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제목 때문에 보기로 결심했던 영화입니다. 스위스가 절로 생각이 나니 또 여행에 대한 욕구가 샘솟고 말아서 그랬습니다. 결과적으로 <마테호른>은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지만 깊고 짙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평소에 보기 드문 네덜란드 영화인데, 반종교적이고 반사회적인 것 같으면서도 꽤 영리하고 성숙한 퀴어무비입니다. 그렇지만 꼭 퀴어무비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것에서 이 영화를 영리하다고 했습니다.

우연히 동거를 시작한 두 남자에 대한 이야기인 <마테호른>은 한 가지 의문을 갖게 했습니다. "과연 인간이 입은 상처를 치유하고 구원하는 것은 무형의 신인가, 아니면 유형의 또 다른 인간인가?" 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자면 종교의 기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그걸 대하는 인간의 마음가짐과 태도 등도 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종교도 결국은 인간의 산물이라는 건 불변하니 제 질문의 답이 어느 쪽으로 향하든 인간을 구원하는 건 인간일 겁니다. 단지 그걸 모르고 인간을 등한시한 채 맹목적으로 종교에 의존하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죠. 그런 의미에서 위의 이미지로 볼 수 있는 <마테호른>의 한 장면은 의미하는 바가 컸습니다. 마을의 다른 모든 주민들은 일제히 교회로 향하고 있지만 주인공 두 사람은 반대로 걷고 있죠.

<마테호른>은 주제에 걸맞게 바로크 음악과 종교음악을 대표하는 요한 세바스찬 바하의 성스럽고 숙연한 작품이 내내 흐르는데, 정작 큰 울림을 남긴 건 아주 세속적인 팝 넘버로 셜리 배시에 의해 잘 알려진 <This is my life>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듣고 있을 만큼 제게는 전율을 안겼던 마지막 장면에서 대단한 기운을 뿜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들리는 딱 한 마디의 대사는 눈물을 쏟게 했습니다. 그래요, 이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의 삶입니다! (가사를 유심히 보셔야 영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종교 얘기를 해서 부담스럽거나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지만 사실 그렇게 심각하게 볼 것까진 없는 영화입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쉽고도 어려운지를 깨닫게도 합니다.

★★★★☆

덧) 마테호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파라마운트의 로고가 마테호른을 본땄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이건 절대 사실이 아닙니다. 아직도 백과사전이나 여행 가이드북, 언론 등에서 확인조차 하지 않고 기록해서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퍼진 낭설입니다. 지금은 바뀌어서 찾을 수 없지만 엄연히 파라마운트 홈페이지에도 기재하고 있었습니다. 최초로 그렸던 사람이 유타에서의 유년시절 중 기억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라고. (일설에는 유타의 벤 로몽드 산이 유력하다고 합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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