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창조과학부(장관 최문기)가 오늘(5일)로 예정됐던, ‘방송 산업 발전 종합계획’ 발표를 한 주 연기했다. 미래부는 “국가정책조정회의를 거쳐 발표해야하는데, 국가정책조정회의가 연기되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지만 곧이곧대로 들리진 않는다. 일각에서는 미래부가 지상파 방송사들의 거센 반발에 “부담을 갖고 형식을 갖추려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어찌됐건 이로써 미래부는 다시 한 번 체면을 구기게 됐다. 미래부 발표에 앞서 지상파 방송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항의서한 전달했다. 이게 미래부가 발표를 연기한 한 이유라면, 미래부 스스로 이익단체들의 활동에 자유롭지 못한 집단이란 걸 인정하는 셈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국가적 차원의 방송 산업 발전 계획이 한낱 기자회견에 휘둘린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형편없는 깊이를 갖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미래부의 해명을 그대로 인정해 국가정책조정회의 문제 때문이라고 해도 의문은 여전하다. 수 개 월을 넘게 준비하고, 이미 지난 11월 공개 공청회를 방통위, 문화부와 공동 주최했던 마당에 또 뭘 더 ‘조정’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여태 뭣하다가 발표를 하루 앞두고 부랴부랴 알려지지도 않았던 회의 탓을 하는지 총체적으로 아마추어 같다.

미래부의 혼선은 언론에 그대로 흉측하게 반영됐다. 가히 아수라장이라고 할 정도로 매체별로 입맛대로 보고 싶은 대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미래부의 무능과 언론의 물욕이 빚어낸 ‘네 밥그릇을 깨기 위한 투쟁’이 펼쳐지고 있다.

MBC의 뒤늦은 종편 특혜 호들갑, 기자회견 취지까지 ‘오독’

4일 있었던 지상파 방송사들의 기자회견은 일종의 ‘실력행사’ 자리였다. 지상파 방송이 갖고 있는 최대 무기는 ‘카메라’다. 4일 기자회견 현장에는 지상파 로고를 단 ENG카메라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MBC와 SBS가 기자회견 내용을 메인 뉴스에 편성했다. 최근 사장이 “언론노조를 탈퇴하라. 그래야 공정방송을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던 MBC는 언론노조의 주장과 기조를 그대로 따르는 리포트로 미래부를 압박했고, SBS는 직접적으로 UHD방송을 달라고 요구했다.

▲ 종편 특혜를 지적한 4일자 MBC 뉴스데스크의 보도는 수준급이었다. 다만, 기자회견의 취지를 의도적으로 '오독'하고, 자사의 이해관계 관철을 위해 한참 늦게 사회적 당위를 찾아나섰을 뿐이다.

MBC는 “미래부의 방송 발전 종합 계획이 종편 특혜로 채워진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출범 이해 꾸준히 정부의 특혜를 누려온 종편에게 정부가 ‘추가 특혜’를 주려 한다”는 내용이다. MBC는 정부의 계획 중 '8-VSB'를 집중 공격했다. “종편의 요구에 따라,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에게도 종편이 고화질로 전송되는 대신, 군소 채널이 퇴출될 수밖에 없는 8-VSB 전송이 허용 된다”고 보도했다. 뉴스를 마무리하며 MBC는 “한국방송협회와 한국방송인총연합회는 오늘 이 같은 정부 정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미래창조과학부를 방문해 최문기 장관에게 성명서를 전달했다”고 맺었다. MBC의 보도만 보고 있노라면, 흡사 종편 특혜 정책에 지상파 방송 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날 방송협회 기자회견 현장에서 ‘8-VSB' 문제는 제대로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기자회견 내내 '지상파에게 UHD를 달라'는 요구로 채워졌고, 이어진 질의 응답에서는 ’지상파 특혜‘로 얘기되는 '중간광고 허용'과 'MMS 도입'의 당위성에 대한 지루한 해명이 이어졌다. 방송협회 등의 기자회견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며 '우리에게 약속한 특혜는 그대로 인정하되, UHD도 달라. 그렇지 않으면 정부 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다'였다. 하지만 MBC의 보도에는 이런 골격이 완전히 사라진 채, 대의와 명분에 따라 지상파 방송사들이 움직이고 있는 냥 보도됐다. MBC가 지적한 종편 출범 당시의 특혜에 대해, 사실상 완전히 침묵했던 MBC가 이제와 그 리스트를 언급하며 나선 상황 자체가 현 상황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앙일보의 계속되는 지상파 공격, ‘국민 90% TV 새로 사야’

▲ 중앙일보는 며칠 째, 지상파를 돈만 추구하는 탐욕 집단으로 묘사하고 있다. 설명하기 어려운 기술적 쟁점의 이해를 위한 영악한 프레임이다.

며칠 째, 중앙일보는 집요하게 지상파만을 겨냥해 방송 발전 종합대책을 읽어내고 있다. 중앙일보가 정부의 대책을 보는 키워드는 ‘돈’이다. 결국, 지상파 방송들이 ‘돈’을 요구하고 있단 시각이다. 5일자 중앙일보는 미래부 관계자의 멘트를 빌어 UHD를 요구하는 지상파의 속내가 “UHD 방송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드니 중간광고 같은 규제를 한꺼번에 풀어달라는 것”이라며 “결국 나중에는 정부가 UHD 전환 비용까지 모두 보전해달라고 주장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앞서, 3일자 보도에서 디지털 전환의 문제 역시 중간광고와 엮어 지상파가 ‘탐욕’을 부린다고 썼다. 중앙일보은 이틀 연속 ‘지상파=돈 요구=탐욕’의 프레임을 펴고 있는 셈이다.

중앙일보의 주장 역시 겸연쩍기는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광고 매출 부진에 신음하고 있는 종편사들 입장에선 지상파 중간 광고가 허용될 경우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지상파는 중간 광고가 ‘동일한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유료 방송과의 형평성 문제’라고 주장하지만 유료 방송 입장에선 ‘이미 광고 시장의 70% 이상을 독점하며 공공재를 무료로 사용하는 지상파의 탐욕’이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없는 상황이다.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인 MMS역시 지상파는 ‘저가의 유료방송 구조에서 무료 플랫폼을 지키기 위한 방안’이라고 말하지만 유료방송 입장에선 생존에 치명적 위협이 현실화되는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복잡한 기술적 쟁점을 뚜렷하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영악한 중앙일보는 이 모두를 ‘탐욕’과 ‘돈’의 문제로 단순화시키는 전략을 펴고 있는 셈이다. 지상파가 시장의 강자라는 것은 누구나 인지하는 상황에서 중앙일보는 ‘가진 자들이 더 가지려 한다’는 단순 문법으로 치환하고 있다.

석연찮은 이유로 정책의 발표 자체를 연기하는 무능한 미래부가 보도로 미래부를 흔드는 지상파와 쟁점을 바꿔쳐 지상파를 치받는 보수언론의 첨예한 대치 상황을 관리할 수 있을까? 신념의 충돌이 아닌 밥그릇 전쟁을 관리할 리더십과 카리스마가 지금 미래부에 있긴 한 걸까? 무능한 정부와 천박한 물욕의 언론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기괴한 풍경이 ‘정책’이란 딱딱한 이름으로 펼쳐지고 있다. 미래부는 아직 발표 날짜조차 제대로 예고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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