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실각’ 관련 국내 언론의 보도는 정확히 동물원 관람객의 그것과 같았다. 확인되지 않는(혹은 확인이 필요하지 않은) 체제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리얼리티 쇼와 그 스펙터클을 그저 넋을 잃고 바라보기만 했다. 남과 북이 얕은 경계를 하나 두고 여전히 서로 대치중이고 어떤 순간 경쟁하며 또 어떤 순간에는 협력해야하는 관계라는 점을 국내 언론은 완전히 망각한 듯 했다. 남북 관계의 표류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이 표류에 언론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장성택 관련 보도는 많은 시사점을 던졌다.

▲ 9일자 동아일보 5면.

누군가는 그나마 미국이나 일본보다 앞서 ‘속보’를 했단 것을 위안으로 삼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의도적으로 범람시키던 국내 언론의 지난 며칠은 굉장히 위험해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장성택 실각의 결과적 입증 여부와는 상관없이 지난 며칠 간 국내 언론들은 출처를 알 수 없는 ‘관계자’와 ‘소식통’을 붙잡고 아슬아슬한 보도를 이어왔다. 몇몇 진보언론이 장성택 실각의 진위가 미심쩍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지만, 대다수의 언론은 최대한의 선정성으로 관련 사안을 부각하려고만 애썼다.

이제, ‘권력의 2인자’라고 불리는 장성택이 ‘제거’된 것이 어느 정도 확실해진 상황이다. 국내 언론들의 아슬아슬해보이던 속보 경쟁, 단정적 보도 양태는 그나마 대형 오보로 번지진 않은 모양새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김정은 지배체제의 확고한 구축 이후에 한반도의 문제에 대해 국내 언론은 여전히 별 말이 없다. 장성택 실각의 스펙터클이 자욱하게 국내 언론에 확산되는 동안 그 이후를 주목하고 준비한 언론은 이상하리만큼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국내 언론의 분류에 따르면, 장성택은 북한 내 ‘온건파’이고 ‘협상론자’에 속한다. 장성택의 제거를 ‘온건적 협상론자’들의 패퇴로 읽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겠지만, 단기적으론 북한 내 기류가 한 방향으로 치달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예상 밖으로 이명박 정부보다도 훨씬 강경 보수화되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최근 행보와 맞물리며 상당 기간 남북관계 경색이 현실화될 수밖에 없는 조건을 축적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햇볕정책’을 주창했던 김대중 정부와 ‘남북 공동 번영’을 노선으로 했던 노무현 정부는 ‘경제 통합’으로 남북관계를 재구축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이런 노선을 폐기한 채, 군사안보적 틀의 우선 타결을 신봉하는 방향으로 남북 관계를 끌고 가고 있다. 민주화 정부 10년이 ‘경제적 협력(이라고 쓰고 누군가는 지원이라고도 읽는)을 통한 남북 관계의 안정화’에 방점이 있었다면, 보수 정부 6년은 ‘안보 이슈를 국내 정치에 활용하는 것을 통한 북한의 효용 가치’에만 주목해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보수정부는 민주정부 10년을 통째로 ‘종북’이라고 부르지만, 그렇다면 이명박-박근혜 정부 6년은 ‘활북’(活北)이라고 해야 할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 9일자 중앙일보 3면.

정부가 북한을 최대한 국내 정치에 활용하는 동안 북한을 ‘파트너’로서 바라보던 국내의 시각은 완전히 붕괴되었고, 개성공단 등으로 상징되던 협력의 점진적 기지들은 겨우 숨만 쉬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상 아무런 준비 없이 김정은 체제를 맞이한 한국 정부는 김정은 체제가 전례 없는 고강도 ‘숙청’을 벌이며 모종의 내부적 ‘기획’을 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그 스펙터클을 관람하는 것 외에는 뚜렷한 전략과 전술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선거 당시 박근혜 후보의 대북 기조였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낮은 수준에서부터 신뢰를 구축해나가고, 이를 토대로 한 남북관계의 안정을 추구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선 이후 빛이 많이 바래긴 했지만, 박 후보는 한국 정부의 태도가 ‘북한의 개혁, 개방을 향한 정책적 의지를 끌어낼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대통령이 되지 전 여러 차례 했던 바 있다. 북한의 상황이 매우 불안정한 지금 다소 뜬금없을 수 있지만 국내적으로는 그래서 역설적으로 바로 지금이야말로 과거의 박근혜가 했던 그 생각을 꺼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언론 역시 박근혜 정부를 향해 앞으로 어떤 대북 정책을 할 것인지를 따져 물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장성택의 제거에서도 드러났지만, 북한의 최대 딜레마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개혁, 개방과 이를 통한 경제적 전환 노력이 여전히 별 성과가 없단 점이다. 장성택을 중심으로 한 ‘온건파’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이 이뤄지는 상황은 지배체제의 구축에 따른 필연적 상황도 있지만, 결국 그 토대는 북한 사회가 떠 앉고 있는 이 딜레마와 맞닿아 있다.

계획경제 시스템의 붕괴로 도농 간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고, 공장 가동률이 형편없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보수 언론이 즐겨하는 ‘고발’에 따르면, 북한의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서라면 합법과 불법을 가릴 여유가 없고, 시장 경제와 그렇지 않은 경제를 따질 여유도 없이 악전고투하고 있다고 한다. 당은 사실상 이런 상황에 대책이 없고, 시장 경제적 요소를 도입한 개혁이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으로 나타나지 않는 상황은 반복되고 있다. 북한 내 지배구조 메커니즘의 변화는 어찌 보면 이 상황의 정치적 변주이다. 지속적인 ‘강온 대결’은 노선의 딜레마에 따른 악순환 성격이다.

어찌되었건 김정은 체제와 동행해 갈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에 이 대목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장성택의 제거는 조기 안착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1인 지배 체계가 이미 북한에 완성됐다는 점을 확인케 했다. 그것에 대한 각성과 인지는 이제 충분히 됐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우리의 대응책이다. 김정은 체제는 유지될 것이고, 그 ‘세습된 왕조’가 다시 우리의 파트너이다.

북한의 지배 권력이 벌이는 리얼리티 쇼의 스펙터클에 그만 침을 흘리고, 이제 저들을 향한 우리의 전략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돌고 돌다가 이제는 아예 멈춰버린 느낌도 들지만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북한과의 공존 밖에 없다. 경제협력을 우선하건, 안보를 우선하건 공존을 위해서는 여력이 되는 우리가 북한 사회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무엇을 주는 것밖엔 별로 다른 선택지가 없다.

국내 정치적 활용을 위한 ‘강 대 강’ 대결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지난 정부의 ‘천안함 사태’나 ‘연평도 포격’에서 충분히 경험했다. 박근혜 정부는 대북정책에 대한 뚜렷한 입장과 스케줄이 아직도 없다. 다만, 국내 정치 국면에 따라 안보 이슈와 북을 적절히 ‘활용’하려는 낡은 시대의 관행만 번뜩일 뿐이다. 이걸 보지 못하는 언론은 위험하다. 언론이 정신을 차리고 있지 않으면, 언제든 북한이 모든 이슈를 집어 삼키는 퇴행적 사회로 회귀할 수 있다. 강조하건대, 언론이 남북관계라는 ‘동물원’을 구경하는 ‘관람객'이어서는 정말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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