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아주 특별할 건 없는 이야기의 영화입니다. 고등학생 소녀인 아델은 남자 선배와 사랑에 빠지고 섹스까지 나누지만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반면에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파란 머리의 엠마가 밤마다 자신을 찾아와서 뜨겁게 몸을 달구고 사라집니다. 계속해서 엠마를 잊지 못하고 있던 아델은 우연히 게이 바에서 재회하고는 이내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합니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도 여느 커플처럼 극복하기 힘든 장애가 뒤따르고 맙니다.

주인공이 레즈비언 커플로 바뀌었을 뿐이지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전형적인 멜로 영화의 라인을 가진 동시에 두 여자의 성장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을 아주 달리 보이도록 하고 있는 것이 압델라티프 케시시의 연출과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 레아 세이두의 연기입니다. "좋은 의미에서"라고 해도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의문입니다만,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에게는 다분히 변태적인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집요하게 클로즈업을 구사하면서 아델이 음식을 탐하는 장면을 잡아내거나, 두 배우의 적나라한 섹스 씬에 지독할 만큼 탐닉하고 있는 걸 보면 거의 질릴 지경입니다.

덕분에 <가장 따듯한 색, 블루>는 특별한 영화가 됐다는 걸 부인할 순 없습니다. 여기에 레아 세이두와 아델 에그자르코폴로스의 연기까지 더해지면 이 영화의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가 아주 생생하고 강렬한 영상으로 변태합니다. 칸느가 감독만이 아니라 두 배우에게까지 황금종려상을 안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절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보고 있으면 영화가 아니라 숫제 다큐멘터리에 가깝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후반부에 아델과 엠마가 싸우는 장면이 있는데, 이건 섹스 씬 이상으로 리얼하게 다가와서 꽤 놀랐습니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섹스 씬은 굉장합니다. 지금까지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흥분했던 적은 이번으로 두 번째입니다. 포르노를 볼 때처럼 지극히 동물적이고 육체적인 본능에 충실한 욕구를 느끼는 것과는 엄연히 달랐습니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그것은 심리적으로 관객을 자극한다는 것에서 신기하고도 신비한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섹스 씬 자체의 힘보다는 이것이 영화 전체에 잘 녹아들었고, 그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었기에 섹스에 대한 욕구가 전이됐던 것 같습니다.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섹스 씬은 "사정을 하고 싶다"가 아니라 "섹스를 하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합니다. 다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길게 가져간 것은 감독의 과욕이 아니었나 합니다.

장장 3시간에 달하는 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일반적인 관점의 기준을 벗어난 사랑을 한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여느 남녀의 사랑처럼 사회적 계급의 차이와 그로 인한 성장환경의 괴리를 극복해야 한다는 벽에 부딪히는 것도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것이 극명하게 표출되는 장면이 바로 결말부입니다.

★★★★☆

이하 스포일러 주의

어쩌면 결말 전에 이미 엠마는 차마 현실을 극복할 수 없단 걸 알고 있었기에 더 단호했고, 아직 '블루'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아델은 비로소 전시회가 열린 갤러리에서 무형이 아닌 유형의 벽을 확인하고서야 가슴 아픈 체념을 했을 것입니다.

프랑스 국기에 있는 블루는 자유를 의미합니다. 아마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도 동일한 것을 상징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엠마의 파란 머리는 아델로 하여금 자신이 갈구하는 사랑에 대한 솔직한 의지와 자유, 염원 등을 끄집어냈습니다. 그 이후로 두 사람의 주변에는 온통 파란색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엠마가 파란색을 버렸을 때 두 사람의 사이에는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결말부를 보면 엠마는 더 이상 과거의 그녀가 아닙니다. 이젠 아델과는 다르게 주류 사회에 편입했고 가족도 갖게 됐습니다. 엠마에게 있어서의 블루는 아델과 함께 영원히 기억 속에 묻히거나 간직될 것입니다. 그녀로부터 물들었던 아델만은 여전히 짙은 파란색 원피스를 입은 채로 거리를 걸어갑니다. 아직 아델은 길들여지지 않았고 감정에 충실하지만 엠마와의 이별은 많은 것을 안겼을 것입니다. 머지않아 아델도 블루가 바래고 마는 시점이 오겠죠...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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