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 사이트를 연다. 당연하게 넬의 신보를 찾는다. 그리고 플레이.

넬이라는 팀에 대한 무한한 신뢰는 넬의 새 앨범에 대한 기대 자체를 없앤다. 기대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음악은 당연히 좋을 것이다. 넬은 이미 그 정도의 신뢰를 쌓아놓은 팀이다.

넬의 음악을 듣는 데 필요한 준비물은 릴렉스한 자세와 눈을 감겠다는 마음뿐이다. 앨범을 듣기도 전에 준비 자세를 알고 있는 것 또한 넬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그리고 앞서 공개된 넬의 '중력 3부작'의 1, 2집인 <Holding onto Gravity>와 <Escaping Gravity>를 들었기 때문이다. 앞의 1, 2집을 통해 나는 이미 '중력 3부작'의 마지막 앨범인 <Newton's Apple>을 어떻게 들어야 할지 깨닫고 있었다.

가만히 누웠다. 눈을 감고 음악이 들려온다. 첫 곡 <Decompose>부터 분해는 시작된다. 나를 옭아매고 있던 중력으로부터 고스란히 벗어나는 느낌이다. 자유로운 무중력 상태로의 전환은 마치 영화 Gravity 안에 내가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때부터 음악은 나에게서 뺏어간 중력을 다시 불어넣기 시작한다. 나는 넬의 음악에 따라 요동친다. Newton's Apple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계속 떨어져 결국 지구에 선다. 중력을 한껏 받으며.

한 편의 영화 같은 상상을 마치자, 아쉬움이 든다. 이 사운드를 더 제대로 듣고 싶다는 욕심. 이 소리를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 그래서 하이엔드 오디오시스템에 대한 간절함이 커진다. 넬이 만든 사운드는 정말 선명하게 나의 귀를 핥는다. 그 사운드의 풍성함이 청자를 넬이 만들어 놓은 세계로 끌고 들어간다.

어느덧, 음악은 배경이 되었다. 내 홈피의 배경이 됐고, 내 컬러링의 배경이 됐고, 스마트폰으로 컬러독점을 만드는 동안의 배경음이 됐다. 고스란히 음악에 집중해서 음악만 듣는 일이 점차 적어지고 있는 세상이다. 넬의 신보를 그렇게 듣는다면, 넬이 만든 세상에 빠지는 경험은 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멈추고 오직 음악에만 귀를 맡긴다면, 그때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일어난다.

그 순간 음악에 대한 분석도, 음악에 대한 이해도, 음악에 대한 감상도 필요 없어진다. 그것은 음악이 주는 경험일 뿐이다. 그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두 개인의 몫이 된다. 넬은 넬을 그렇게 만들어냈다. 그래서 그저 하고 싶은 얘기는 하나다. 세상과 잠시 단절하고, 고요함 속으로 들어가 들어 볼 필요가 있는 앨범이라는 것. 더 이상의 평은 아마도 무의미할 것 같다.


문화칼럼니스트, 블로그 http://trjsee.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예찬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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