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박스 오피스는 연초부터 예기치 못했던 결과가 속속 나오네요. 1월 3주차를 맞이한 북미 박스 오피스를 점령한 것은 '고독한 생존자'나 '돌아온 스파이'가 아니라 '말썽쟁이 예비신랑과 처남'입니다. 케빈 하트와 아이스 큐브가 주연한 <라이드 얼롱>은 <론 서바이버>와 <잭 라이언: 코드네임 쉐도우>를 보기 좋게 꺾고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한동안 코미디 영화가 잠잠했기 때문인지 꽤 큰 차이를 벌리면서 두 영화를 앞질렀네요. 흑인배우 두 명이 주연이라서 흑인 관객층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었던 것이 컸습니다. 덕분에 <라이드 얼롱>의 개봉 첫 주말 수입은 역대 1월 개봉작 중에서 <클로버필드>에 이은 2위, 전체 코미디 영화 중에서는 <테드> 이후에 가장 높은 자리에 오는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2위~5위

지난주에 1위로 데뷔했던 <론 서바이버>는 <라이드 얼롱>의 기습에 무너지면서 한 계단 하락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2천만 불 이상의 수입을 기록하면서 선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작비의 두 배 이상을 기록하게 될 것은 기정사실인 상황입니다. 아직 국내는 개봉일이 잡히지 않아 수입사에 직접 여쭸더니 왜인지 3월~4월 중에 개봉한다고 합니다.

3위는 방학 시즌을 맞아 <겨울왕국>의 뒤를 이을 것을 꿈꾸며 개봉한 애니메이션 <넛 잡>입니다. 국내 극장에서 광고를 보신 분도 많으시죠?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국산 애니메이션이 북미 시장을 공략한다는 말도 많았는데, 제작비가 낮으면서도 2천만 불을 넘기면서 데뷔하여 대박을 안겼습니다. 현재 북미 박스 오피스에는 가족용 영화가 없는 상황이고, <겨울왕국>은 거의 두 달 전에 개봉한 틈을 노린 것이 적중한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는 다음 주에 개봉할 예정입니다.

국내에서 먼저 개봉한 <잭 라이언: 코드네임 쉐도우>는 딱 예상했던 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현재의 수입은 톰 클랜시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 중 <붉은 10월>과 비슷합니다. 문제는 이 영화가 무려 20년도 더 전에 개봉했었다는 것입니다. 고로 <잭 라이언: 코드네임 쉐도우>는 역시 북미 박스 오피스에서 엄청나게 저조하진 않으나 속편 제작에 대해서는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결과를 보인 것입니다. 확실히 시대착오적인 선택이 도드라지는 영화였고, 케네스 브래너의 연출에 대해서 의문을 품게 됐습니다. 팬에게는 미안하지만 크리스 파인도 잭 라이언으로서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막 국내에서도 개봉하여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겨울왕국>의 기세는 대단하네요. <넛 잡>이 개봉하긴 했으나 여전히 5위에 머물렀습니다. 그것도 그렇지만 하락율이 고작 -18.7%에 불과합니다. 곧 <슈퍼 배드 2>를 잡을 것 같습니다.

6위~10위

6위는 지난주에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을 받고 아카데미 시상식 10개 부문에 후보로 오른 <아메리칸 허슬>입니다. 이미 웬만큼 성공했었기 때문인지 수상결과가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습니다. 그래도 개봉 6주차에 1천만 불 이상의 수입을 올린 건 분명 좋은 신호입니다. 총 수입에서는 기어코 1억 불을 돌파했습니다.

<데블스 듀>는 뜻밖에도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7위로 데뷔하는 것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역대 1월에 개봉했던 공포영화가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거뒀던 것에 비하면 굉장히 실망스러운 결과입니다. 앞서 북미 박스 오피스에서 먼저 선을 보였던 <파라노말 액티비티: 더 마크드 원스>가 그랬던 것처럼, <데블스 듀>마저 부진하면서 이제 슬슬 관객이 페이크 다큐에 질렸다는 것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긴 솔직하게 말해서 질려도 벌써 질렸어야 하지 않을까요?

8위는 화려한 출연진이 관객의 눈길을 끌고 있는 <August: Osage County>입니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아메리칸 허슬>과 마찬가지로 북미 박스 오피스 순위는 하락하고 수입은 도리어 늘어났습니다.

9위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10위는 <세이빙 미스터 뱅크스>입니다.

<Ride Along>

<라이드 얼롱>은 흑인 듀오가 주연을 맡은 코미디 영화입니다. 케빈 하트가 연기한 벤은 쉴 새 없이 떠드는 수다쟁이면서 보안요원으로 근무하는 남자입니다. 사랑하는 여자친구와는 관계가 좋으나 그 오빠이자 경찰인 제임스가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자 급기야 위험한 일에 강제로 투입되는 지경에 이릅니다. 하루 동안 제임스를 따라다니면서 그에게 자신이 여자친구와 결혼할 자격을 충분히 갖춘 남자라는 것을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뭐 이런 과정에서 벌어질 좌충우돌 현장이 <라이드 얼롱>의 이야기입니다. 예고편은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한 장면에서 빵 터졌습니다. 케빈 하트가 수류탄을 냅다 집어서 다시 던지자 아이스 큐브 왈, "이게 게임인 줄 아냐?" FPS 게임 좀 아시는 분들은 다 웃으실 듯.

▲ 코미디 영화는 대개 전문가 평점이 좋지 않죠.
<The Nut Job>

<넛 잡>은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레드 로버'가 북미 시장에 내놓은 작품입니다. 싸이까지 동원한 덕분인지 개봉 첫 주말에 2천만 불을 넘기면서 기대에 부응했네요. 공원에서 한가로이 살던 사고뭉치 다람쥐 설리는 다른 동물들에게도 식량을 공급하던 떡갈나무를 홀랑 태우고 말아 추방당합니다. 유일한 친구인 버디와 함께 도시로 진출해 떠돌던 중에 땅콩가게를 발견하고 유레카를 외치는데, 다른 동물들과 함께 같은 장소에서 마주치면서 힘을 합쳐 땅콩을 탈취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깁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이 가게에는 또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 국내 뉴스에서는 어린이 관객에게 90점 이상의 격한 반응을 얻었다고 했는데...
<Devil's Due>

<데블스 듀>는 사실 흥행에서나 평가에서나 좋은 결과를 얻기가 힘든 공포영화입니다. 대략적인 내용은 한 신혼부부가 첫날밤을 이상하게 보낸 후에 아내가 예정에도 없던 임신을 하게 되고,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한 행동과 무서운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뭐 이쯤만 들어도 대번에 <데블스 듀>의 소재가 무엇이고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연상될 것입니다. 바로 로만 폴란스키의 대표작 중 하나이고 이 방면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악마의 씨>입니다. 이걸 거의 대놓고 카피한 셈이나 마찬가지인 안일한 영화가 페이크 다큐라는 형식을 빌린 것일 뿐이니 첫인상부터 좋지 않네요.

▲ 다른 곳에서도 낮지만 시네마스코어에서 D라는 알파벳을 본 건 처음입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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