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도 않았건만 때때로 입안에서 맴도는 책들이 있다. 고승 18인의 출가수행기를 모았다는 <이번 생은 망했다>나,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에 등장하는 개가 실은 공주를 위해 ‘인간개’ 노릇을 했던 난쟁이 바르톨로메라는 상상에서 시작한다는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혹은 제목부터 박력 넘치는 마루야마 겐지의 에세이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같은 책들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욕지기인 셈인데, 삶이 치사하게 굴 때면 신트림이 올라오듯, 속 깊은 곳에서부터 나도 모르게 그런 제목들이 올라오는 것이다. 교양이라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 여러분도 저처럼 책을 가까이 하시면 육두문자를 내뱉는 대신 책 제목을 가지고 한탄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면 물론 거짓말이고. 늘 하던 욕이 질릴 때면 가끔 그러기도 한다는 말이다. 삶에는 변화가 필요한 법이다.
물론 나라고 매사에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건 아니다. 불평을 하는 데에도 생각보다 많은 체력이 필요하고, 언젠가부터 나는 쉬이 지치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운동 따위 하지 않고, 술과 담배를 즐기고, 밥을 밥 먹듯 거르고, 날밤을 예사로 새우면 그렇게 된다. 혹시라도 불평이 너무 많아 걱정인 친구가 있다면 나와 같은 생활 습관을 권해 보시길. 아마 순한 양처럼 될 것이다. 요즘 내가 그렇다. 양이란 겉으로 보기에는 얌전하고, 별다른 돌발행동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짐승이다. 하지만 한여름이면 서로서로 몸을 바싹 붙이고 앉아, 다른 놈들이 괴로워하는 걸 보기 위해 제 몸 더운 건 꾹 참는 짐승이기도 하다. 과연,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든다.
아무려나, 가만히 앉아 다른 녀석들이 짜증내기를 기다리는 일에도 싫증이 날 때면 떠올리는 책이 있다. 더는 이렇게 살아서 안 된다고, 이래서야 늙은 멍청이가 될 뿐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그렇다고 ‘이번 생은 망했다’라거나 ‘바르톨로메는(그러니까 나는) 개가 아니다’라거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같은 제목을 내뱉는 것도 지겹게 느껴질 때면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라는 책을 떠올리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요즘 나는 약하다. 추위와 더위 모두를 잘 견디지 못하는 걸 보면 양보다도 약한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약한 것처럼 약하다는 말은 아니다. 문득 스무 살의 기억이 떠오른다. 여름이었고, 나는 신촌 녹색 극장 매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다섯 개의 상영관은 멀티플렉스처럼 한두 층에 모여 있는 게 아니라 두 층에 한 관씩, 매점 또한 각 관별로 따로 있었다. 따라서 상영 중에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팔자 좋은 아르바이트다. 하지만 그것이 내 팔자는 아니었다. 당시 나의 직책은 매점 담당이 아니라 ‘시다’, 다시 말해 보조였고, 다섯 개 관의 저마다 다른 상영 시간에 맞춰 이층 저층을 오가며 담당을 도와야했던 것이다. 그게 바로 내 팔자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에어컨을 아무리 틀어도 좀처럼 더위가 가시지 않는 오후였고, 나는 4관 매점 담당 옆에 엉덩이를 꼭 붙이고 앉아 있었다. 설마 그때부터 내가 양 같았던 건가? 아니, 그건 아니다. 다만 4관 담당이 머리를 위로 올려 묶은 누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부터 올려 묶은 머리를 좋아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잠시 후, 영화가 끝나고 사람들이 빠져나왔다. 멀티플렉스와 달리 입구와 출구가 모두 같은 곳에 있어서 그럴 때면 꽤나 정신이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엉덩이를 더욱 꼭 붙일 뿐이었지만.
그때였다. 갑자기 평소의 시끌벅적함과는 다른 종류의 소리들이 들렸다. 웬 남자가 고함을 치는가 싶더니, 여자들이 새된 비명을 질렀다. 영화를 보고 나오던 남자 둘이 시비가 붙은 것이다. 한 명은 크고 팔뚝도 두꺼웠으며, 다른 하나는 작고 왜소했다. 안 봐도 뻔한 싸움이었다. 작은 남자가 호기롭게 달려들었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고, 몇 대 맞더니 이내 피가 났는데, 작은 남자도 보통은 아니어서 연거푸 맞으면서도 이렇게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씨X, 야, 너 약하냐? 너 약하지? 말해봐, 너 약하지? 응? 너 약하지 않아? 약하지? 약해?”
지금 생각하면 약한 건 작은 남자였던 거 같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나는 그런 식으로 약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약해지지만 않으면 괜찮은 인생이야>라는 제목이 와 닿은 건지도 모르겠다. 약하지만, 그런 식으로 약한 건 아니기 때문에. 만약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당장이라도 괜찮기라도 할 것처럼. 하지만 나는 그 책에 대해 알지 못했다. 만화라는 것과 내가 아직 읽지 않았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 돌연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제목을 중얼거린다는 게 어쩐지 멋쩍게 느껴졌고, 다시 한 번 제목이 떠오르면 그때 읽어보겠노라고 홀로 다짐했다. 그리고 마감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욕지기가 절로 솟는 시간에 나도 모르게 그 제목이 튀어나온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약해지지만 않으면 괜찮은 인생이야>는 “자기 고백적인 세계관으로 잘 알려진 북미 작가 세스Seth의 대표작”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알 뿐이다. 원제는 “‘It's a good life, if you don't weaken”으로 1900년대 초, 다른 만화가가 이미 썼던 제목을 다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그 말은 이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 사이에서 슬로건처럼 유행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 부분을 읽으면서는 과연 군인들이 좋아할 만하다고 혼자 수긍해버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니 나는 책을 읽기도 전에 보도자료를 읽었는데, 그건 나의 오래된 습관이다. 좋지 않은 버릇인 거 같긴 하지만 딱히 고칠 마음이 들지 않아 내버려두고 있다.
내친 김에 조금 더 읽자면 “모두가 잊은 지 오래인 만화가를 찾아 떠나는 일종의 퀘스트 저니Quest Journey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을 미국 유수 만화잡지 『코믹 저널』에선 '20세기 최고의 만화'의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잭 캘로웨이라는 생소한 작가를 빌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세스라는 (내게는) 생소한 작가를 빌어 어디에도 쓸모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별 거 아니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화는 어느 눈 내리는 날, 홀로 거리를 걷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코트에 중절모를 눌러 쓴 제법 고풍스러운 차림이다. 그리고 독백이 시작된다.
“만화는 언제나 내 인생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해왔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만화 없이 내 이야기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여기서 내가 말하는 만화는 디즈니나 워너브라더스의 애니메이션이 아닌, 신문에 연재되던 짤막한 카툰이나 만화책들이다. / 만화는 내 뇌 용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난 늘 현실을 어릴적에 읽었던 케케묵은 만화와 연관지어 생각하는 것 같다. / 솔직히 내가 봐도 난 만화에 너무 빠져 있다.” (1~2쪽)
그는 책방에 들러 만화책을 사고, 엄마 집을 방문한다.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는 엄마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농담을 즐기는 덜 떨어진 동생 사이에서 며칠 쉬다 그는 다시금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는 동안에도 혼잣말을 멈추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 만화 생각, 여자 이야기 뭐 그런 것들이다.
집으로 돌아간 그는 유일한 게 분명한 친구를 만나 식물원을 구경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 만화 생각, 여자 이야기 뭐 그런 것들이다. 그리고 그는 집에 돌아가서도, 여자를 만나도, 고양이를 앞에 두고도 계속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 만화 생각, 여자 이야기, 뭐 그런 것들이다. 나는 여기서 읽기를 멈추고 책을 덮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왜 이런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책은 너무나… 오글거린다. 다 알 것 같은 이야기인 동시에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다. 그렇지만 마저 읽기로 한다. 아직 말은 안 했지만, 나는 제법 우유부단한 성격인 것이다.
“기대 그리고 실망. 나에게 자명한 진리라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 인생이란 다 그런 것 아닌가? / 기대를 하면 늘 일을 그르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지? 물론 안 그럴 때도 있겠지만, 대체로 그렇게 굴러가는 거 같다. / 얼마 전, 내가 옛날 78RPM 레코드를 수집한단 얘길 들은 한 친구가 자기 나이트클럽에서 ‘쿨한’ 폴카 밴드가 오프닝 공연을 하는데, 와서 음악 몇 곡만 틀어달라는 거다. / 난 전정긍긍했다. / 그 클럽에선 유행하는 음악이나 좋아하지, 20년대 댄스음악이나 클래식 재즈 같은 것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 그런데도, 그런데도… 어느새 난 한 건 멋지게 해치워서 ‘쿨 가이’로 거듭나는 내 모습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다. / 클럽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숨죽이고 내가 트는 아름다운 옛날 음악을 들으면서 생전 처음 깊이 감동하는 광경을 떠올렸던 것이다. 정작 현실은 / 아쉬운 실패란 말을 갖다 붙이는 것조차 민망스러울 지경이다. 그건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최소한 한 명은 있었단 뜻이니까. / 30분쯤 지나서 내 낡은 턴테이블이 멈추고 음악이 잦아들었을 때, 거기 있던 열 명 남짓한 사람들 중에 눈치 챈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나 싶다. 디제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카세트 테이프 하나를 쓱 집어넣는 게 다였으니까. / 내가 그렇게 바보 같았나? / “으악!” (빙판에서 넘어진다) / 나아질 리 없다는 건 알고 있다.” (29~31쪽)
우유부단하기는 주인공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싫어한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나는 한숨을 쉬며 책장을 넘긴다.
단순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그러니까 세스는, 소심하고 불평불만으로 가득하며 우유부단한데다가 융통성이라곤 없는 청년이다. 아, 이기적이기도 하다. 비대한 자아를 가지고 있고, 그런 사람들이 항상 그렇듯 자기밖에 모른다. 참으로 피곤한 팔자다. 그는 옛날 잡지를 뒤지다 우연히 캘로(잭 캘로웨이)라는 무명의 만화가를 발견하고 그에게 매료된다. 세스는 온갖 잡지들을 뒤져 그의 만화를 찾고, 그의 흔적을 쫓는다. 잡지사에 편지를 보내 캘로의 주소를 문의하기도 한 세스는, 급기야는 그의 집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한다. “모두가 잊은 지 오래인 만화가를 찾아 떠나는 일종의 퀘스트 저니Quest Journey”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잊은 지 오래인 ‘내장 사실주의’의 어머니를 찾아 떠난 청춘의 이야기를 그리는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 같은 이야기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그러니까 나는 곤란했다는 말이다. 기대와는 달리 그의 여정은 뭐랄까,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캘로의 흔적을 쫓는 한편 여자와 만나고 못 되게 굴고 헤어지고, 사이사이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 만화 생각, 여자 이야기 뭐 그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한 마디로 짜증나게 굴었던 것이다.
이놈은 구제불능이다. 나는 확신했다. 이래서야 괜찮아질 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다시금 책장을 넘긴다.
그러니까 나는, 오직 자신의 머릿속에만 갇혀 있는 꼴이 보기 싫었던 것이리라. <이번 생은 망했다>,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같은 제목을 되뇌는 것도 지쳐 고른 책이다. 약해지지만 않으면 괜찮다길래 혹시나 하고 집어든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이란 놈이 이러고 있으니, 그야말로 속이 뒤집힐 지경이다.
“나는 과거 속에 가라앉아 허우적대고 있다. 어린 시절에 해답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지나간 시절을 곰곰이 들여다보다가 뭔가 실마리를 찾아내면 현재의 지긋지긋한 문제들도 해결될 것 같다. / 5분만 가만히 놔둬도 곧바로 우울해지는 게 나란 사람이다. 세상만사 슬프지 않은 게 없다. 안다. 내가 유난떤다는 것. 하지만 많은 게 날 우울하게 만든다. 여기 이 기름때 낀 숟가락만 해도 그렇다. 여기 진열장을 꾸며놓은 것 좀 보라지.” (41쪽)
아 진짜, 씨X, 너 약하냐?
그렇다면 이제 오기가 생긴다. ‘퀘스트 저니’라고 하지 않았던가. 퀘스트는 모두에게 잊힌 캘로의 흔적을 찾는 것이고, 저니란 그 여정을 뜻하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변화 또한 있을 것이었다. 퀘스트를 성공하건 말건, 일단 길을 떠난 이상, 그 끝에서는 반드시 다른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게 이 장르의 법칙이다. 따라서 나는, 재수없는 주인공이 변하는 꼴을 보기 위해, 끝까지 책을 읽는다.
마침내 다다른 마지막 장part에서, 세스는 캘로의 딸과 친구를 만난다. 그렇다고 뭔가 대단한 이야기가 나오는 건 아니다. 캘로는 이미 죽었고, 남은 이들은 만화가로서의 캘로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다. 만화를 사랑했던 캘로는, <뉴요커>에 연재를 하기도 하며 잠깐 성공의 문턱에 발을 올린 것도 같았던 캘로는, 그러나 만화계를 떠났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우리의 ‘우울한’ 주인공과는 달리, 만화 이야기는 입에도 올리지 않았다. 저는 아버지가 만화가라는 사실도 잘 몰랐어요, 딸이 말한다. 가족이 생겼고, 만화로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일 거라고 친구는 말한다. 분명 쉽지 않았을 거라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마 괴로웠을 거다. 그 말을 들은 세스는 착잡하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가뜩이나 우울한 인간이다. 오죽했으면 특기인 장황한 독백도 늘어놓지 않는다. 휴, 나는 그제야 한숨을 돌린다. 그래 진작 이랬어야지.
망설이던 세스는 마지막으로 캘로의 어머니를 찾는다. 어차피 별다른 정보는 얻지 못할 거란 생각과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만나고 가야겠다는 생각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 양로원. 캘로의 어머니를 만난 세스는 그녀에게서 또 다른 이야기를 듣는다. 캘로가 만화를 그만둔 이유를, 친구의 짐작과 똑같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그 이유를.
“그때 결혼하시고 수지가 태어났던 거죠. 아드님이 가족을 부양하느라 만화를 접은 걸 후회했을까요?”
“무슨 소리. 수지가 그 애의 인생을 바꿔놨는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긴 했어도, 수지가 태어나기 전까지 그 애는 진심으로 행복한 게 아니었어. 알아둬요, 총각. 그 애는 10년인가 15년을 만화를 그렸다우. 제가 하고 싶은 것은 다 이루었지. 헬렌이 죽고 얼마 안 되어 나도 그 애한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네… 작가로 살았던 때가 그립지 않냐고 물어봤었지.”
“뭐라시던가요?”
“조금 비참한 게 영혼에는 좋아요.”
“자네한텐 불행하다는 대답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 말을 했을 때 그 애의 미소를 봤다면 절대 그럴 수 없지. 아무렴, 그 애는 행복하게 살았어. 말없이 수긍하며 사는 삶에 만족했어.” (163쪽)
조금 비참한 게 영혼에는 좋다니, 미묘한 말이다. 아마 세스 또한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더는 독백을 하지 않는 그는 시치미를 떼며 화제를 돌린다. 캘로의 어머니에게 아드님의 작품을 가져왔는데 혹시 보시겠냐고 묻는 것이다. 그녀는 물론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만화를 통틀어 가장 놀라운 순간이 펼쳐진다.
(그녀는 가만히 미소를 띠며 아들의 그림을 본다.)
“사실 난 그애가 얼마나 그림을 잘 그렸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
“말년에는 회화도 좀 그리셨죠?”
“그래, 취미로 그리는 정도였지… 우리끼리 이야긴데… 크큭. 별로더라고. 재키는 훌륭한 만화가였지만, 화가로는 별로였어.”
“그러니까, 어쨌든, 아드님은 좋은 분이셨단 거죠?”
“자기 자식보다 더 오래 사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야… 하지만 그 애가 끝내 이렇게 훌륭하게 기억되는 걸 보니 마음이 놓이네.”
“이런 걸 여쭤봐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심장마비였어. 병원에선 측관 수술까지 시도했지만, 깨어나질 못했어.”
(그녀는 다시금 아들의 그림을 본다.)
“아이구 이런! 이거 진짜 재미있네… 아니, 꽤나 야한걸.”
(흐뭇하게 웃으며 세스가 그녀를 바라본다.)
(밝게 웃는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다.)
“그 애에게 이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어.”
(164쪽)
그렇게 이야기는 끝난다. 세스의 에고로 가득한 독백에서, 타인의 이야기로, 그리고 아들의 그림을 보는 어머니의 얼굴로. 이제까지와 별반 다를 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독자를 놀라게 하는 마지막 컷. 그것이 바로 세스의 여정이고 그 종착역이다. 그걸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적당한 말을 찾을 수 없는 나는, 다만 이렇게 중얼거릴 뿐이다.
약해지지만 않으면 괜찮은 인생이야.

금정연

이런저런 매체에 책에 관한 글(90%)과 책에 관한 글이 아닌 글(10%)을 납품하는 소규모 자영업자이자 LG 트윈스팬. 지은 책으로 <서서비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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