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라이언: 코드네임 쉐도우>는 작년에 작고한 군사전문 소설가인 톰 클랜시에게서 출발한 영화입니다. 소설만이 아니라 게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정도로 이 분야에서는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이미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던 영화가 몇 편 있었으나 이번에는 조금 다릅니다. <잭 라이언: 코드네임 쉐도우>는 특정 소설이 아니라 톰 클랜시가 창조한 캐릭터인 잭 라이언을 가져와서 새롭게 이야기를 덧입혔습니다. 리부트를 기획했을 것이라는 점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또 한 가지 요인에서 <잭 라이언: 코드네임 쉐도우>는 흥미를 갖게 했습니다. 다름 아니라 러시아를 적국으로 간주했다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나마 냉전이 종식된 후에는 일련의 할리우드 첩보영화에서 주인공이 러시아를 상대했던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영국에서 제작하긴 했으나 최근의 <007 시리즈>도 그렇고, <본 시리즈>도 특정 국가보다는 (테러)단체를 적으로 등장시켰습니다. 아시다시피 할리우드에서 제작하는 영화는 정치 이데올로기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데, 러시아를 마냥 적으로 삼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났으니 다른 나라나 가상의 단체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래서 절대 영화는 영화일 뿐이지 않은 것입니다) 그걸 깨고 <잭 라이언: 코드네임 쉐도우>가 갑자기 러시아를 적으로 내세웠습니다. 러시아 정부의 입김을 명확하게 드러내진 않으나 분명 관련이 있다는 건 내비치고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지금도 냉전이라면 냉전입니다. 예전과 다른 게 있다면 지금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정치를 넘어서서 경제 논리가 세계를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불과 몇 년 전에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이 휘청했던 것에서 잘 알 수 있고, <잭 라이언: 코드네임 쉐도우>도 그걸 반영하고 있습니다. 천연가스 자원을 놓고 두 국가가 대립하던 중에 앙심을 품은 러시아가, 미국의 경제(주식시장)를 일순간에 무너뜨리려고 한다는 것이 <잭 라이언: 코드네임 쉐도우>의 중심에 놓인 이야기입니다. 여기에다가 1980년대에 유행했던 정통 첩보 스릴러의 방식을 가미했습니다.

좋은 시도입니다. 시대가 변했으니 새로운 캐릭터와 이야기를 창조할 필요성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아울러 잭 라이언은 예나 지금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애국심으로 무장했습니다. 그는 미국이 원하는 인재상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타 국가에서 보면 거부감이 일 수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설상가상 영화적 완성도로 볼 때도 <잭 라이언: 코드네임 쉐도우>는 결과적으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에서 머무르고 만 실패작입니다. 케네스 브래너는 여전히 자신의 취향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잭 라이언과 악당인 체레빈이 서로의 정체를 알면서도 숨기는 뻔한 '연극'을 한다거나, 문학과 회화를 인용하는 등에서 그의 예술적 기호는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뭐 그의 영화를 안다면 새삼스럽지도 않죠.

<잭 라이언:코드네임 쉐도우>의 문제는 그게 고작이라는 것입니다. 잭 라이언이라는 캐릭터의 기반을 다지느라 시간을 낭비한 바람에 이야기는 부실한 채로 급박하게 전개합니다. 짜임새가 없으니 극 중에서 잭 라이언이 갖은 발버둥을 쳐도 관객에게 긴장은 전해지지 않고, 등장인물들끼리 또 손쉽게 대사로 다 풀어내고 있으니 몰입이 될 턱이 없습니다. 케네스 브래너는 <잭 라이언: 코드네임 쉐도우>에서 캐릭터는 그럭저럭 아주 나쁘지는 않게 조형했으나, 거기에 이야기를 덧대고 풀어가는 데는 전혀 충실하지 않았던 탓에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직접 출연하여 악당을 연기한 것이 연출보다는 나았습니다. 그마저도 캐릭터가 매력이 없어서 영화에 딱히 도움이 되진 않았습니다. 북미에서의 반응은 심각하게 낮진 않을 것 같지만 과연 <잭 라이언: 코드네임 쉐도우>가 새로운 시리즈로 이어질지는 의문입니다.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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