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가 12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른바 ‘명절 민심’이란 것을 경유했지만, 아직 분위기는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고 있지 않다. 언론이 부지런히 ‘여론조사’를 돌리며, 분위기를 몰아가려 하고 있지만 지방선거에 대한 민심의 반응은 ‘글쎄요’로 귀결된다 할 것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로 꼽힌다. 우선은 지난 대선을 경유하며 굳어진 진영의 체계가 대선 이후 그대로 남아있어 51:49의 구도가 그대로 존속되고 있는 점이 크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진영은 ‘조용한 다수’이며, 박근혜 심판론을 지지해줄 유권자들은 대선 패배에 따른 정치 냉소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3일 오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서울시 겨울방학 대학생 아르바이트' 토크 콘서트에서 박원순 시장이 학생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누가 후보가 될지 모르는 점도 문제다. ‘소통령’이라고 불리는 서울시장 조차 박원순 시장의 재선 도전 외에 여당의 후보로 누가 나올지 조차 아직 윤곽이 잡히지 않고 있다. 정몽준 의원 ‘착출설’과 김황식 전 총리 ‘발탁설’이 정가에 떠돌지만 정작 두 후보가 서울시장을 위해 어떤 비전을 갖고, 만들어 왔는지는 전혀 알 도리가 없다. 경기도지사도 마찬가지다.

언론이 밀집해있고,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사는 서울과 경기가 이럴진대, 지역의 상황은 더욱 심란하다. 안철수 측이 이른바 ‘새정치’를 내걸며 지역 정치의 낭인들을 ‘위장 포장’하는 경향성마저 보이면서 더 혼탁해졌단 얘기도 나온다. 한 정치부 기자는 “현재 가장 확실하고 유명한 지역의 출마자는 김재철 전 MBC 사장이 아니겠느냐”고 냉소하기도 했다.

이럴수록 중요한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선택은 간명하다. 흥미 위주의 ‘경주마 보도’를 할 것이냐 아니면 정책 선거를 유도하는 ‘분석 보도’를 할 것이냐의 갈림길이다. 전자가 철저하게 지금 언론이 하고 있는 방식의 보도들이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인물’ 중심의 경쟁을 붙이는 방식이다.

▲ 2014년 1월 3일자 MBN '8뉴스', 기사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항마로 김황식 전 총리, 정몽준 의원, 오세훈 전 시장 등을 꼽았다. (관련 화면 캡처)

예컨대, 지금 언론의 관심은 온통 박원순 현 시장의 대항마로 누가 뛸 것이냐의 여부에만 쏠려있다. 그리고 박원순 시장과 대항마가 1:1 구도로 경쟁할 것이냐 아니면 다자 구도가 펼쳐질 것이냐에 모든 촉수를 세우고 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아니 지방선거와 관련해 거의 유일하게 형성해야 할 쟁점인 것일까? 다른 지역을 대입해도 마찬가지다. 부산시장의 경우 새누리당 후보가 아직 확정조차 되지 않았지만 오거돈 전 해수부 장관이 어떤 간판을 달고 뛸 것인지에만 언론의 관심이 집중될 뿐 다른 이슈는 거의 지면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모든 선거는 심판의 성격을 갖고, 미래 지향의 선택도 갖는다. 지나온 세월에 대한 심판인 동시에 미래에 대한 선택이기도 하단 말이다. 이 복잡한 함수 앞에서 언론은 무능인지 아니면 몰염치인지 오직 ‘인물’만 대입한 선거 보도를 기획, 전개하고 있다. 박원순의 대항마가 누구냐를 점치기에 앞서 박원순 시장의 공과를 따지고, 박 시장 재임 기간 중 중점적으로 추진된 사업과 지향에 대한 평가가 필요할 텐데, 이런 부분은 깨끗하게 생략된다. 부산 시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경기 침체와 토건 불안 요소를 동시에 떠 앉고 있는 부산시정에 어떤 비판과 비전이 필요한지가 우선 점검되고, 이에 따른 각 정당의 입장과 후보들의 적합성이 뒤따라야할 텐데 오로지 지금은 인물의 인물을 위한 인물에 의한 보도뿐이다.

단언컨대, 이런 방식의 보도는 특정 정당의 승패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몰라도 유권자 전체의 후생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물을 중심으로 지지율의 흥미로 지방선거를 바라보는 언론의 시각은 정치의 냉정한 심판이라기보다는 그라운드 주변에서 몸을 푸는 제2의 선수로 오인 받을 수 있는 혐의가 다분하다. 언론은 한국의 선거가 너무 ‘바람’에 좌우된다고 늘 푸념하는데, 선거를 120여일 앞둔 지금 응답률이 형편없는 ‘통계’라는 주술을 앞세워 언론이 스스로 바람을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제 바람에 놀란 봄 꿩 마냥 스스로 놀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중요한 건 대항마가 아니다. 어떤 익숙한 이름들이 어디서 경주를 할 것이냐의 여부도 아니다. 인물의 경쟁력, 인물의 스타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권자들이 어떤 정치적 욕구를 갖고 있는지를 언론이 발굴하고, 확인하는 것이다. ‘무상급식’의 시민적 열망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낙마를 불렀고, 엄청난 나비효과로 안철수 현상이 발생하고 지난 대선의 시대정신을 아예 ‘보편적 복지의 확대’와 ‘경제 민주화’로 규정해버렸음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유력한 누군가에 ‘버금가는 지지율’을 가진 누군가를 찾는데 혈안일 때가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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