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레 <처녀들의 저녁식사>가 떠오르는 영화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관능의 법칙>은 <처녀들의 저녁식사>의 중년여성 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여성이라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으로 애달픕니다. 쉽게 말하면 <관능의 법칙>은 "중년여성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영화적 지침서"입니다. 하지만 저는 썩 맘에 들진 않았습니다. "과연 이 영화에서 일시적 재미 외에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하니 실상 별로 남는 게 없더군요. <관능의 법칙>은 현실에 한 발을 걸치긴 했으나 관객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영화였습니다.

솔직히 이야기의 깊이는 권칠인 감독의 <싱글즈>와 비교해도 좀 얕아졌습니다. 분명 현실적인 고민을 안고 있긴 한데 그것을 표면적으로 훑고 가볍게 해결하고 넘어가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습니다. 일단 각 캐릭터부터가 크게 공감이 가질 않았습니다. 방송국에서 부장의 자리에 올라 외주제작사의 조카뻘 피디와 섹스하는 여자, 으리으리한 집에서 남편에게 바라는 것이라곤 섹스가 전부인 여자, 홀로 딸을 장성시키고 중년의 남자와 다시 연애하는 여자. 이 셋 중에서 조민수가 연기한 마지막 캐릭터를 제외하면 제게는 그저 "팔자 좋아서 연애니 사랑이니 하는 인간적 감정에 파묻혀 사는 여자"로 밖에 보이질 않았습니다. 제가 남자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이것이 정녕 우리나라 중년여성의 보편적인 생활상인가요?

물론 중년이라도 여성이기에 감정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인 건 알겠습니다만, 어디까지나 <관능의 법칙>은 공감에 바탕을 둔 환상에 기인하고 있는 영화였습니다. 이건 후반부에 큰돈이 필요한 XX에 들어가는 돈을 친구가 기꺼이 쾌척하는 걸 보면 부정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관능의 법칙>은 현실적 고민을 이상적 해결로 손쉽게 메우는 듯한 영화여서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기본적으로 세 사람 다 먹고 살 만한 계층으로 설정한 것도 마찬가지의 맥락을 지녔기에, 실제로 우리나라의 중년여성들이 그들과 같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만이 남았습니다. 역설적으로 그걸 드러내고 싶었을 수도 있겠지만 여러모로 <관능의 법칙>은 전작인 <싱글즈>에 비해서 부족했습니다.

애초에 <관능의 법칙>은 현실을 관찰하는 현미경의 배율을 좀 더 높이려는 의도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기준에서 보자면 오락영화로서의 기능은 제법 좋습니다. 여전히 대사는 재치가 넘치고 연출의 리듬과 세 배우의 연기가 가지는 궁합이 상당합니다. 특히 연출에서 좋든 나쁘든 오버 페이스를 하지 않는다는 것도 극에 안정성을 더하고 있었습니다.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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