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보이스>는 최근 막을 내린 창작뮤지컬 <디셈버>와는 대조되는 뮤지컬이다. 개막 전 한껏 기대를 불러일으켰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희화하는 등 노래와 이야기의 궁합이 억지 춘향의 극치를 달린 주크박스 뮤지컬이었다.
<저지보이스>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미국의 원조 아이돌 그룹 ‘포시즌스’의 이야기가 얼마만큼 우리 정서에 맞을지가 의문이었다. 제아무리 내한공연이라 하더라도 우리 관객의 정서와 맞지 않으면 작년의 <아메리칸 이디엇>처럼 실패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하지만 웬걸, <저지보이스>는 <디셈버>처럼 어설프고 한숨 나오는 짜맞추기 주크박스 뮤지컬이 보고 배워야 할 만큼 탄탄한 이야기를 갖추고 있었다.
‘가을’부터는 봄과 여름에 가려진 암울한 멤버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봄과 여름에 활짝 핀 우정은 가을의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한다. 멤버들의 우정이 해체되기 시작하는 가을을 가정상담의 관점으로 볼 때 리더 토미가 영락없는 ‘공로자’다. 토미는 팀을 유지하기 위해, 혹은 팀의 발전을 위해 멤버들 몰래 사채를 끌어 썼다. 그리고 그 결과는 토미는 물론 팀원들이 똘똘 뭉쳐도 다 갚을 수 없을 만큼의 어마어마한 빚이 된다.
통상적인 경우라면 토미는 팀원들에게 막대한 부담을 안겨준 민폐덩어리 리더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만일 토미가 빚을 끌어 쓰지 않았다면 60년대 포시즌스가 그토록 명성을 날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팀 몰래 사채를 끌어다 쓴 건 분명 토미가 잘못한 일이다. 하지만 토미가 그룹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악’으로 사채를 끌어다 사용했다면 토미는 공로자가 된다. 보컬 프랭키가 일에서는 보란 듯이 성공하지만 가정사에 있어서는 결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없었다는 건 성공이라는 사다리가 가족과 함께 나아가지 못할 때 가정사에 어떤 비극이 들이닥치는가를 보여준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