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에서 <올드보이 리메이크>가 개봉했을 때 현지의 한 평론가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대체 <올드보이>를 리메이크한다는 게 어떻게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걸까?" 영화를 보기 전에도 그랬고 보고 난 지금도 그렇고,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영화의 신이라면 모를까, <올드보이>를 리메이크해서 좋은 소릴 들을 가능성은 극히 미미합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올드보이 리메이크>는 역시나 전형적인 할리우드의 장르영화입니다. 의외로 상당부분이 오리지널과 동일하긴 합니다. 조 두셋이 광고회사에서 근무하는 망나니라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달라진 게 아주 많지는 않습니다. 주제 역시 거의 변하지 않았고, 이것을 이끌어내는 방식도 우려했던 것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그의 직업을 왜 광고인으로 설정했는지도 주제로 가는 과정을 효과적으로 부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 이야기의 만듦새와 전개는 상당히 엉성하고 싱거우며 디테일은 엉망입니다.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결말과 주제로 향해 나아가는 것에만 몰두하느라 중간과정은 대충 얼버무리는 것의 연속입니다.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표출에만 공을 들일 뿐, 정서를 이끌어내진 못합니다.

<올드보이 리메이크>가 이렇게 된 데는 각본보다 연출이 더 나쁜 영향을 미쳤습니다. 스파이크 리에게 중요했던 것은 할리우드답게 미디어의 폐해를 가미해서 더 쉽고 간편하게 주제를 전달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 자체에는 저도 공감했으나 자신의 목표에만 집착한 탓인지 그 외에는 고심한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하실 게 뻔한 낙지 장면을 아예 뺀 건 괜찮지만, 그걸 대체하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쉽습니다. 다만 조 두셋(오대수)와 에이드리안 프라이스(이우진)의 최후는 <올드보이 리메이크>도 제법 괜찮았습니다. 오리지널의 결말부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적극적이고 인간적인 단죄'에 가깝다면 리메이크는 타인에게서 오는 '소극적이고 종교적인 참회'입니다.

물론 이것만 가지고 이 영화를 감쌀 생각은 없습니다. 대신에 태생적으로 아무래도 조금은 안쓰러운 영화인 것 같긴 합니다. 이를테면 <올드보이 리메이크>는 찢어진 콘돔이 부른 원치 않은 임신과도 같습니다. 남녀가 무분별한 판단과 행동으로 잠자리를 가졌다가 하필 콘돔이 찢어진 걸 봤는데, 요행을 바랐으나 결국 임신으로 이어져서 최소한의 인간된 도리로 낳겠다고 결정했습니다. 막상 태어난 아이는 비극적이게도 얼마 살지 못할 운명에 처한 데다가 유전자 검사를 했더니 친부가 누군지를 모르겠고, 이 사실에 아버지는 폭력을 행사하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그걸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은 끔찍하고 잔인하지만 한편으론 이해도 되는 생각을 하기에 이릅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

덧 1) 장도리 격투를 나름 재연했습니다. 똑같이 롱테이크를 쓰지만 동선을 달리 가져가는 걸로 뭔가를 보태려고 노력한 흔적은 있습니다. 완성도가 나쁘진 않지만 당연하게도 오리지널과 같은 파괴력을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덧 2) 조 두셋이 감금된 채로 만두 대신에 무엇을 먹는지 궁금하시죠? <올드보이 리메이크>도 그대로 만두를 먹더군요.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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