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시상식만큼 화려하고 연말 시상식만큼 썰렁한 자리도 없다. 한 해를 빛낸 별들이 한자리에 모인 풍성한 자리이지만, 객석만 봐도 올해 누가 상을 탈지를 알 수 있을 만큼 상을 받는 사람들만이 자리를 채우는 자리가 대부분의 시상식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논란이 많지만 jtbc <썰전>에서 분석하듯, 많은 광고가 붙는 이 노른자위를 포기할 어리석은(?) 방송사는 없다. 그래서 화려한 별들의 출동에도 불구하고, 상을 받을 사람만 출연하는 연말 시상식은 그들만의 리그인 양 어쩐지 궁색하다.

하지만 그런 연말 시상식들 가운데서도 볼거리가 든든한 시상식이 있다. 시상식의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그 과정만으로도 풍성한, 하지만 다른 분야에 밀려 언제나 일찌감치 방영되는 KBS 연예대상이 그것이다.

KBS 연예대상이 빛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개그콘서트> 덕분이다. 다른 지상파 방송사의 개그 프로그램들은 늦은 밤 시간대를 벗어나지 못한 채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서 빗겨나 변죽만 울리고 있다. 또한 케이블에서 의욕적으로 시작된 SNL 코리아 등이 시사나 19금 등의 제약을 넘어서지 못한 채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것과 달리, <개그콘서트>는 일요일 밤 인기리에 방영되는 주말 드라마와의 경쟁에서도 당당하게 1위 자리를 꿰어차는 등 <개그콘서트>를 보고나면 주말이 마무리되는 익숙한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그 <개그콘서트>가 독보적인 빛을 발하는 시간이 바로 연말 연예대상 시상식이다. 마치 <개그콘서트> 특집 편인 듯, KBS 연예대상은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와 인기 개그맨들의 변주와 변신으로 짜여졌다. 개그콘서트의 코너를 고스란히 옮겨온 박지선, 오나미의 '있다 없으니까', '놈놈놈'의 멋진 네 남자 개그맨들의 군무, 개그도 멋지지만 그보다는 '덩치'로서의 존재감이 더 큰 유민상, 김준현 등의 아이돌 exo의 퍼포먼스, 김민경의 선민의 '24시간이 모자라'를 버전업(?)한 24인분이 모자라로 화룡점정을 찍는다. 심지어, 대상 수상자 호명 전에 특별 공연을 한 '트러블 메이커'가 개그맨들의 변주가 아니라 원곡의 장현승, 현아가 출연한 게 시시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어디 그뿐인가. 중고 신인상, 먹방상 등의 발표와 시상은 물론 대상 후보자 소개까지, <개그콘서트> 출신 MC들과 지금도 자신의 유행어로 활약 중인 <개그콘서트>의 개그맨들이 장기를 살려 웃음을 이끌어낸다. 특히나 이제는 거장이 되어야 할, 하지만 그들의 활약에 비추어 상을 주기에는 미흡했던 강호동이나 유재석에게 중고 신인상이나 먹방상이라는, 어찌 보면 우습지만 그럼에도 개그맨이기에 웃음으로 승화될 수 있는 상을 통해 예우해주는 시간은 연예대상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역시 시상식이니만큼 시상식의 간극을 메우는 특별한 퍼포먼스 못지않게 수상의 성과가 어떠했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실제 어떤 시상식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이제 막 첫발을 내딛은 신인들의 수상 시간이다. 초심이 보상받았을 때, 떨리는 목소리로 울려나온 그들의 소감은 그 어떤 명곡보다도 순수하게 감동적이다. 그런 면에서 코미디 부분은 쇼 오락 부분을 압도한다.

겨우 몇 개월의 경험으로 신인상을 거머쥔 보라와 존박의 수상 소감은 쑥스럽지만, 2009년에 개그맨이 되어 이제야 신인상을 받은 안소미와, 그보다 2년 후배지만 13번이나 개그맨 시험에 떨어졌다는 이문재의 수상 소감은 뭉클하다. 그들이 지난 1년간 <개그콘서트>를 통해 흘린 땀이 공감되었기에 그들의 수상에 보내는 박수가 뜨거울 수밖에 없다. 그것은 유민상과 김민경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더더욱 상을 받는 순간조차도 개그맨이라는 본분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들의 철저한 직업 정신이 감동을 배가시킨다.

쇼 오락 부분의 시상자들이 몇몇 인기 진행자들의 돌려막기로 인력풀의 한계가 뚜렷한 것과 달리, 코미디 부분 시상자들은 김준현의 인기상 재수상을 제외하고는 매년 신선한 면모를 보이는 것도 KBS 연예대상의 볼거리이다.

한 해 동안 <개그콘서트>를 통해 한껏 겨루었던 그들의 노력이 성과를 얻는 그 시간은 우리 사회에서 보기 드문, 고지식한 노력의 열매가 열리는 시간 같아서 흐뭇하다. 무엇보다 그 누가 수상자가 되었든 <개그콘서트>의 축제인 양 많은 개그맨들이 한껏 차려입고 객석을 빛내며, 동료 개그맨의 수상에 아낌없이 축하해주고, 그 혹은 그녀의 수상 소감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눈물 흘려주는 동료애는 KBS 연예 대상이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박미선 같은 여자 선배가 꾸준히 활동하여 후배 여자 개그맨들의 귀감이 되겠다는 수상 소감이 공감이 되어 객석에 울려 퍼지는 것 역시 KBS연예 대상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기에 김준호의 대상 수상은 특별하다. 그의 대상은 그저 인기 있는 한 개그맨의 수상이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개그콘서트> 팀은 자신의 프로그램은 물론 연말 시상식을 빛냈지만, 가장 큰 성과는 쇼 오락 부분의 명망 있는 스타급 누군가의 몫이었다. 그것은 <개그콘서트> 인력풀이 여전히 <개그콘서트>라는 우물 속에 머무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개그콘서트>는 독보적 가치를 가지지만, 거기서 매년 배출되는 수많은 개그맨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재활용되는 것은 <개그콘서트>가 가지는 또 다른 숙제였던 것이다. 이수근, 김병만 등을 비롯하여 많은 개그맨들이 <개그콘서트>를 통해 배출되었지만, 그들의 활동이 빛나는 순간 이미 그들에게서 <개그콘서트>라는 탯줄은 끊어지고 없었기에 그저 '스타'로서 받는 성과처럼 보였다.

하지만 김준호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여전히 <개그콘서트>의 인기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있자나~'라는 인기 유행어를 만들면서 '뿜엔터테인먼트'에서 한물 간 배우 역을 맡고 있고, 또 다른 코너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좀비로 역시나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개그콘서트>에서 활약하고 있는 멤버들 여섯 명을 모아 만든 <인간의 조건>이 순항 중이다. 뿐만 아니라 주말 예능의 꽃이라 할 수 있는 <1박2일>까지 진출했다. 이것은 개인의 성과이기도 하지만 <개그콘서트>의 영역 확장의 결과이며, 대상은 김준호 개인이 아니라 <개그콘서트>의 성취인 셈이다. 그러기에 그가 상을 받으러 올라갔을 때 그의 후배, 동료 개그맨들이 승리의 '김준호'를 신이 나서 연호할 수 있었고, 그의 수상에 그의 선배이자 동료인 김대희가 그보다 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릴 수 있었을 것이다.

김준호는 개그맨으로서 열심임은 물론, 올 한 해 '부산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까지 이끌어내며 코미디의 위상을 높이고자 의욕적으로 활동해 왔다. 그 누구도 해보라고 하지 않았던 일을 애써 해낸 그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인 것이다. 그래서 그의 수상에, 최고 프로그램에 <개그콘서트>가 뽑힐 때처럼 수많은 <개그콘서트>의 식구들이 연단에 올라 자신의 일인 양 기뻐해줄 수 있는 것이다. 김준호는 '대상'을 거머쥘 자격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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