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의 소녀시대, JYP의 원더걸스, YG의 2NE1은 대한민국 3대 기획사를 대표하는 걸그룹이다. SES, 핑클의 걸그룹 1세대를 이어 걸그룹 2세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팀들이기도 하다.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한 원더걸스를 제외하고, 소녀시대와 2NE1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걸그룹의 최정상에 위치한 팀이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소녀시대가 이제 최고를 치고 서서히 내려오는 느낌이 강한 반면, 2NE1은 아직도 전진하는 느낌이 강하다. 소녀시대는 전작과 비교하면 줄 세우기는커녕 잠시 차트 1위를 차지했을 뿐이지만, 2NE1은 차트 줄 세우기에 성공했고 오랫동안 차트 정상에 공고히 안착했던 소유와 정기고의 썸을 끌어내렸다. 음원 성적으로 보면 2NE1은 확실히 계속 전진 중이다.

2NE1의 2번째 정규앨범 CRUSH는 안전하게 만든 작품이다. 지금까지 사랑받아 온 음악들을 그대로 앨범 안에 심어 놨다. '내가 제일 잘나가' 류의 '쎈 언니' 사운드는 'CRUSH'를 비롯한 곡에 심어져 있고, 'UGLY나 Falling in Love' 등 여러 장르를 합친 크로스오버 곡들도 충실히 이식되어 있다. 2NE1이 가장 잘하는 'Lonely'나 'I don't care'같은 미디엄 템포의 곡들도 역시 담겨 있다. 지금까지 2NE1이 사랑받았던 모든 장르를 충실히 잘 이식해 놓은 앨범이다. 심지어는 CL 솔로곡인 '멘붕'은 '나쁜 기집애'에서 보여준 CL스타일을 계승한다. 2NE1의 정규 2집은 매우 안전하게 만들어진 앨범이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 안전하게 만들어진 앨범을 채운 각 곡의 퀄리티가 상당히 훌륭하다는 사실이다. 매너리즘에 빠져 과거의 영광을 답습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잘하는 것을 더욱 갈고 다듬어서 내놓았다. 이렇게 되면 이건 안전주의보다는 발전과 성숙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멤버들의 보컬이 더욱 안정됐다는 것이다. 예전부터 2NE1의 보컬은 전혀 부족함이 없었지만, 공민지와 CL은 랩과 보컬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곡에 딱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고, 박봄의 보컬은 독보적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2NE1이 가장 잘하는 미디엄 템포에서 감정을 폭발시키는 데 탁월하다. 개인적으로는 2NE1에 가장 필요한 보컬이라고 판단하는 산다라박도 전보다 발전한 것을 느낄 수 있다. 2NE1에서 산다라박의 역할은 생각보다 큰데, 나머지 세 멤버의 보컬이 기본적으로 진하고 바이브레이션이 있는 반면에 산다라박은 유일하게 소리가 청량하고 얇다. 곡의 중간마다 산다라박의 보컬이 들어감으로써 2NE1의 곡들은 훨씬 풍성해지는데, 그런 산다라박의 보컬이 더욱 발전함으로써 곡의 느낌이 더욱 살아나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이 4명의 소리가 정확하게 톱니바퀴처럼 맞아 떨어지는 맛은 2NE1 음악이 지닌 또 하나의 힘이다.

또 하나 중요하게 살펴야 하는 부분은, CL이 작곡과 작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에 있다. 비록 앨범 전체적으로는 Teddy의 힘과 영향력 하에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CL의 참여가 앨범의 질을 높였다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녀가 작곡한 'Crush'와 '살아 봤으면 해', 'Baby I Miss You'는 모두 2NE1의 색깔과 딱 맞아 떨어지며, 앨범의 시작과 중간과 끝을 충실히 잡아주고 있다. 시작은 '쎈 언니 사운드'로 중간과 뒤는 '미디엄템포'로 2NE1의 리더로서 CL의 영향력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뛰어나다고 여겨지는 것은 바로 CL의 작사이다. Crush, 살아 봤으면 해, Scream, Baby I Miss You의 가사는 2NE1 노래가 지닌 감수성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 이번 앨범 베스트라고 여기는 곡이 CL이 작사 작곡한 '살아 봤으면 해'라는 점에서, 앞으로 2NE1이 계속 좋은 음악을 할 수 있을 거란 전망을 가능케 한다.

YG의 다른 뮤지션들처럼 2NE1은 활동기간에 비해 적은 2장의 정규 앨범만을 발매했을 뿐이지만 그들의 앨범은 그 오랜 기다림을 상쇄할 만큼 충분히 훌륭하다. 또한, 싱글 하나하나보다는 정규 앨범으로 완성됐을 때, 더욱 곡의 가치가 증가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다음 정규 앨범 역시 기대된다. 2NE1은 여전히 음악적으로 나아갈 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화칼럼니스트, 블로그 http://trjsee.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예찬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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