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개 언론사 소속 884명의 언론인들이 이진한 대구지검 서부지청장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솜방망이 처벌을 규탄하며, 동시에 가해자인 이진한 지청장의 중징계를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성평등 취재환경 마련을 위한 언론인 55개사 884명은 24일 성명을 내어 검찰을 향해 △이번 사건 전면 재조사 실시 △가해자 이진한 대구서부지청장 중징계 △성폭력 사건 반성 및 해당 기자에게 사과 △확고한 재발방지책 수립 등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이진한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51·사법연수원 21기) 검사는 지난해 12월26일 당시 서울중앙지검 출입기자 20여명과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세 명의 여기자들에게 “뽀뽀 한번 할까” 여러 차례 말하는가 하면 손등에 입을 맞추고, 등을 쓸어내리고, 허리를 껴안고 만지는 등 성추행을 저질렀다. 기자들의 항의를 받은 대검 감찰본부는 감찰에 착수했으나 지난 1월 징계 아래 단계인 ‘경고’ 처분을 내리면서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특히 당시 감찰위원들은 성추행 피해자인 해당 여기자가 분명한 처벌 의사를 밝혔음에도 이 사실도 모른 채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드러나 비난이 일기도 했다. 이후, 피해 여기자는 지난 11일 이진한 대구지검 서부지청장을 ‘강제 추행’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등 여성단체들이 14일 국회 정론관에서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이진한 대구지검 서부지청장에 대한 엄중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연합뉴스)
언론인들은 먼저 성명에서 “여성기자를 성추행한 이진한 대구서부지청장과 이를 덮으려는 검찰에 분노하며 사건에 대한 전면 재조사와 처벌, 검찰의 반성과 사과를 엄중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치욕적인 술자리 언행부터 피해 당사자에게 모멸감을 주는 여러 사람의 2차 피해까지 겪으며 지금까지 해당 기자가 느꼈을 무력감과 수치심에 십분 공감한다”며 “우리는 이 사건을 검찰 권력이 언론의 사회적 구실을 무시하고 자신의 권력을 과시한 사례로 풀이한다. 이진한 차장 검사뿐 아니라 검찰조직 전체가 언론사 기자를 ‘여성’으로 환원하며 일상의 성차별과 폭력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려는 권력자의 속성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피해자인 여기자가 ‘명백하게’ 처벌을 원했음에도 사실상 아무런 징계도 내리지 않은 검찰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도 나왔다.

언론인들은 “검찰은 스스로 마땅히 느껴야 할 자괴감과 반성은커녕, 인권을 중시하며 폭력을 근절하고 사회정의를 바로 세워야 하는 검찰의 기본 직무를 저버렸다”며 “검찰 고위공직자가 이같은 부도덕한 일을 저질렀음에도, 검찰은 철저한 처벌을 하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더욱이 성폭력을 ‘4대 악’이라 천명하며 척결의지를 밝힌 이 정권이 이를 못본 체하는 것은 이불성설”이라고 맹비난했다.

이들은 이어 “언론사에서 여성 기자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이 시대에, 취재중 발생한 성폭력 문제는 한국 언론의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넘어서야 할 과제이다. 언론인들이 이번 이진한 차장검사 사건에 대해 소리 높여 분노하고 엄중히 경고하며 나서는 이유”라면서 “조금이라도 더 평등한 세상, 남녀 모두 기자로서 당당히 제 목소리를 내며 일할 수 있는 취재환경을 만들기 위해 온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이진한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연합뉴스)
해당 서명 운동의 실무를 담당했던 한 언론사 기자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술자리에서 여기자를 대상으로 한 성추행 사건이 있었는데 여기자 한 명이 계속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검찰이 규정보다 낮은 징계를 하고 사실상 사건을 그냥 덮었다”며 “검찰이 추가적인 조처를 하지 않았고 당사자가 문제 제기를 한 상태였기에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행동하는 게 필요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자들이 취재하는 언론 환경을 만드는 데 중요한 일이고, 2차 피해를 받을 수 있는 문제라서 나섰을 뿐”이라며 “누가 하더라도 한국 사회에 필요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성평등 취재환경 마련을 위한 언론인 성명은 전국언론노동조합 등을 통해 각 언론사에 전달됐으며, 개별적으로 기자들이 메일을 보내는 등 서면, 이메일 등을 통해 약 3주간에 걸쳐 진행됐다. 언론인들이 참여한 이 성명은 25일자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 광고 면에도 게재된다. 언론인들은 성추행 피해 여기자가 이진한 지청장을 고소한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에도 이 성명을 제출할 예정이다.

한편,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등 여성단체 8곳은 지난달 21일 성명을 내어 “고위 공직자의 성폭력 사건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가해자를 단호하게 처벌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진한 지청장에 대한 중징계를 촉구한 바 있다. 또, 여성단체와 민주당도 지난 1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진한 지청장의 성폭력 가해사건을 철저히 수사해 엄중처벌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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