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찬>은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의 폐막작입니다. 극장에 가서까지도 이 영화를 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어렵사리 결정을 했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보면서 숨이 막힐 것 같고 씁쓸한 현실을 보게 될 것 같아서 그랬는데, 정말 딱 그대로더군요.

김동현 감독은 <만찬>의 중심이 되는 한 가족에게 대한민국 사회의 병폐를 모조리 갖다가 심어놓은 것만 같습니다. 장남인 인철은 병약한 아내로 인해 좀처럼 아이를 갖지 못하다가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합니다. 둘째인 경진은 본인이 심장병을 앓고 있는 데다가 아이마저 자폐증이고, 그걸로도 모자라 인간말종인 남편과 살다가 이혼했습니다. 대학까지 졸업한 막내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지만 뾰족한 수 없이 생계를 근근이 유지하고 있습니다. 세 남매의 부모님은 퇴직하고 이렇다 할 수입 없이 자식들의 용돈으로 살아가고 있으나 그게 못내 미안하기만 합니다.

이렇듯 영화를 관람하는 자의 기본 욕구가 '현실도피'라는 것을 감안하면 <만찬>은 도저히 권하기 어려운 영화입니다. 말했다시피 영화 속 한 가족에게 너무 많은 고난을 제각기 던져줬습니다. 졸업 직후부터 채무자 신세에 놓이는 젊은 세대, 가까스로 직장을 구해서 열심히 일해도 순식간에 모가지가 날아가는 중년, 남편과 이혼하여 홀몸으로 자식을 키워야 하는 여성, 어렵사리 결혼해서 자식을 장성시킨 후에는 남는 것도 없이 노후에 덩그러니 놓이는 노년의 부부까지, 썩어 들어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각 세대별로 안고 있는 사회적 문제가 모두 있습니다. <만찬>은 이것을 비약적이고 과장스럽게 한자리에 연결한 것 같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차마 지적을 할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만찬>의 가족은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축소판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외면해버리고 싶게끔 합니다.

역시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문제를 따라가면 자본주의라는 종착역에 당도합니다. "착한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없다"는 막연한 편견 내지는 패배의식마저 <만찬>에서 나타납니다. 하나같이 착하고 성실한 세 남매와 부모님에게 쉬이 극복할 수 없는 사건과 사고가 잇따르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온갖 불행은 가족에게 몰락과 붕괴라는 연쇄작용을 맞이하라고 합니다. 이들이 바라던 '만찬'은 단지 온가족이 모여 앉아서 따뜻한 밥을 먹으며 오손도손 지내는 것인데,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그조차도 요원한 바람이라는 비극적이고 뼈아픈 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과도한 사디즘을 연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면서도 투박한 연출과 편집까지 <만찬>을 매우 사실적으로 다가오게 합니다.

그래도 마지막에 희망은 놓지 않습니다. 하나의 가족은 회복 불능에 가까울 만큼 무너졌지만 그 사이에 또 다른 가족이 생성되고 있었습니다. 관객으로 하여금 불안을 갖게 하는 의미심장한 결말이기도 한 동시에,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마을처럼 그들에게 뭔가 새로운 희망이 시작되길 바라는 김동현 감독의 배려가 <만찬>에서 엿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