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가 필요해 3’는 전형적인 토종 한국 드라마와는 그 궤를 달리한다. 시즌마다 주인공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제목의 시즌제로 제작되고 있으며, 로맨스물이라고 해도 불특정 다수가 시청하는 방송이라는 점을 감안해 수위 조절 등으로 점잖음을 유지해야 한다는 틀을 부수고, 도발적이고도 리얼한 연애의 면면을 과감히 그려내는 모습들을 보면, 지금까지의 드라마, 특히나 지상파 드라마와 차이가 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굳이 따지자면 이 드라마는 미드의 형식이나 스타일과 많이 닮아있는 셈이다.

‘로맨스가 필요해 3’는 기존 드라마에 비해 똑똑하고 영악하다.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는 초특급 스타나 명성을 날린 로코퀸을 주연으로 삼지 않았고, 수려한 화면을 위해 온갖 기교와 테크닉을 동원하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이 작품을 위해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 붓는 모험을 감행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맨스가 필요해 3’의 영상미는 웬만한 로맨스물보다 신선하고 깔끔하다. 카메라의 독특한 촬영 각도는 세련미를 극대화시키고, 앨범을 보는 듯한 스틸 사진들의 첨부는 아련한 향수를 자아내는 역할을 한다. 로맨스물의 주연으로 김소연과 성준의 네임밸류는 최상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제작진은 이들의 연기력을 신뢰함으로써 이들이 지니고 있는 로코연기의 잠재력을 100% 끌어올리고 있는 중이다. 큰돈 들이지 않고도 로맨스 수작을 한 회 한 회 짓고 있는 것이다.

한국판 ‘섹스 앤 더 시티’라는 별명이 붙긴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로맨스가 필요해 3’는 이와는 플롯이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여자들의 연애사가 이 드라마의 뼈대를 이루고 있지만, 중심점이 신주연(김소연 분), 이민정(박효주 분), 정희재(윤승아 분)로 분산되지 않고 신주연에게만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 명의 여자들이 세 가지 컬러의 사랑을 삼등분하여 보여준다기보다는, 신주연의 연애 하나에 여러 가지의 에피소드를 담아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그러다 보니 여러 스타일의 연애사를 기대했던 이들로부터 자칫 단순하고 심심하다는 불평을 들을 수도 있다. 게다가 신주연의 사랑이 그저 주인공 주완(성준 분)과의 달달한 연애만으로 진행된다면, 어쩌면 금세 싫증나고 질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제작진은 이를 위해 신주연과 주완 사이에, 그리고 그들 주변에 또 다른 인물들을 세워놓고, 꽤나 흥미로운 관계를 형성했다가 허물고 다시 재구성하는 게임을 마련했다.

신주연의 직장상사 강태윤(남궁민 분), 신주연의 친구이자 주완과도 아는 사이인 오세령(왕지원 분). 이 둘의 존재감은 회를 거듭할수록 차츰차츰 바람이 들어가는 풍선처럼 조용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다. 이들은 주인공 신주연과 주완 사이에 빨간불을 깜박이며 울리는 경고등의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짙다. 서로서로 주고받는 감정은 왠지 모르게 팽팽하고, 특히나 신주연과 오세령 사이에 흐르는 심리전은 여자들의 시샘에서 나오는 단순한 앙탈, 그 이상의 긴장감을 담고 있다.

오세령은 과거에 신주연의 남자를 빼앗은 경험이 있다. 또한 그녀는 신주연의 상사 강태윤의 전 여자친구이기도 하다. 신주연은 자신의 남자를 빼앗은 오세령에게 호의적일 수가 없다. 그 일 이후로 척을 지내면서 산 지 오래다. 그런 그녀를 일 때문에 다시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남자로 인해 원수지간이 된 그 둘은 결국 일로 하나가 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아직 신주연은 강태윤이 오세령과 사귀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데, 이것이 밝혀지면서 아마도 이 네 명의 주인공들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게 되지 않을까 싶어진다.

학창시절, 스타였지만 친구가 없었던 오세령, 그리고 그녀의 옆에 머물면서 유일한 친구가 되어 주었던 신주연. 10년이 훌쩍 넘어버린 지금도 여전히 오세령은 신주연 앞에서 코를 드는 입장이고, 신주연은 오세령을 모셔 와야 하는 조금은 비굴한 입장이다.

이들은 술잔에 술을 따르는 하나에도, 떨어진 만년필을 누군가가 주워야 하는 상황 하나에도 자존심 대결을 펼친다. 남자 하나 때문에 틀어진 사이가 됐지만, 이제는 또 다른 경쟁심리가 그들을 줄다리기 승부에 던져놓고 있는 듯하다. 여자들만이 가늠할 수 있는 오묘하고도 복잡한 심리전을 그럴싸한 상황 속에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장르의 드라마는 솜사탕 같은 달콤함으로 대부분을 채우기 마련이다. 쌉사름한 맛이 있다면 남녀주인공들 사이에서의 크고 작은 오해, 그리고 토라짐과 화해 등의 반복 정도일 테다. 그러나 ‘로맨스가 필요해 3’는 그것만으로 지루함을 달래려 하지 않는다. 긴장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또 그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고서는 여자들의 쫄깃한 심리전을 미리 준비해뒀다. 섬세하면서도 독보적인 극을 위한 대비책이다. 그래서 ‘로맨스가 필요해 3’가 전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매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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