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본래 허구를 기반으로 하지만 실화를 소재로 할 때는 더 큰 매력을 지니게 됩니다. 완전한 허구보다는 어느 정도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 더 끌리기 마련이거든요. 때로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 있다는 것에 관객은 흥미를 느끼면서 그로 인한 감동은 배가되곤 합니다. 이것이 자칫 재미를 추구하는 선에서 그친다면 실화와 실존 인물 또는 그것과 관련이 있는 사람은 상처를 받고 마는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영화가 실화를 다룰 때는 더 신중하고 진정성을 가지고 임해야 합니다. 금주의 채널 CGV 새러데이 10 PM 방영작인 <더 임파서블>이 그 좋은 예에 속합니다.

<더 임파서블>

마리아와 헨리 부부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태국으로 세 아들과 함께 휴가를 떠납니다. 모처럼 가족끼리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에 들뜬 채로 바다를 마주한 리조트에 묵은 마리아와 헨리. 기대했던 것처럼 한창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나 크리스마스 다음날에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태가 벌어집니다. 모든 것을 다 집어삼키고도 남을 쓰나미가 느닷없이 밀어닥쳐서 죽음의 위기에 봉착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다섯 명은 모두 가까스로 살아남았으나 마리아와 큰 아들인 루카스, 헨리와 다른 두 아들이 각각 떨어진 채로 서로의 행방을 모르는 상태입니다. 행방은커녕 생존조차 알 수 없었던 이들은 부디 어딘가에 살아있기만을 기원하는데, 마리아는 심각한 부상을 입어서 한시가 급할 정도로 위중합니다.

2004년 태국의 쓰나미

<더 임파서블>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금세 알아차리셨을 분이 많으실 것 같네요. 바로 2004년에 전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던 태국의 쓰나미 사태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쓰나미'란 단어가 널리 알려지게 됐던 계기가 바로 이것입니다. 당시 인도양에서 발생한 대형 지진해일로 인해서 태국 곳곳이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더 임파서블>의 주인공처럼 휴양차 왔던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절명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듬해에 태국에 갔다가 그때까지도 여기저기 남아있는 자연재해의 비극을 보면서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더 임파서블>은 쓰나미 사태라는 소재를 활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기적적으로 생존하고 재회한 알바레즈 벨론 가족의 실존 이야기를 영화로 옮겼습니다.

신중하고 진정성을 가진 접근

실화의 주인공인 알바레즈 벨론의 가족은 <더 임파서블>의 영화화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이 처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으나 그 끔찍한 비극을 다시 보는 걸 싫어했습니다. 이것을 뒤집어서 영화화가 가능하도록 했던 것이 <더 임파서블>의 포인트입니다. 이 영화는 재난영화로 분류할 수 있으나 우리가 흔히 알고 봤던 그것과는 분명 다릅니다. <더 임파서블>은 할리우드가 스펙타클한 영상과 영웅주의 등으로 정의할 수 있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재난영화를 소비하는 것에서 탈피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실화와 실존인물을 다룬다는 것에서 꼭 필요한 접근방법이었습니다. 알바레즈 벨론의 가족이 <더 임파서블>의 영화화를 거절했던 결정적 이유도 그에 대한 우려였을 것입니다.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스페인 출신으로 <더 임파서블>을 연출한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의 전작 중 하나는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했던 <오퍼나지: 비밀의 계단>입니다. 전작의 공포영화와는 사뭇 다르면서도 비슷한 <더 임파서블>에서 그의 연출은 더 빛을 발했습니다. 알바레즈 벨론의 가족을 설득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은 할리우드 스타일의 재난영화를 지양했습니다. 이건 <더 임파서블>의 초반부에 보여지는 쓰나미 현장만으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거대한 자연재해의 비주얼에 탐닉하는 걸 버리면서 마리아와 루카스 등이 겪는 생존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랬던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이 작년에 개봉한 <월드워 Z>의 속편을 연출하게 됐다는 것은 또 다른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사람들

보통의 재난영화에서는 으레 주인공이 꿋꿋하게 버티고 고난을 극복하여 살아남는 이야기가 주입니다. 하지만 <더 임파서블>에는 그 흔한 영웅주의도 없고 자연재해에 맞서 의연하게 버티는 인간도 없습니다. 오로지 자연재해가 남긴 상처로부터의 끈질긴 탈출만 있을 뿐입니다. <더 임파서블>의 초점은 마리아와 루카스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이미 쓰나미로부터 가까스로 살아남은 후에 행동을 취합니다. 마리아는 한시라도 빨리 치료가 필요한 중상을 입었고, 루카스는 그런 엄마를 도와서 처참한 현장에서 벗어나 병원으로 향해야 합니다. <더 임파서블>을 보는 관객은 이들과 함께 자연재해 후의 상황에서 펼쳐지는 고군분투의 현장을 함께합니다. 여기에 스펙타클이나 쾌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톰 홀랜드와 나오미 와츠

오락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신중하게 비극을 다루고 있는 <더 임파서블>은 표면적으로 나오미 와츠와 이완 맥그리거가 주연입니다. 두 사람은 실존인물인 벨론 부부가 서로의 생존여부조차 모른 채로 애를 태우면서 보냈을 고난의 시간을 연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나오미 와츠는 '상처 입고 무력한 어머니'라는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하면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진짜 주연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아들인 루카스로 출연한 톰 홀랜드입니다. 나이 어린 아들을 연기하면서도 성인배우 이상으로 잘 적응했고 나오미 와츠와의 호흡도 아주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어머니의 드러난 가슴과 끔찍한 상처를 동시에 보면서 어쩔 줄 몰라하던 장면에서의 연기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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