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곧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실을 논하는 장이다. 그래서 인터뷰는 가장 흔한 언론의 형식 가운데 하나이다. 하루에도 수십에서 수백의 인터뷰이가 언론을 장식한다. 인터뷰로 감동을 전하기란 그래서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지난 주말 한 편의 인터뷰가 실로 엄청난 울림과 반향을 일으켰다. 출고된 지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무려 3만여 건에 달하는 SNS 공유가 발생했다. 이쯤 되면 ‘신드롬’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실로 오랜만에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된 인터뷰이가 등장했다.

뜻밖이다. 화려한 연예인도 아니고, 동경의 대상이 될 스타는 더더욱 아니다. 그냥 어르신이다. 아니, 이제는 진귀해진 진짜 어른이다. 한겨레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은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을 인터뷰했다. 한겨레가 뽑은 인터뷰 제목은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였다. 굉장히 공세적이면서도 역설적인 제목이었다. 그리고 단 한 문장만으로 당대가 마주하고 있는 모순의 지점들을 모두 뒤섞어 버린 ‘일갈’이었다.

▲ 1월 4일자 한겨레신문 20면에 실린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인터뷰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언론학자 이진순은 채현국 이사장을 만난 이유에 대해 “신문을 펼치는 게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만큼 불길한 나날들, 불빛도 없이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어른을 만나고 싶었다”고 밝혔다. “격동의 시대에 휘둘리지 않고 세속의 욕망에 영혼을 팔지 않은 어른이라면 따끔한 회초리든 날 선 질책이든 달게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이진순의 이 바람과 고백은 인터뷰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채현국 이사장은 인터뷰에 앞서 “독지가라고 쓰지 말고, 미화하지 말고, 누구를 도왔다고 쓰지 말 것”이라는 조건을 달았다고 한다.

채 이사장의 인터뷰는 사실 별다르지 않다. 하지만 매우 특별하다. 시대를 관통해 온 삶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체로 비범하다. 하지만 그 비범함의 끝에서 이르러 많은 사람들은 그 비범함의 대가로 거머쥐게 된 ‘성공’과 ‘명예’를 과시한다. 그래서 인터뷰를 읽는 이들은 어떤 이가 인터뷰이로 선정된 까닭이 시대를 관통해온 비범함인지 아니면 그 비범함 이후의 당연한 성취를 ‘관람’하라는 것인지 헛갈릴 때가 많다. 하지만 채현국 이사장은 그야말로 비범함 이후에 철저히 평범해지는 길을 선택함으로서 그 누구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담대한 세계를 구축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한때, 탄광을 운영하며 한때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전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거부였던 그는 “유신 시절 쫓기고 핍박받는 민주화 인사들의 마지막 보루”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력에 대해 채현국 이사장은 “난 내 몫의, 내 일을 한 것”이라며 “사람들이 많이 다치고 죽은 탄광”을 한 자신은 절대 “칭찬받는 일이나 이름나는 일에 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신선하다. 사람이 다치거나 죽거나 반도체 산업을 일구며 국내 제일의 재벌이 됐다는 이유만으로 칭송되며 건국 이래 가장 큰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어떤 재벌의 세상에서 채현국 이사장의 이런 견해는 전복적이기까지 하다.

재산을 정리하고 이후 재산을 활용한 방식에 있어서도 채현국 이사장의 행태는 가히 ‘기인’이라고 할 만하다. 개인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사람이야 많지만 채현국 이사장은 아예 “개인 재산이란 게 어딨나? 다 이 세상 거지. 공산당 얘기가 아니다. 재산은 세상 것이다. 이 세상 것을 내가 잠시 맡아서 잘한 것뿐이다. 그럼 세상에 나눠야 해. 그건 자식한테 물려줄 게 아니다.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엄청난 재산을 갖고 권력까지 탐하다가 그 재산이 문제가 되자 허울뿐인 공익재단을 세워 있는 생색 없는 생색은 다 내며 재산을 환원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전직 대통령은 채현국 이사장의 이 말에 어떤 생각을 갖을지 궁금하다.

채현국 이사장은 경남 양산에서 개운중, 효암고를 운영하는 이사장이지만 대개는 작업복 차림으로 학교 정원일이나 하고 있어 학생들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 그가 운영하는 학교에는 돌멩이에 ‘쓴맛이 사는 맛’이라고 써있다고 한다. 쓴맛이 사는 맛이라고 믿는 그는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에 대해 “날조 조작하는 이 언론판에 조종당하지 않고 그렇게 터져 나오니 참 고맙다”며 “역시 젊은 놈들이 믿을 만하구나. 암만 늙은이들이 잘못해도 그 덕에 산다”고 말했다. 덧붙여 “아비들도 처음부터 썩지는 않았다…노인 세대를 절대로 봐주지 마라”고 당부했다. 채현국 이사장의 이 말을 그와 엇비슷한 연배이고 사립학교 이사장이란 엇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전주 성산고 홍성대 이사장은 어떻게 생각할까? 성산고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역사왜곡 논란이 있는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채 동문은 물론 신입생과 재학생 그리고 전국적 시민사회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버티고 있는 중이다. 이 꿈쩍없음의 뒤에는 <수학의 정석>으로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한 홍성대 이사장의 의지가 있고 말이다.

이건희, 이명박 그리고 홍성대 같은 부와 명예 그리고 성공을 모두 거두고도 여전히 한 치의 기득권도 내려놓고 있지 않은 노인들에게 채현국 이사장이 물었다. 이 사회에서 노인들은 왜 이 모양이냐고.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당부했다. 노인 세대를 절대로 봐주지 말라고. 날이 갈수록 ‘노인을 위한 나라’로 향하고 있는 정치적 파국의 시대에, 이 특별한 노인의 얘기는 앞으로도 꽤 오래 화두로 떠다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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