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중반부부터 전개가 굉장히 더딥니다. 본론이어야 할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도입부에서는 노인 문제를 슬며시 제시하고 그걸 발판 삼아 '50년 전으로 돌아간 할머니'라는 소재를 풀어가려고 했으나, 정작 그것으로 중심에 녹아들었어야 할 주된 이야기는 여전히 응고된 채로 머물고만 있었습니다. 당연하게도 후반부로 갈수록 이게 확연하게 불거지기 시작합니다. 드라마를 서서히 충실하게 전개하지 않고 성급하고 안이하게 제시하려던 것도 패착이지만, 끝내 <수상한 그녀>도 한국 코미디 영화가 가진 강박증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맙니다.
<수상한 그녀>는 우리의 어머니를 위한 변명과 찬가를 부르짖고 있지만, 단지 "그래서 그런 거니 무조건 이해해라. 이 땅의 모든 어머니는 테레사 수녀처럼 자신을 희생한 위대한 존재다"라는 식으로 설파하고 있는 형국에 다름 아닙니다. '아들 만세'의 정신으로 며느리를 핍박하던 것과 자신을 거둬준 사람을 배신하고 큰 아픔과 고통을 안긴 것도 그걸로 면죄부를 주라고 합니다. 이럴 거였으면 차라리 <수상한 그녀>는 애초부터 어머니 세대의 실책을 영화에 넣지 말았어야 합니다. 청춘을 바친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구태여 지금처럼 그런 부분까지 건드렸어야 하는 건지 의문입니다.
★★★☆
덧) 좋은 노래가 참 많습니다. 채은옥의 <빗물>, 세샘 트리오의 <나성에 가면>, 김정호의 <하얀 나비> 등, 그런데 우리 영화는 왜 이렇게 노래를 부르는 장면만 나오면 사운드가 따로 놀까요? 믹싱에 문제가 있는 건지 의도적인 건지, 현장감이 전혀 살지 않아서 감흥이 떨어집니다. '잘 부른 것처럼 들리도록' 하는 것에만 집중하지 말고 이걸 좀 신경을 써주셨으면 합니다. 어차피 영화는 MP3 파일로 듣는 노래가 아니잖아요. <마테호른>의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더 돋보였습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