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남는다>는 <천국보다 낯선>으로 미국 독립영화의 별로 떠올랐던 짐 자무쉬의 신작입니다. 개인적으로 참 오랜만에 보는 짐 자무쉬의 영화고, 아마 극장에서 보는 건 <고스트 독> 이후로 처음인 것 같습니다. 뱀파이어가 등장한다고 해서 의아했는데 역시나 짐 자무쉬는 여전히 스타일 하나는 최고더군요. 다른 말로 속되게 표현하면 영상과 음악으로 조지니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굉장히 모호하고 현학적이며 탐미적인 영화라서 영생을 산 뱀파이어가 현재를 대하는 자세와 부합하지만, 반대로 시각에 따라서는 분명 그 과도한 허세에 질릴 소지도 다분합니다.

작년에 개봉했고 레오 카라가 긴 침묵을 깨면서 발표한 <홀리 모터스>가 그랬듯이, 짐 자무쉬의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남는다>도 과거와 과거의 예술에 대한 향수가 진하게 풍깁니다. 여기에 더해서 이 영화에는 현재에 대한 회의와 인간을 향한 경멸도 가득합니다. 쉽게 말해서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남는다>는 썩어가는 인간의 영혼을 보는 뱀파이어들의 한탄 같은 영화라고 할까요? (굳이 주인공인 두 뱀파이어의 이름을 아담과 이브라고 지은 이유도 관련이 있습니다) 분명 판타지스러운 소재로 시작하는 영화지만 너무나도 덤덤하게 현실적으로 그려서 매력적입니다.

틸다 스윈튼, 톰 히들스턴, 미아 와시코브스카, 안톤 옐친, 존 허트가 보여주는 연기는 참 좋습니다. 특히 시종일관 나른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이끄는 틸다 스윈튼과 톰 히들스턴의 호흡은 훌륭합니다. 이들 사이에 흐르는 대기를 깨는 미아 와시코브스카도 나이에 걸맞은 연기를 보여줬고, 세 캐릭터가 각기 다른 도시로 상징하는 이미지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남는다>라는 제목은 뭔가 희망적인 것 같으면서도 결말까지 다다르면 짐 자무쉬의 염세와 냉소가 작렬합니다. 결국 변하지 않는 게 가능한 것은 영생을 담보로 해야만 하고, 그렇지 않다면 뱀파이어라고 해서 인간과 하등 다를 게 없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의 사랑도 그 오랜 세월을 견디고 유지했지만, 아마 그건 그들이 영생을 살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라는 질문이 들립니다. 삶이 유한하다는 걸 알면 모두 천박한 욕망 앞에 무릎을 꿇으니...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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