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존>은 조셉 고든 레빗의 장편 연출 데뷔작입니다. 제목을 보면 자연스레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꼽히는 '돈 후안'이 떠오릅니다. 영화를 직접 보니 <돈 존>은 조셉 고든 레빗이 돈 후안의 이야기를 디지털 세대 버전으로 각색한 것 같습니다.

주인공인 존은 전형적인 마초에다가 한량이고 여성편력이 매우 강한 남자입니다. 그에게 있어 일주일의 패턴은 늘 변함이 없습니다. 대충 시간 때우다가 헬스클럽에서 운동하고, 클럽에 들러서 맘에 드는 여자를 꼬신 후에 집으로 데리고 와서 섹스하는 코스입니다. 양심이나 죄책감은 있는지 일요일에는 어김없이 교회에 갑니다. 고해성사를 하는 것으로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것과 동시에 모든 걸 훌훌 털어내고 다시 똑같은 짓을 반복합니다. 희한한 건 맘만 먹으면 잘도 여자를 꼬셔서 섹스하는 인간이 도무지 자위에서는 벗어나질 못합니다. 뭐 이걸로 <돈 존>이 말하려는 바는 명확해집니다.

작년에 보고 충격과 공포에 빠졌던 <셰임>이 떠올랐습니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 걸 거부하면서도 인간이기에 견딜 수 없는 고독을 다른 것으로 달래려고 한다는 것에서 두 영화는 유사합니다. 다른 게 있다면 <셰임>의 그 '다른 것'이 섹스라면 <돈 존>은 자위입니다. 그리고 <셰임>이 진지하고 암울하기 짝이 없는 반면에 <돈 존>은 꽤 밝고 유치합니다.

개인적으로 <돈 존>이 썩 잘 만든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셉 고든 레빗의 연출과 연기가 아주 노골적이고 직접적이라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치 블랙 코미디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에 미숙하고 주제로 치달아가는 과정은 촌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급기야 결말부는 갑작스레 교훈을 들이밀고 있습니다. 대신에 누가 봐도 한눈에 쏙쏙 들어올 것이라는 장점은 있습니다. 아울러 조셉 고든 레빗이 연출에 임하면서 자신만의 방법론을 찾으려고 했다는 것만은 기꺼이 칭찬하고 싶습니다. 뻔한 이야기의 영화를 뻔하지 않게 그리려고 노력했다는 게 눈에 훤히 보이거든요.

남성의 섹스 라이프를 적나라하고 리얼하게 그린 것도 괜찮았습니다. 물론 비약과 과장은 있지만 아직 치기가 덕지덕지 묻어나는, 섹스의 정의를 단지 '육체적 쾌락의 추구'로 여기는 '숫컷'이었던 경험이 있는 남자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자뿐만이 아니라 여자도 보면 얻는 게 있을 영화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멜로 영화가 얼마나 헛소리를 남발하고 있는지, 독단적인 기준의 사랑으로 상대를 구속하고 조종하는 게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등을 <돈 존>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후자를 반드시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성별을 떠나서 꽤 많은 사람들이 종종 그것에 스스로 만족하며 살거든요) 확실히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사랑(섹스)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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