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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드라마는 시끄럽다?[윤석진의 드라마공방전]우리들의 엄마가 뿔난 이유는?
윤석진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 | 승인 2008.08.12 20:58

출생의 비밀이나 불륜과 같은 자극적인 이야기도, 카메라가 현란하게 움직이며 만들어 내는 화려한 영상미도 없다. 그저 같은 동네 사는 이웃집에서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다고 얼굴만으로 용감하게 카메라 앞에 서는 이른바 잘 나가는 '스타'들이 출연하는 것도 아니다. 자연인으로서의 자아를 지워버리고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동화된 진짜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돋보일 뿐이다. 이처럼 진솔한 연기가 뒷받침된 드라마를 보다 보면 시청자들은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등장인물들의 사연에 빠져 그들과 함께 울고 웃는다. 일상의 삶을 텔레비전 속으로 옮긴 KBS2 주말연속극 <엄마가 뿔났다>(김수현 극본, 정을영 연출) 이야기이다.

김수현의 드라마는 언제나 화제 속에 방영되면서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비록 드라마 전면에 부각된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금기어에 해당하던 '동성애' 문제를 다룬 SBS 미니시리즈 <완전한 사랑>(2003년 10월~12월)이나 '자폐아' 문제를 환기시킨 KBS2 주말연속극 <부모님 전상서>(2004년 10월~2005년 6월 방영), 그리고 '불륜'을 전면으로 다룬 SBS 미니시리즈 <내 남자의 여자>(2007년 4월~7월 방영) 등이 대표적이다. 엄연히 우리 사회가 끌어안고 해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애써 모른 척 하는 문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려 논쟁의 장을 형성했던 것이다. <엄마가 뿔났다>도 예외는 아니다. 항상 헌신적인 모습으로 가족의 뒷바라지를 하면서도 있는 듯 없는 듯,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데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던 '엄마'라는 존재를 논쟁의 중심으로 끌어낸 것이다.

   
  ▲ KBS2TV 주말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KBS  
 
그래서 김수현 드라마는 항상 어떤 이유로든지 논쟁의 대상이 된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만큼 논쟁적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수현 드라마가 시끄러운 드라마라고 비난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김수현 드라마의 사회적 의제 설정 능력을 인지하지 못한 편견일 뿐이다. 비록 드라마와 직접적인 상관은 없지만, <엄마가 뿔났다>라는 드라마의 제목이 2008년 봄, 이른바 '촛불' 정국 속에서 '안전한 먹을거리' 때문에 성난 엄마의 마음을 대변하는 구호로 사용된 것에서도 김수현 드라마의 사회적 영향력의 강도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고동창생의 이란성 쌍둥이 오빠와 결혼하여 시부모님을 친부모님처럼 모시고 늦둥이로 태어난 시동생이 유능한 의학박사가 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면서도 1남 2녀를 남부끄럽지 않게 키워낸 엄마 '김한자'(김혜자 분)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엄마가 뿔났다>는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드라마이다. 부모는 뒷전인 채 항상 자기 입장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행동하는 자식들과 달리 자식 때문에 애면글면하는 부모의 마음이 충돌하는 지점을 마치 이웃집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묘사하는 연속극은 자극적인 이야기와 화려한 영상미로 무장한 여타의 드라마와 다른 힘으로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방랑벽을 이기지 못해 걸핏하면 집을 나가던 아들 '나영일'(김정현 분)이 결국 5살 연상의 여자와 결혼하고, 얌전하게 직장 생활하던 막내딸 '나영미'(이유리 분)가 재벌 축에 들 정도로 잘 사는 집 아들과 결혼하면서 혹독한 시집살이를 하고, 결혼 못 한 것 말고는 남부러울 것 없어 엄마의 자존심과도 같았던 큰딸 '나영수'(신은경 분)가 애 딸린 이혼남과 결혼하면서 겪는 마음고생 등 크게 자랑할 것도 없지만 남부끄러울 것도 없었던 자식 때문에 결국 엄마는 뿔이 나면서 자신의 존재감에 대해 회의하는 날들이 많아진다. 그래서 환갑을 넘긴 나이에 엄마와 주부로 살아온 40년 인생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1년간의 휴가를 요구하고, 마침내 집을 나와 따로 살림을 차린다. 개성 강한 등장인물과 속사포 같은 대사에 이어 마침내 사회적 의제 설정이라는 김수현 드라마의 특징이 발현되는 순간이다.

"무슨 엄마가 이래?"라는 자식들의 한결같은 반응을 뒤로 하고 집을 나온 엄마는 '엄마'로서의 탈을 벗어버리고 온전한 '개인'으로 돌아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면서 자유로운 시간을 만끽한다. 하루 세 끼 반찬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커피를 끓여 마시며 읽고 싶었던 책을 마음껏 읽는다. 그리고 컴퓨터를 배우는가 하면 심야 영화를 보기도 한다. 이런 엄마 때문에 말들이 많다. 자식들과 엄마들의 충돌로 시끄러운 것이다. 자식들은 대부분 '김한자'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가출'이라고 표현하는 반면, 엄마들은 자신들이 마음속으로만 꿈꿔왔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김한자'의 용기에 감탄하고 부러워하면서 대리만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엄마의 생활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탓하지 말자. 설령 말이 안 되는 소리라 하더라도 그렇게 살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실행을 하지 못할 뿐이다. <엄마가 뿔났다>의 '엄마', 아니 '김한자'는 우리 시대 우리 엄마들의 욕망을 대리 실현하는 드라마 속의 인물일 뿐이다. 현실에서 불가능하니까 드라마에서조차 하지 말라는 것은 너무 잔인한 요구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김한자'의 행동을 일반화시키려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 엄마가 어느 자리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가이다. 김수현의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는 이렇게 그저 가정을 꾸려가는 가족의 일원에 지나지 않는 '엄마'의 '자아'에 대해 한 번쯤 깊이 있게 생각하도록 사회 의제로 설정한다.

그래서 <엄마가 뿔났다>에는 참으로 다양한 유형의 '엄마들'이 등장한다. 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다가 자아 찾기에 나선 '김한자' 뿐만이 아니라, 투박하면서도 속 깊은 정으로 딸을 키우는 '나이석'(강부자 분), 여왕처럼 가족 위에 군림하는 '고은아'(장미희 분), 그리고 독불장군 같은 남편 때문에 고생스러운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적당히 여유롭게 인생을 즐기는 '나영수'의 시어머니(정재순 분)가 대표적이다.

   
  ▲ KBS2TV 주말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KBS  
 
'김한자·나이석'이 '고은아·나영수의 시어머니'와 대비되는 구도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들 네 가지 유형의 엄마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혹은 요구해온 엄마의 표상일 뿐이다. '나이석'이 지극히 현실적인 엄마라면, '고은아'는 일상적으로 쉽게 접할 수 없는 '여성성'이 극대화된 엄마를 표상하고,  반면에 '김한자'와 '나영수'의 시어머니는 현실적이면서도 적당히 이상적인 엄마의 표상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뿔났다>에서 보여주는 엄마의 유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철부지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의 이름을 아들의 이름으로 붙여주는 '나영일'의 부인 '장미연'(김나운 분), 자신의 인생을 즐기기 위해 딸의 상처를 끌어안는데 익숙하지 않은 '이종원'의 전 부인 '경화'(양정아 분), 전처소생의 딸을 키우면서 마음고생하는 '나영수' 등은 어머니 세대에 비해 현저하게 달라진 '엄마'의 모습을 표상하는 인물들이다.

철부지처럼 보이지만 생활력이 강한 '장미연'은 기존의 어머니 세대와 가장 유사한 반면, '경화'는 자식보다 자신의 존재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엄마의 모습이고, '나영수'는 설득과 타협의 기술로 대화를 시도하는 합리적인 엄마를 표상한다. 이렇게 이제 막 엄마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한 이들은 사회 변화에 따라 '엄마'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다양하게 보여주면서 또 다른 논쟁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 역시 기존의 어머니 세대와 같은 듯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결국은 '엄마'라는 이름으로 한 자리에 묶이는 존재라는 점이다.

엄마는 자식이 손을 내밀면 언제나 그 손을 잡아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아'마저 상실한 존재는 아니다. 그런데 엄마의 '자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자식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엄마를 뿔나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다. 우리들의 엄마가 뿔난 이유는 자아를 상실하고 그로 인해 존재감을 찾을 수 없는 당신의 삶이 허무하게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이처럼 <엄마가 뿔났다>는 '자아'를 찾아 나선 '김한자'를 통해 엄마의 존재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준 드라마이다. 그래서 두 세대에 걸친 여러 유형의 '엄마'를 다양하게 보여주면서 지금 우리들의 엄마가 어떤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들어준 드라마가 시끄럽다고 비난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런데 엄마가 뿔난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은 지금, 문득 아버지가 궁금해진다. 엄마 못잖게 자신의 존재감을 뒤로 하고 '가장'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엄마가 뿔났다>처럼 아버지의 속마음을 파헤친 드라마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윤석진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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