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바우만, 정일준 역, <현대성과 홀로코스트>, 새물결, 2013

2013년에 발간된 인문·사회 신간들을 검색하고 있노라면, 더 할 이야기가 없다는 말을 부재로 표현한다는 생각이 든다. 정확하게 말하면 할 이야기는 이미 다 했는데, 무엇에도 반응하지 않는 현실에 힘을 잃었다는 것이 옳으리라. 우리의 생활환경을 바꾸어버린 신자유주의/세계화 체제에 대한 책은 많이 나왔다. 시장의 자유와 연계한 승자 독식 이념이 공동체 전체를 어떻게 힘겨운 삶으로 이끄는지도 제시된 바 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어떤 움직임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힘들다는 푸념만 여기저기서 들릴 뿐이다.

상황이 이러니 잠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를 이런 곤경에 빠지게 하는 요인 중 하나는 도덕적 측면과 격리된 채 이념과 목표가 효율적으로 추구되고 자기 정당화하는 시스템의 영향일 것이다. 다시 말해, 외부 없는 내재적 정치/사회 공동체인 국가와 그것을 지탱하는 근대성을 하나의 요인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근대성의 놀라운 자기 혁신성과 생산력은 추종의 대상이지 반성의 대상이 아니다. 반성의 기회를 제시했던 영역은 생태주의와 후기구조주의 정도였다. 그러나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는 그런 관점에 의거하지 않고도 홀로코스트의 실증적 사례를 통해 근대성의 이면을 보여줌으로써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바우만이 정의하는 근대성의 특성으로 대략 ‘1)미래를 선점하기 위해 현재를 바꿔나가는 계획실천성 2)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외부를 소거하는 배타적 합리성, 3)합리성의 실천 기계로서의 관료제 4)이상적 목표를 현재에 구현하기 위한 유토피아적 노력’을 꼽을 수 있다. 이 중 바우만은 2)와 3)에 주목하여 ‘합리성’이 가진 배타적 특성이 목표와 실행의 과정에서 어떻게 도덕적 성찰을 배제하고 내부적 효율성의 윤리로 왜곡시키는지, 또한 이렇게 설정된 목표가 관료제라는 기계를 통해 어떻게 폭주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바우만이 제시하는 바에 따르면 내재적 공동체가 설정한 목표는 반성을 배제하는 근대성의 원리 때문에 제약되거나 거부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홀로코스트는 “유대인 학살”이 목표였던 것이 아니라, “유대인 없는 제 3 제국”이라는 목표를 위해 실행된 것이다. 유대인이 없어야 했기 때문에 효율성의 원칙에 따라 처음에는 ‘격리’되었고, 다음에는 ‘이주’ 되었으며, 더 이주할 공간이 없어졌기 때문에 ‘학살’ 된 것이다.

이 과정은 “유대인 없는 제 3 제국”이라는 목표를 지금 이곳에 현실화 시키려는 ‘관료적 집단의 실행’에 의해 일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유대인을 죽일 살인가스를 제작하고, 운반하며, 분무기로 배출하는 ‘분업의 효율적 결합’이 있었다. 직간접적으로 모든 사람이 관여되었지만 이 계획의 실행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시 말해, ‘유대인 없는 제 3 제국의 건설’이라는 기묘한 목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 사람도 없었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성찰하는 사람도 없었다. 오직 그 목표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달성할 것인가’만이 문제가 되었다. 바우만은 목표에 대한 반성 없이 효율성이 추구된 사례로 ‘가스 밴’을 지목한다. 밴은 일종의 폐쇄형 트럭으로 가스를 투입하는 기계였다. 이것을 설계한 민간 기술자 유스트는 밴의 개선 사항을 아래와 같이 진술한다.

“더 작고 완전히 짐을 가득 실은 트럭은 훨씬 더 빨리 운전할 수 있었다. 트렁크를 줄이는 것은 앞 차축에 과부하를 주고 중량 균형에 불리하게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 연결 파이프는 액체에 의해 빨리 부식하기 때문에 가스를 아래가 아니라 위에서 주입해야만 한다. 청소를 쉽게 하려고 바닥에 8~12인치 구멍을 만들어야 하며 바깥에서 여는 뚜껑을 닫아야 한다. 바닥은 약간 경사져야 하고 뚜껑에는 작은 체를 부착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모든 ‘액체’는 가운데로 흐르고 ‘묽은 액체’는 운전 중이라도 배출 될 것이며, ‘진한 액체’는 나중에 호스를 통해 배출될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 <현대성과 홀로코스트> p325~326

유스트는 기술적인 용어로 서술했다. 트럭제조 전문가로서 짐의 움직임과 부하가 미칠 영향을 고려했고, 작동과정에서 생겨날 액체가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예측하고 대안을 마련했다. 그에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짐이 살아있는 인간이며, 가스가 투입될 때 생겨날 액체가 배설물과 구토물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묽은 액체’, ‘진한 액체’일 뿐이었으며, 기술적으로 제거되어야 할 문제점일 뿐이었다. 유스트의 고려사항은 가스를 투입하는 트럭의 효율적 작동이었지, 그 트럭의 목적이 아니었다. 트럭이 사람을 죽이는 기계라는 것은 이상없이 작동해야 한다는 목표 앞에서 부차적인 사항이었다.

이것이 <현대성과 홀로코스트>가 제시하는 근대성의 모습이다. 홀로코스트는 문명화 과정 또는 근대성의 예외적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효율성, 목적합리성, 관료적 기계가 결합된 근대성의 본래적 발현이었다. 목표를 위해 구성원들의 노력을 자발적으로 집결시키고 분업화와 기계화된 과정을 통해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학살을 거침없이 실행하는 리바이어던인 것이다.

사실 이 책은 근대성의 좋은 입문서나 해설서로라고 보기 힘들다. 이 주제에 관심이 없는 독자들에게는 낯선 주제와 복잡한 서술 때문에 접근장벽이 있는 편이다. 게다가 근대성의 성립과정을 생략하고 있기 때문에, 근대성의 특성을 궁금해 하는 독자들에게는 새로운 것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론적인 논의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 사례와 더불어 근대성의 폭력적 원리를 제시하는 이 책은 이상이 실현된 것 같은 현대사회가 이면에 어떤 폭력의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는지 직시할 수 있게 한다.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근대국가에 사는 우리 자신 역시 이러한 폭력의 적극적인 협력자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하면서.

인문서가 제공해야 할 경험이 달콤한 위로나 상담이 아니라면 마땅히 우리를 둘러싼 제약과 조건들을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는 지점들을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를 올해의 책으로 꼽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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