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뱀파이어가 인간들 틈에 섞여서 살고 있다는 괴담이 있었습니다. 가상의 캐릭터가 실존한다는 건 비록 허무맹랑할지언정 흥미롭게 여겨지긴 합니다. 현실성을 부여하여 이야기를 만들면 더 그럴 듯하고 몰입할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게 잘 반영된 영화가 바로 <블레이드>입니다. 이와 동일하게 고전 캐릭터를 활용한 <프랑켄슈타인: 불멸의 영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는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도입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메리 쉘리의 소설을 짧게 축약했습니다. 이내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생명체는 아담이라는 이름을 얻고, 악마와 가고일은 그를 두고 싸움을 벌입니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는 가운데 결국 세상의 존폐가 그에게 달렸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프랑켄슈타인: 불멸의 영웅>에서 또 하나 재미있는 건 가고일을 대천사 미카엘이 악마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라고 임무를 부여한 존재로 설정한 것입니다. 유럽을 여행할 때 성당에서 보던 무시무시한 석상이 알고 보면 천사에 가깝다고 설정하니 의외입니다. 하지만 설정만으로 영화를 완성하는 건 불가능하기 마련입니다.

애석하지만 그 말 그대로 <프랑켄슈타인: 불멸의 영웅>은 발상만 돋보입니다. 그나마 이것도 원작을 쓴 케빈 그레비스가 이미 <언더월드>에서 들려줬던 것과 흡사합니다. 아담은 마이클 코빈이고, 각각의 영화에서 그들을 두고 싸우는 종족은 가고일과 악마, 뱀파이어와 라이칸입니다. 설상가상 <블레이드 3>의 설정 중 일부도 차용하여 둘을 새롭게 혼합한 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걸 제외하더라도 <프랑켄슈타인: 불멸의 영웅>은 발상으로 엮어야 할 이야기가 부실하고 빈약한 나머지 좀처럼 큰 흥미를 갖기 어렵게 합니다. 아담을 차지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부터 납득할 수가 없으니 그냥 시끌벅적하게 싸우는 것만 보게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적어도 악마나 되는 양반들이 고작 그런 이유로 고생을 하면서까지 아담을 필요로 한다는 게 참... ) 없던 영혼을 몇 분 사이에 난데없이 소유하는 대목은 숫제 코미디에 가깝습니다.

다행히 볼거리는 좀 있습니다. 예상보다 일찍 펼쳐지는 가고일과 악마의 전면전은 제법 박진감 있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빈약한 이야기를 싹 외면하고 본다면 <프랑켄슈타인: 불멸의 영웅>은 아주 지루할 정도는 아닐 것 같습니다. 아담을 연기한 아론 에크하트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본느 스트라호브스키는 기대와 달리 별로 하는 게 없습니다.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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