 다름 아닌 그 구성단체들끼리의 문제였던 측면이 많고, 또한 활동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 이유는 확인된 원칙에 기초한 역할 분담과 연대 강화의 노력이 내부적으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미디어행동의 문제라는 것은 그 참여 단체들과 그들 사이의 문제였던 셈이며, 행동 중 대화를 통해 이를 시정·극복하면서 단일대오로서 폭력적 현실을 기운 넘치게 치고 나갔어야 했다. 정치권 등등과의 보다 넓은 연대가 필요했다면, 그것은 미디어행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어야 할 일이다. 그랬더라면 무책임한 보수여당 정치꾼들이 뻔뻔스레 얼굴 들이대는 후진 판은 허용치 않았을 것이다.

수백 개 단체들이 참여했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뻔한 얼굴과 몇몇 단체들만 남은 그런 구태를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는가? 숫자는 활동하지 않는다. 단체의 이름, 인물의 명성이 활력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직 현장에 몸담고 있는, 신체를 움직여 활동하는 활동가들만이 공영방송 사수 투쟁이든 미디어 공공성 수호 투쟁이든, 책임 있게 자기 운동으로 밀고 갈 수 있다. 물어보자. 현재 판에 뛰어들어 자기를 드러내놓고 움직이는 활동가들이 몇이나 되는가? 그런 활동가들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선택은 바로 그러한 현실 속에서 인자의 배치를 최적화하고 그럼으로써 활동의 동력을 최고화하는 것뿐 아닌가?

▲ 미디어행동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네티즌들에 대한 검찰 수사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언련

사원행동도 좋고 노조파업도 좋다. 하지만 시민사회와의 연대 없이 제대로 될 일이 없다. 치고 나가면 하는 수 없이 시민사회도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사고는 금물. 어차피 길게 갈 길, 언론·미디어 운동권역의 민주화도 그 외부 신자유주의 반자본에 대항하는 투쟁만큼이나 중요하다. 운동의 민주적 질서가 해체되고 그래서 연대구성의 가능성이 방해받는다면, 어찌 대안과 대항의 모색이 가능하기나 하겠는가? 그렇게 하자. 자신에게 맡겨진, 스스로 자임한 활동들을 꾸준하게 전개하시라. 미디어행동도 그렇게 경합하자. KBS 문제가 공영방송의 문제 전체가 아니듯이, 공영방송의 문제가 미디어 공공성의 문제 전체는 될 수 없는 일. 인터넷 검열 문제, 개인정보법 개정 문제, 방송법과 신문법 개정 문제 등 줄줄이 출현할 엽기적 사태에 총체적으로 대응할 실효적 연대의 체계, 교통의 테이블이 절실하다.

미디어행동이 그 중심을 다시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미디어행동이 공영방송을 포함한 언론·미디어 분야 전반의 투쟁 중심점으로 다시 자리 잡아야 한다. 결코 한가한 발상이 아니다. 패권 투쟁적 아이디어와는 거리가 멀다. 여타 조직들에게 자기 역할이 있듯이, 미디어행동에게도 기대되는 역사적 책무가 아직 충족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모든 눈이 공영방송에 쏠린 와중에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사안들, 앞으로 예상되는 사안들 등등에 대해서도 긴밀히 토론하고 정확히 결정하고 신속히 행동할 시점인 것이다. 신학림 새 집행위원장이 집중해야 할 부분도 바로 여기라 생각된다. 행동력 없는 껍데기로 남을 것이라면 빨리 접을 것이고, 남을 거라면 알찬 행동계획으로 자신의 입지를 되찾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게 참여자들의 의무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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