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한국 언론은 2013년 최소한의 자맥질조차 못한 채, 잠행의 시간을 보냈다. 해결된 문제는 거의 없고, 방통심의위의 ‘정권 바라기’ 심의나 종편의 패악적 보도는 더 두드러졌다. 지상파 방송의 붕괴 상황에 이르렀고, 해직언론인 복직이나 경영구조 개편과 같은 약속됐던 문제들은 속절없이 유예됐다. 정부는 미디어 전반을 지금보다 더 치열한 경쟁 구도와 산업화로 끌고 가는 것을 ‘창조경제’라고 우기고 있다. 2014년에 이런 상황이 개선 혹은 진화할 것인가의 여부는 물론, 회의적이다.

한 치 앞은 어둡고 두 치 앞을 내다보긴 힘든 한국 사회에서 1년 치 전망을 내놓는다는 것은 무모함을 넘어 무지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언론은 ‘하룻밤 사이에도 세계의 두뇌와 가슴을 얇은 젤라틴 종이에 인쇄해야 하는 일’을 숙명으로 떠앉아야 한다(고 믿는다). 누군가는 겨울에도 봄을 예비해야 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도 어떤 단서는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소박한 믿음에서 10회에 걸쳐 <2014 미디어 정책 10대 이슈> 시리즈를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상황이 만만치 않다. 당장, 눈앞에는 KBS수신료 인상과 종편 재승인 그리고 방통위원회와 MBC 등의 언론계 인사가 있다. 유료 방송 시장 쟁탈전과 주파수 전쟁은 치열한 진지전을 예고한다. 올림픽과 월드컵 등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둘러싼 신경전과 한층 더 뜨거워질 ‘지상파VS케이블‘의 콘텐츠 전쟁도 예고된다. 언론 불신 시대에 방송사들은 일제히 ’상암동 시대‘를 열고, 곧 닥칠 'TV플랫폼 혁명'에도 참전해야 한다. 숨 가쁘게 전개될 2014년의 맛을 선뵌다.

① KBS 수신료 인상
② 종편 재승인
③ 언론계 인사
④ 유료방송 시장 쟁탈전
⑤ 올림픽과 월드컵
⑥ 기술 전쟁, 주파수 전투
⑦ 컨텐츠 전쟁
⑧ 언론 불신 시대
⑨ 상암동 시대
⑩ 방송 플랫폼 혁명

“딱, 탈 KBS에만 성공한 것 아니겠느냐”

KBS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냉소했다. 야당 추천 이사들이 불참한 채 ‘7:0’의 의결을 거쳐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된 KBS 수신료 인상안에 대한 가장 냉정한 평가일지 모른다. KBS 수신료 인상안은 의결의 편향성 문제뿐만 아니라 그 이사회에서조차 논의되지 않았던 ‘수신기기 확대’나 ‘물가연동제’가 포함되며 아예 정당성 자체가 흔들리는 만신창이가 됐다. 야당 추천 방통위원을 ‘저격’하는 리포트를 편성하는 등 독이 오른 뱀처럼 여론전을 전개하던 KBS 사측은 일의 파장이 만만치 않아지자, 슬그머니 ‘수신기기 확대’와 ‘물가연동제’를 취소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미 패배한 전쟁이 된, 지난 연말의 상황이다.

“길환영 사장의 목표는 수신료 인상안을 일단 KBS에서 탈출시키는 것에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인상까지 생각했다면 일을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을 것이다”

또 다른 KBS 관계자의 말이다. 수신료 인상안을 바라보는 KBS의 속내가 어떤 것인지를 확인케 한다. 수신료 인상안이 입은 ‘상처’는 그만큼 만만치 않다. 야당 이사들이 불참한 가운데 여당 이사들에게조차 제대로 내용이 공유되지 않았던 상황은 ‘절차적 정당성의 훼손’을 보여주고,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은 내용이 포함된 것은 ‘내용적 정당성의 훼손’을 가져왔다. 이게 무모함의 결과인지 아니면 무능의 소산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야당 이사들 일각에서는 “지금도 이미 충분히 길환영 사장이 사퇴해야 할 상황”이라는 격한 의견까지 있을 정도다.

▲ 방통위 김충식 부위원장과 양문석 상임위원은 지난 17일 방통위 전체회의 직후 "KBS 수신료 폭탄만 안기려하고 공정방송 외면하나?"라는 성명성을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양문석 위원이 KBS가 제출한 수신료 인상안을 펼처보이며, 수신료 부과대상 확대안이 이사회의 의결 없이 방통위에 제안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미디어스
이미, 실패한 논의가 되어가고 있는 수신료 인상안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신료 인상안의 처리는 가능할까? KBS는 올 해 중 처리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성이 없다고까지 말할 순 없다’ 정도가 최대치의 호의적 전망이 아닐까 싶다. 미쳐 파악하기 힘든 돌발적 변수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일단, 방통위 논의가 만만치 않다. 2기 방통위의 임기는 오는 3월에 끝난다. KBS가 제출한 수신료 인상안이 표류할 수 있는 1차적 조건이다. 2기 방통위의 마지막 역할은 ‘종편 재승인’을 마무리 짓는 것이다. 1월 중 심사계획이 마련되고, 임기를 끝내기 전에 완료하는 일정이다. 수신료 인상의 경우 제출 후 60일 내 처리라는 규정이 방통위 내부에 있긴 하지만 이 빡빡한 일정에 KBS 수신료가 끼어들 틈은 많지 않아 보인다. 더욱이 이번 수신료 인상안이 야당 추천 상임위원들과 완전히 척을 진 상태에서 전개되고 있단 점도 중요한 변수다. 김충식, 양문석 두 야당 추천 상임위원들은 “수신료 인상안을 처리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들은 오히려 KBS가 ‘수신기기 확대’와 ‘물가연동제’를 “취소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 법리적으로나, 절차적으로나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이미 제출된 안을 방통위가 임의로 ‘취소’할 것이 아니라, KBS가 이사회의 재의결을 거쳐 다시 안을 제출해야한단 입장이다. 그렇다고 3기 방통위에서 처리 전망이 밝은 것도 아니다. 아직 후보군들이 가시화되지 않고 있지만, 누가 되더라도 야당 추천 상임위원들은 기본적으로 수신료 인상안에 ‘반대’할 가능성이 99%이다. 연임이 유력시되는 이경재 위원장이(혹은 새로운 위원장이) 제 아무리 용을 쓰더라도 ‘3:0’의 처리 구조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KBS가 그랬던 것처럼 방통위 역시 수신료를 ‘탈 방통위’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국회 처리 전망 역시 언제나 그렇듯 밝지 않다. 준조세 성격을 갖는 수신료의 성격 상 지역구를 가진 국회의원들은 선거 일정과 수신료 인상안을 견주어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당장에 모든 지역구민들의 지출이 늘어나는 결정을 중앙의 정치 논리만 갖고 앞장설 순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6월 지방선거가 중요하다. 물론, 6월 전에 처리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6월 전에 처리된다는 것은 방통위부터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새누리당이 ‘날치기’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는데, 날치기가 불가능해졌을 뿐더러 새누리당 역시 수신료 문제에 그런 의지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 KBS가 방통위에 제출한 ‘텔레비전 방송 수신료 조정(안). 이 문건에는 '수신료 4000원 인상'외에도 '수신기기 확대', '수신료 물가 연동제'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KBS는 이를 '중장기적 과제'라고 해명했지만, 문건 어디에도 그런 언급은 없었다. 이후 KBS는 '수신기기 확대'와 '물가연동제'를 '취소'해달라고 방통위에 요청하는 촌극을 벌였다. ⓒ미디어스
정책 아닌 정치가 된 수신료, 여야가 바뀌더라도 영원히 입장 엇갈릴 것

결국, 국회 논의 역시 그간 익숙하게 펼쳐졌던 수신료 공방을 재연하며, KBS와 방통위에서 그러했든 야당의 격렬한 반대와 야당을 배제하는 의사 결정 과정 속에서 지리멸렬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민주당 내 언론정책 전문가들 가운데는 “수신료 인상의 기본적 취지에는 공감한다”는 입장을 가진 이들이 제법 된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정치’다. 한 민주당 보좌관은 “KBS가 수신료 문제를 최대한 탈정치적인 포지션으로 만들어 왔어야 하는데, 상황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며 “수신료 문제가 정치적인 것이 되면, 여야가 설령 바뀌더라도 영원히 입장을 엇갈릴 수밖에 없다”고 단정했다.

공영방송이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영향에서 벗어나 고유의 역할을 다할 때 존재 의의가 있으며, 공영방송의 위상과 정체성은 안정적인 재원확보 속에서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작금의 공영방송은 정치권력에 완전히 종속된 상태에서 자본권력의 영향에서 벗어나기보단 그 혜택은 고스란히 누리면서 동시에 안정적 재원도 확보하기 위해 수신료 인상을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이나 수신료 인상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이 모든 방송 정책의 악순환을 해결할 ‘만능열쇠’로 ‘수신료 인상’을 얘기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이런 의혹을 부채질하기도 한다.

▲ KBS는 수신료 인상에 반대하는 시민사회 단체의 기자회견을 청경을 동원해 저지하며, 물리적 충돌까지 빚었다. 시민사회와 이런 식의 관계를 형성하며 KBS가 수신료를 인상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미디어스
중요한 건 시민사회와의 '협치'

이와 관련해 현재의 논의가 어떻게 왜곡됐고 왜 틀어졌는지는 현재 가장 앞장서 수신료 인상안을 막고 있는 양문석 방통위원의 지난 2007년 6월 토론회 발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당시, 언론연대 정책실장이었던 양 위원은 “수신료는 인상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KBS의 1,500원에 반대한다. 많다고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적다고 반대한다. 언론관련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로서 수신료 인상에 선뜻 동의하기란 쉽지 않은 사안이다. 더구나 현재 2,500원을 5,000원으로 2,500원 더 인상하자는 주장은 더욱 어렵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볼 때 수신료 인상은 시청자들에게 이익이다.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수신환경개선을 통한 미디어 선택의 여지를 만드는 것, 또 하나는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미디어의 다양성을 구축하는 것이다”고 밝혔던바 있다.

당시, 시민사회단체들은 4,000원 인상을 제안한 KBS에 △안정적 재원 확보를 통한 공영방송체제의 보호, △이중권력으로부터의 방송 독립성 확보, △방송의 공익적 서비스 수행성 강화, △KBS, EBS의 민주적 공공영역화 실현 등을 전제 조건으로 오히려 5,000원 인상이 적합하다고 역제안 했었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얘기처럼 느껴지지만, KBS가 진정 수신료 인상을 원한다면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governance)를 포기해선 곤란하다. 수신료 인상을 협치로 결정하는 과정 자체가 누락되면 수신료 인상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넘어지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지난 10년간의 수신료 인상 실패 역사인데, KBS는 지금 또, 같은 실패의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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